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넘어선 가장 숭고한 순간
오늘 이야기는 네가 태어나던 순간을 말하려고 해. 아직 예정일 남은 날이었어. 막달의 밤마다 엄마는 화장실을 자주 다녔어. 네가 커가면서 배 아래로 내려앉았기 때문이었지.
그날 새벽도 별다르지 않았어. 졸린 눈을 비비며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갑자기 축축한 느낌이 엄마를 멈춰 세웠어.
불안한 마음에 다시 화장실로 향했더니 속옷이 다 젖어있었어. 맑은 액상이 원인이었던 거야. 임신하면 분비물이 많아져. 엄마는 그거라 생각하고 다시 자려고 누웠는데 몸의 반응이 예전 언니들 출산과 달라 덜컥 겁이 났어. 덜덜 떨리는 손과 다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했어. 눈앞이 캄캄해 아빠를 깨워야 한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만 거야. 마치 수도꼭지가 터진 듯 양수가 흘러내리는데, 사실 무서웠어.
정신을 다잡고 자고 있던 아빠를 깨웠어. 병원에 전화해 보라고 했지. 하지만 경험이 없는 아빠는 엄마보다 더 허둥지둥했어. 언니들 때는 양수가 터지지 않아 너를 가지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거 같아. 병원에서는 당장 오라고 했단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어. 터져 버린 양수를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새하애 졌어.
엄마는 속옷 안에 수건을 겹겹이 깔고 병원으로 향했어. 우선순위는 오직 너였어. 혹여 무슨 일이 생길까 마음이 조마조마했지만, 너를 지켜야 한다는 다짐이 더 컸단다.
양수가 터짐과 동시에 너는 세상으로 나올 줄 알았지만 한 시간, 두 시간이 흘렀지만, 진통은 그 자리였어. 결국 의사는 유도분만을 권했고, 엄마는 주사를 맞고 다시 기다림을 시작했어.
여니야, 엄마는 비록 연약한 여자였지만, 내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순간엔 두려움이 사라졌단다. 이를 악물고 네게 불안이 전해지지 않도록 끝없이 용기를 짜내었지.
덩치가 큰 아빠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작아 보였어. 안절부절못하는 그 모습이 오히려 엄마를 차분하게 만들더라. 언니들을 낳을 때는 젊고 건강했지만. 너를 기다리던 그 시절의 엄마 몸은 병을 안고 있었고, 나이도 많았어. 출산의 고통보다 무사히 출산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고 걱정이 배로 되었어.
자연분만 대신 수술도 고민했지만, 네가 자궁에 정상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기에 끝까지 힘을 내기로 했어. 임신 요가도 열심히 다녔고, 허벅지 근육을 단단히 만들며 준비했었지. 양수가 생각보다 많았던 탓인지 입원 내내 흐르고 또 흘렀어. 양수가 멈추지 않으니 혹여 네가 자궁에서 위험하지 않을까 또 걱정이 되었어.
너를 맞을 준비 단계에서 힘을 주다 다리에 쥐가 나 간호사가 다리를 주물러 주기도 했어. 간호사들이 엄마 배 위에 몸을 기대며 너를 나오게 하려 애쓰던 순간, 엄마도 힘을 냈어.
아침 7시에 입원해 정오가 넘어서야, 드디어 네 울음소리가 병실 가득 울려 퍼졌어. ‘으엥’
그 첫울음에 엄마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단다.
의사는 너를 보여주며 얼굴이 작다면서 이쁘다고 칭찬하셨어. 힘차게 울던 너, 온 힘을 다해 세상에 나왔다고 울던 너는 엄마 목소리에 울음을 뚝 그쳤단다.
여니야, 언젠가 네가 출산을 겪을 날이 올 거야. 엄마가 곁에 있다면 경험을 나누고 너의 손을 잡아주겠지만, 혹시 함께할 수 없는 날이 오더라도 꼭 기억해 줘.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는 걸. 아이 앞에서 엄마는 절대 나약해지지 않는단다. 출산은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이지만, 동시에 가장 숭고하고 위대한 순간이야.
너를 낳으며 엄마는 두려움보다 설렘을 품었고, 나이와 병든 몸조차 그 순간만큼은 아무 의미가 없었어.
출산의 고통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어. 부모의 고통을 이해하게 하고, 삶의 깊이를 배우게 하지. 어른들 말에 아이를 낳아야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말은 아이들 출산하고 절실하게 느꼈어.
아이의 웃음을 보는 순간 그 고통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모유를 빠는 모습에서 전율이 흘려. 이건 해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는 모성애라는 거야. 그래서 다시 또 생명을 품을 용기를 내는 거야.
엄마는 아이를 위해 태어난 존재란다. 신이 모두의 엄마가 될 수 없어 각자 엄마를 내려주었다는 말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어. 아이를 가지는 순간부터 모성애는 여자가 아닌 엄마로 태어나게 해주는 거였어.
요즘 넌 출산 영상에 관심을 가지며 묻곤 하지. 아기를 낳을 때 얼마나 아픈지 물으면, 엄마는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 말하지.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보다 아프다고, 그러나 그 아픔 속에는 진주보다 더 귀한 너를 품에 안을 수 있는 것만으로, 아픔을 아픔이 아니게 된다고 말했지. 그만큼 네가 소중하단 뜻이야.
인생을 살다 보면 다른 고통이 찾아올 거야. 그럴 때마다 두려워하지 말고, 그 고통이 너를 단단하게 만들 거라는 믿음을 가져. 어떤 시련도 결국은, 성장의 밀 거름이 된단다.
너는 언니들과 다르게 양수부터 터트리며 남다른 출발을 했어. 그래서 엄마에게 더욱 특별하고 귀한 아이야. 약한 몸에서 피어난 싹, 그 결과물이 바로 너라는 사실이 엄마에겐 큰 힘이 된단다.
사랑하는 내 딸,
혹여 위기가 너를 흔들어도 겁내지 마. 너는 충분히 이겨낼 수 있어. 엄마가 널 지켜냈듯이, 너 또한 자신을 지켜낼 힘을 가졌단다.
여니야, 너는 존재만으로도 귀한 선물임을 잊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