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생 때 아빠가 수송아지 스무 마리를 사왔다. 일종의 소를 키워 돈을 버는 소테크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준비성 없는 사육이었다.
허름한 우사 안에 톱밥을 깔고 물통, 사료통을 놓은 게 끝이었으니까. 그래도 건강한 송아지들은 사료와 지푸라기를 먹으면서 무럭무럭 자랐다.
송아지를 보고 있으면 할아버지 생각이 나기도 했다. 지게 가득 쇠꼴을 얹고 걷던 모습하며 소 여물을 쑤던 모습. 그러니까 나에게 소는 상당히 호의적인 동물일 수밖에 없었다.
송아지들은 거구의 소가 되었다. 먹는 양도 많아졌고 싸는 양도 많아졌다. 나는 가끔 우사에 가서 소들을 쳐다 봤다. 너희 속눈썹과 눈이 너무 예뻐구나, 감탄했다. 그리고 나름 소들을 위한 복지를 실천했다. 여름 방학 내내 틈 나는 대로 우사 안으로 들어 갔다. 소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파리채를 휘두르며 소 피를 빨아 먹는 등에를 잡았다. 감히 우리 소를 건드려?
개학을 하고 국어 시간에 여름 방학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을 이야기 해보라고 했다. 나는 소 피를 빨아 먹는 등에를 잡다가 소 꼬리로 얻어 맞은 썰을 풀었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상당히 진지했는데 말이다...
나는 마당에 나갔다가 기이한 장면을 목격했는데 소들이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궁뎅이를 씰룩거리면서. 나는 텅 비어 있는 우사를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빠아! 소! 소가!" 소들이 나무를 대충 얽어 놓은 우사 문을 부수고 탈출한 것이다.
나를 비롯한 가족들은 소를 몰러 뛰어 다녔다. 경차와 대치 중이던 덩치 큰 소는 겨우 우사에 넣었다. 어쨌든 사고는 그렇게 수습되었다. 물론 그날 밤 아빠와 엄마는 부부싸움을 크게 했다. (똑같은 일이 한 번 더 발생했다. 소들이 그 짜릿했던 자유를 잊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나는 솔직히 소들이 너무 불쌍했다. 방목이 쉽겠냐만은 평생을 똥이 가득한 방에 갇혀 살아야 했으니, 소로 안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소들은 발정이 나면 서로에게 올라 타는 행동을 했다. 소들한테 미안하기도 했다.
소들은 일정 시기가 되자 팔려 갔다. 트럭에 느릿느릿 올라가는 소들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소들은 근교에 있는 우시장에 가서 되팔린 뒤 도살장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잠시나마 소를 키웠던 경험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소고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구워 먹는 소고기는 서른이 되어서야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비싸서 그렇지 맛은 참 있더라... 나는 먹히기 위해 살아가고. 먹히기 위해 죽는 소들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