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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식PM May 21. 2023

보이스피싱에 탈탈 털려버린 아버지

여러분의 부모님은 안녕하십니까

지금은 한국에 있는 부모님 옆집에 살고 있다. 덕분에 감사하게도 점심 저녁을 항상 얻어먹고 있다. 40살 가까운 아들 때문에 어머니는 의도치 않은 시집살이 중이다.



문제 인식과 초기 대처

한 달 전 어느 월요일, 저녁을 먹으러 부모님 집으로 갔는데, 아버지가 나에게 "핸드폰 고장 났다며?"라고 물으셨다. 내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다고 하니, 아버지 표정이 굳었다. 그렇다. 아버지는 보이스피싱에 당한 것이다.


나는 재빨리 아버지의 휴대폰을 들었다. 범인은 원격제어로 휴대폰을 조작하고 있었다. 나는 당황스러운 와중에 원격제어부터 차단해야겠다고 판단했다. 전원을 끄려고 했으나 범인이 자꾸 취소했다. 모바일 네트워크와 와이파이를 끄려고 컨트롤 패널을 내려도 계속 차단했다. 이 와중에 범인은 문자를 보냈다. "아빠, 왜 그래?" 와... 돌겠네. 


이렇게 실랑이를 벌이던 끝에, 범인은 휴대폰을 잠가버렸다. 나는 비밀번호를 계속 입력해서 시간을 끌었다. 어차피 내가 만든 비밀번호도 아니니 틀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와이파이가 연결되지 않는 내 집으로 휴대폰을 가져가서 유심을 뽑아버렸다. 


내가 휴대폰과 씨름하기 시작하면서 부모님께 미션을 드렸다. 카드사, 은행사에 연락을 해서 모르는 결제내역을 파악해야 했다. 월요일 오후 6시경이라 걱정했는데, 대부분의 금융사에서 금융사고 관련 상담은 24시간 운영하고 있었다. 다만 한 곳, 한 곳마다 안내가 너무 많아서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경찰 신고도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접수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경찰관들이 우리 집으로 출동하셨다. 휴대폰이 원격제어 당하고 있는 상황을 확인하러 오신 것인데, 이미 그것은 끝난 이후였다. 개인정보 노출자 등록, 주민등록증 분실 신고, 사건사고 사실확인원 등의 대응 요령을 알려주고 가셨다. 



보이스피싱 방법 및 피해 규모

아버지께서 당한 순서를 정리해 봤다.

① 자녀인 척하고 문자가 왔다. 잘 알려진 레퍼토리다. 휴대폰 액정이 고장 나서 친구 휴대폰으로 연락한다고 밑밥을 깐다. 뭘 좀 사야 하는데 카드 앞뒷면 사진과 카드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한다.

② 무엇을 신청한다면서, SMS로 온 '인증번호 6자리'를 알려달라고 한다.

③ 신분증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한다.

④ 어떤 앱을 설치하고 실행해 달라고 한다. 원격제어가 시작된다. 


아버지는 60대 후반이고, 기술에 아예 무지한 분도 아니다. 오히려 이것이 더 문제였다. 애매하게 할 줄 아시니 4단계까지 클리어(?) 하신 것이다. 아버지 말씀을 들어보니, 그때 회사일이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다고 하셨다. 이렇게 사람은 뭔가 귀신에 씌면 비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2~3시간 뒤면 아들과 저녁을 먹을 텐데, 그때 말씀하시면 될 것을... 아들이 IT업계 짬밥이 몇 년인데 어이없어서 실소가 나왔다.


휴대폰 전체 권한을 탈취당하니 피해가 너무 광범위했다.

은행 3곳 인출금액 300만 원

카드 부정사용금액 40만 원 (토스페이먼츠)

간편 결제 인출 200만 원 (당근페이, SSG페이)

알뜰폰 2곳 불법개통

웃긴 것은 핵토파이낸셜이라는 곳을 통해 인출하려다가 막혔는지 170만 원이 남아있었다ㅋㅋ


사람은 사고가 발생하면 마음만 급해서 체계적으로 움직이기 어렵다. 나는 꽤 침착한 편이지만, 당해본 적 없고 당할 일도 없다고 생각하던 일이 발생하니 허둥댔다. 평소에 화재 대피나 응급 처치를 배우는 것처럼, 보이스피싱도 행동 요령을 알아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유해 본다.



자녀 사칭 보이스피싱 발생 시 대처 방법

1. 개인정보노출자 등록(금융감독원) https://pd.fss.or.kr

개인정보노출자 등록 시, 연결된 금융기관들에 준실시간으로 전파된다. 계좌 개설, 카드 발급 등이 차단된다. 가장 우선 해야 하는 조치이다.


2. 명의도용방지 서비스 https://www.msafer.or.kr

가입제한 서비스로 신규 이동전화 가입을 차단할 수 있다. 먼저 신규 가입을 차단하고, 가입사실현황조회 서비스를 이용해서 내 명의로 가입된 다른 휴대전화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미 불법개통이 되었다면, 본인인증을 통해 2차 피해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해당 통신사에 연락하여 불법개통 사실을 신고해야 한다.


3. 정부24 주민등록증 분실신고 및 재발급

주민등록증을 촬영해서 전달했다면 재발급이 필요하다. 금융사 본인인증 시 주민등록증 발급일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분실신고 후, 인근의 행정복지센터에서 재발급하면 된다.


4. 은행, 경찰서 방문

범인을 통한 계좌 인출이 발생했다면, 은행에 피해구제 신청이 필요하다. 우선 은행에서 이체확인증을 받은 다음, 경찰서에 방문하여 '사건사고 사실확인원'을 받고, 은행에 재방문하여 피해구제 신청을 해야 한다. 경찰서에 간 김에 운전면허증도 재발급받는 것을 추천한다.


5. 휴대폰 초기화

휴대폰 원격제어 피해를 당한 경우, 공장 초기화가 필요하다. 아버지의 경우는 휴대폰이 잠겨버린 상태여서 서비스 센터에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 



애필로그

사고 이후 한 달이 지났지만, 추가 피해는 없었다. 피해구제가 될지 모르겠으나 기다리고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범인은 아버지 휴대폰 주소록도 조작했다. 아들, 며느리 전화번호에서 중간번호를 하나씩 바꿔놓은 것이다. 범인들 입장에서는 아들, 며느리가 주적이었겠지... 그런데 웃픈 것은 '아내' 전화번호는 바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르신들은 범행할 때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번 일을 계기로, 사기는 누구나 당할 수 있다는 경각심이 생겼다. 내가 해외에 있을 때, 이런 일이 생겼으면 피해가 더 커졌을 거라 생각하니 끔찍하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있다면, 꼭 미리 연락드려서 피해를 예방하도록 하자. 누군가가 자녀인 척하고 문자를 보내면, 믿지 말고 나에게 전화 한 번 해달라고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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