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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km 표지석!

웃으며 걷다

by 정루시아

갈리시아 지방에 들어간 지 3일 후, 둘은 100km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고 단체 톡에 올렸다. 톡방은 곧 시끌벅적해졌고, 둘은 근처 카페에 앉아 장난스러운 댓글을 주고받았다. 수연이 화장실에 다녀오는 사이, 주미는 컵라면과 햇반을 주문해 자리를 잡았다. 이미 자리를 잡은 순례길 동료들은 컵라면의 맛에 감탄을 연발했다. 카페 한쪽에 붙은 태극기 앞에서 사진을 찍은 후, 둘은 얼마 남지 않은 순례길을 느끼며 다시 길에 올랐다.

앞서 걷는 주미의 뒷모습을 보며 수연이 한마디 했다.


“주미야, 처음 여기 왔을 땐 그냥 깡마른 느낌이었는데, 이젠 제법 튼실해졌다. 난 좀 빠진 것 같은데, 넌 몸이 더 붙은 것 같아. 너무 잘 먹었나?”


사실 주미도 느끼고 있었다. 하루에 30km씩 걸어도 살이 빠지긴커녕, 꼬박꼬박 순례자 식사를 다 챙겨 먹은 덕에 몸에 근육이 붙는 게 느껴졌다. 주미가 몸을 돌려 수연에게 대답했다.


“네가 잘 챙겨줘서 그렇지. 한국에서는 이렇게 잘 못 먹었거든. 순례자 식사량이 내게는 너무 많더라. 파스타 한 접시 먹고, 고기 한 덩어리 먹고, 또 단 디저트를 먹으니… 하루 식사량이 한국에서 먹던 세 끼보다 많더라~. 그러니 살이 붙은 거지. 넌 조금씩만 먹더니 더 예뻐졌다~.”


수연은 배시시 웃으며 주미의 팔뚝을 잡았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매일 스틱 들고 걸어서 그런가 봐~. 주미야, 너 팔뚝에 근육 생겼다? 우리 이제 겁나는 게 없는 여자들이야.”


둘은 강렬한 햇빛을 피해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힘차게 걸었다. 마지막 나흘간은 해 뜨기 전 출발해 오후 1시 전에 알베르게에 도착하는 일정이라, 도착 후 마을을 구경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수연도 이제 걷기에 익숙해졌고, 고통을 참는 일에도 어느덧 이력이 붙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고통을 인내하고 받아들이는 수연의 모습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아르수아(Aruzúa)에서 오 페드로우소(O Pedrouzo)로 향하던 길. 수연은 몇 번이나 오른발이 작은 돌부리에 걸렸다. 하루만 남았다고 생각하며 가볍게 걷고 있었지만, 몸은 한 달간의 피로를 발끝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미와 발을 맞춰 걷던 수연이 주미에게 말을 건넸다.


“주미야, 난 조금 천천히 갈게. 너 먼저 가.”


“아니, 같이 가도 돼. 조금 쉬었다 가자.”


“그냥 네 속도대로 걸어. 혼자 걸을 때도 있어야지. 5km쯤 가면 카페 있다니까 거기서 만나자.”


“그럴까? 그럼 나 먼저 가서 자리 잡고 있을게. 천천히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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