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려보내는 마음
안녕하세요.
이 ‘뒷이야기’ 시리즈는
제 글쓰기의 미숙함과 미련을 떠나보내고,
소중한 독자님과 조금 더 가까이 이야기하고 싶어서 시작한 글이었습니다.
다른 글도 써보고 싶은데,
마음 한켠에 남은 이야기들을 다 풀어내지 않으면
쉽게 다음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건 일종의 작별을 위한 환송회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어느덧 마지막 글입니다.
무언가에 홀린 듯 본편을 정신없이 써내려갔던 날들이
이제는 꽤 먼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몇 년은
제 인생에서 가장 고단한 시기였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쳐 바닥을 드러낼 때 즈음,
저는 상처 입은 짐승처럼 방 안에 틀어박혀
아픈 곳을 핥듯 문득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과
겹겹이 밀려드는 불운 속에서
저는 세상을 탓하기보다
그저 제 안의 깊은 상처를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세상도, 저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글을 쓰는 동안
그 상처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은
거울을 잘 보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 역시 아직은 그렇습니다.
한 번은 아내가 물었습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뭘 하고 싶어?”
저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라고 답했습니다.
그 고통의 시간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러자 아내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부모님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때 저는 말했죠.
“그건 이미 내가 아니야.”
과거의 고통과 좌절,
그리고 앞으로 마주할 모든 일들은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
나를 이루는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니체는 말했습니다.
“고통 속에서 춤을 추라.”
그게 인생의 비극을 이겨내는 방법이라고요.
제가 쓴 글은 어쩌면 그런 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깨진 유리조각 위에서 담백하게 춤을 추는,
조심스럽지만 진심 어린 왈츠.
글을 쓰면서
저는 아이들을 더 깊이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음을 헤아리는 법을 조금은 배웠고,
아내와는 더 자주 눈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이제 마음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졌습니다.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동질감과 슬픔이 동시에 밀려옵니다.
특히 육아 과정에서 느껴지는
온갖 복잡한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는
때로 제 마음을 칼날처럼 파고듭니다.
그 마음을 진심으로 위로합니다.
우리의 상처는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건 우리가 버텨온 시간의 흔적이고,
다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무엇보다 어린 날의 당신을 다시 안아주시길,
그 손길이 다시 자녀에게, 또 그 자녀에게 이어지길,
아무렇지도 않은 보통날의 평안이
미소 속에 오래 남기를
저는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 이 이야기는 제 것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떠돌다,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를 바라며
유리병 속에 담아 바다로 흘려보냅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그저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