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Zwirner
코로나 3년, 국경이 막히니 본의 아니게 3년간 일본 내 아트 페어는 싹~다 가본 듯하다. 그런데 코로나 탓도 있겠지만 일본 아트 페어들의 가장 큰 불만은 너무나 도메스틱하다는 점이다. 이 그림이 저 그림, 저 그림이 이 그림...신선한 자극을 아트페어에서 찾은 경험이 매우 드물다. 게다가 운영도 아직 미숙한 행사들이 대부분이고 특히 교토 아트페어인 ACK(Art Collaboration Kyoto)같은 행사는 혀를 찰 정도로 어의 없는 수준이기도 하다. 그나마 아트 페어 도쿄 Aat Fair Tokyo가 볼만하지만 이 역시 해외 유수 갤러리의 부재가 아쉽다.
하여간 돌림병이 마침내 끝자락에 걸린 2023년 5월 중순. 바젤 홍콩을 고민하다 가 본 적 없는 참신한 타이페이 당다이를 선택했다. 아트페어 리뷰 첫 편으로 세기의 아트 딜러이자 쿠사마 야요이의 아메리카 대륙 에이전시인 David Zwirner의 부스.
Yayoi Kusama - 흥행몰이
글로벌 미술 시장 최고의 딜러 중 한 곳인 데이비드 즈위너가 쿠사마 야요이의 대형 초창기 인피니트 원화 작품을 떡~하니 내 걸고 부스를 차렸다. 이게 대체 얼마짜리야? 눈이 휘둥그레져 사진도 찍고 열심히 침 흘리며 감상을 하는데 캡션도 안 보이고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NOT for SALE!
사람들을 끌어모으는데 쿠사마 야요이보다 더 기능성이 좋은 작가가 있을까?
Ketherine Bernhard - 빅 딜러의 품으로
Katherine Bernhardt
Shower Power, 2023
Acrylic and spray paint on canvas
120 × 96 in | 304.8 × 243.8 cm
핑크 팬더와 ET를 좌청룡 우백호로 세우고 그라피티 & 팝 아트의 큰 누님이며 아이콘이 될 뻔(?) 했던 캐서린 버나드의 3미터 대작도 볼 만했다. 작가의 주요 등장인물인 핑크 팬더가 열심히 샤워를 하는 재미난 작품으로 흰 대리석이 깔린 천장이 높은 단독 주택의 원형 현관에 떠~억 걸면 안성맞춤이 되고도 남을 멋진 작품.
한때 "앞으로 팝아트는 내가 접수한다"라 할 정도의 기세로 인기를 누리던 캐서린 버나드. 변화 무쌍한 미술 시장에서 그녀를 찾는 이가 예전만 못하던 2~3년 전부터 데이비드 주위너와 한배를 타게 된다. 과연 세기의 딜러 품 안에서 훨훨~ 날아오를 수 있을지? 일단은 순항 중인 듯...
Robert Rayman - MOMA에서 MOMA로
Robert Ryman
Untitled, ca. 1963
Oil on stretched sized linen canvas
77 3/5 × 77 1/2 × 1 9/10 in | 197.2 × 196.8 × 4.8 cm
미니멀리즘의 초기 멤버, 컨셉추얼 아트와 모노크롬을 바탕으로 한 "white on white painting"의 창시자 등 로버트 레이먼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많다. 이 줄줄이 늘어 붙은 수식어들 만큼 그의 살아온 길에도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따라붙곤 하는데, 이 이야기들을 듣고 로버트 레이먼의 작품들을 다시 보면 그저 존경스러울 뿐이다. "내 당신은 진정 아티스트의 길을 걷도록 정해진 운명이었습니다."
1930년 Tenessee Nashiville에서 태어난 Robert Rayman은 10대 후반에 색소폰을 배웠다. 그러나 재미를 느끼지 못하자 선생님이 되고 싶다며 교육 대학에 들어간다. 하지만 '난 가르치는데 소질이 없어'하고 학교를 때려치운 후 재즈 밴드를 결성해서 활동하다 한국 6.25전쟁에 참전해 미군 병사들을 위한 위문 공연단으로 활동한다. 전후 미국으로 돌아간 작가는 뉴욕에 자리를 잡고 색소폰 재즈 연주자로 활동하며 가벼운 주머니는 MOMA에서의 경비 일을 하며 충당하게 된다. 이후 수많은 재미난 이야기들이 있지만, 쑥~ 줄여서.... 경비 일을 하던 어느 날 무언가에 홀린 로버트 레이먼은 근처 미술 재료상에 가서 캔버스와 그림을 그릴 만한 도구들을 가득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 난생처음 진지하게 그림이라는 것을 그려 보게 된다. 그리고 2019년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미술사의 전설로 남을 수많은 작품들을 남기며 전 세계 미술사에 그의 이름 또한 굵게 남기게 된다. MOMA에서 경비를 서던 사람의 작품이 MOMA의 컬렉션으로 남게 되는 일이 역사에 또 있을까?
이번 타이페이 당다이 아트페어에서는 그의 작품 석 점을 영접할 수 있었다.
Alice Neel - 명작의 태
Alice Neel
Dick Kollmar, ca. 1965
Oil on canvas
80 × 30 in | 203.2 × 76.2 cm
역시 명작은 어디에 걸던 태가 나게 마련이다. 아메리칸 모더니즘의 대표적 초상화 작가인 Alice Neel의 작품이 너무나도 멋지게 걸려있다. 왜소한 체구의 다소 미소년의 기운이 풍기는 남성이 2미터 X 76센티라는 독특한 캔버스 안에 들어있는데 인물 자체로도 너 할 나이 없이 멋진 작품이지만, 그 뒤의 형상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다.
엘리스는 여느 날처럼 자신 그림의 모델이 된 남성을 무심히 그려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문득 떠오르는 잡념에 붓이 멈추었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저 남성은 실제 존재하는 것일까?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현재의 순간은 시간의 흐름 속에 이미 자취를 감춘 과거일지도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의 상상일지도 모른다' 꼬리를 무는 막연함은 엘리스에게 또 다른 영감을 불어 넣었고 그리던 그림을 모델의 뒤에 세워 보았다. 과거와 현재,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을 나란히 바라보며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엘리스 닐의 Dick Kollmar. ca 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
초상의 모델과 그림 속 미완의 캔버스 그리고 거칠게 강조된 하반신의 그림자.
엘리스 닐의 Dick Kollmar. ca, 이번 타이페이 당다이에서 본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든 작품.
이외에도 기억에 남는 두 작품
Al Taylor
Untitled, ca. 1974-1975
Acrylic on canvas
72 × 48 in | 182.9 × 121.9 cm
Michaël Borremans
Sirtaki, 2016
Oil on wood
8 9/10 × 12 4/5 in | 22.5 × 32.4 cm
이상 일본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Robert Rayman의 초창기 작품과 첫 조우의 Alice Neel의 작품을 감상한 것만으로도 바다 건너 그림 구경 온 고생은 충분히 보상이 된 데이비드 즈위너의 타이페에 당다이 부스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