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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무게

수연의 걷기

by 정루시아

수연은 앞서 걷는 주미를 따라 걸었다. 주미의 안정된 발걸음은 이상하리만치 수연에게 위안이 되었다.
두 시간을 그렇게 걷자, 서서히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지나치는 마을들에는 아침을 준비하는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도로 옆 넓은 휴게소 카페에 들러 아침을 먹었다.


수연은 '베이컨과 카페 콘 레체(카페라떼)'를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으며 말했다.


“사실 사람이라는 게 무서운 거지, 어둠이나 길은 하나도 무서울 게 없는데… 너무 새까매서 섬뜩하더라. ‘이 나이에 너를 놓치면 끝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


주미는 계란 프라이를 톡 터뜨려 베이컨과 함께 먹으며 대답했다.


“무섭다는 생각 앞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니? 어리나 늙으나 무서운 건 무서운 거지. 칠흑 같은 데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크게 다칠 것 같아서 좀 위축되긴 하더라. 그래도 함께 해서 무섭진 않았어.”


“20km를 쭉 이렇게 걷고 나서 오르막 7km라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네. 지금 10km 왔는데, 10km 더 가고 나서 산을 오른다니… 갈리시아 지방으로 넘어가는 길이 험하네.”


수연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여전히 수연은 발이 불편했다.
오른쪽 발에 생긴 물집이 겨우 아물면 이번엔 왼쪽에 생겼고, 또다시 엄지발가락에 생겼다가 사라지면 이번엔 새끼발가락으로 옮겨갔다. 마치 술래잡기라도 하듯 말이다. 물집뿐만이 아니었다. 물집이 잠잠해지면 발바닥과 발등이 아팠고, 그렇게 고통은 발의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수연을 괴롭혔다. 평발인 수연에게, 그것도 아무런 훈련도 없이 길을 나선 그녀에게 하루 한두 시간 걷는 것과 날마다 6~8시간씩 걷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수연에게 남은 유일한 대책은, 그저 스스로 견디고 인내하거나 중간중간 택시나 버스를 이용해 발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힘내야지. 여기까지도 잘 왔잖아. 잘 먹고 또 힘내자.”


주미가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주미는 수연이 얼마나 힘겹게 걷고 있는지를 머리로는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주미는 다른 건 몰라도 걷는 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다. 걷는 데 익숙한 몸, 튼튼한 무릎과 발 덕분이었다.
하루를 시작해 4시간쯤 지나면 수연의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지곤 했다. 주미는 그 변화를 느끼면서도, 수연이 겪는 고통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수연이 ‘고통도 익숙해진다’고 말했을 때, 주미는 어이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고통에도 익숙해지는 마당에, 타인의 고통엔 얼마나 무관심해질 수 있는가?’

그 생각에 마음이 서늘해졌다.


주미는 문득, 자신이 느끼던 고통을 남편이 상상이나 해봤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마 상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몰랐을 게다.
주미는, ‘남편의 무관심을 자신이 허용하고 방치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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