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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현 Jul 16. 2015

습작 #5 - 파주에서의 이틀

조금 더 흘러 흘러 가야겠어

도시 생활은 각박하다고 말한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10년 넘게 살고 있는 나는  그동안 도시 생활을 하면서 '외로움', '각박함', '산만함', '혼잡함'이라는 쉽게 떠올려왔다. 최근, 아버지가 어머님과 함께 파주 교하에 전원주택을 구입하셨다. 덕분에 나 역시 며칠 동안 파주에서 머무르며 도시를 벗어난 삶을 살짝 경험할 수 있었다. 익산에서 데려온 두 마리의 강아지들을 보살피면서 느낀 시골 삶의 감상을 간략하게 남겨보고자 한다.


강아지 두 마리가 내게 준 위로와 안식.

내 기억 속에는 '토니'라는 강아지가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초등학교 몇 학년이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던 그 때 1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우리 집에 머물렀던 그 아이. 학교를 다녀와보니 쥐도 새도 모르게 다른 집으로 팔려갔었던 작은 '몰티즈'였다. 그 후 나는 애완동물을 기를 만한 일이 별로 없었다. 갑작스럽게 외갓집 2층의 단칸방 생활을 했을 때, 막내 외삼촌이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았던 믹스견 초롱이도 내 친구였다.


33살에 만난 두 마리의 강아지는 진돗개였다. 호구(호랑이 무늬의 진돗개) 아버지와 백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두 마리의 강아지는 파주 아버지 집의 새로운 식구가 되었다. 직접 내 손으로 익산으로부터 파주까지 데려와 목욕을 시키고 밥을 챙겨주고 시간을 보내며  끊임없이 이름을 불렀다. 다음 날에는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아버지를 도와 집을 지어줬다.


생각지도 못한 위안과 안식이 내게 왔다. 이름을 붙여주고 불러주는 행위, 아무런 가식 없이 나를 바라보며 꼬리를 흔들고 웃는 그 모습, 오줌과 똥을 치우고 밥을 챙겨주면서 느끼는 만족감, 목욕을 시킬 때 느껴지는 촉감, 이 모든 과정이 교감의 순간이었다. 파주에서의 이틀 동안 내 고질병이었던 '외로움'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가장 큰 이유가 이 두 마리의 진돗개 덕분이었다. 애완동물을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위로를 받는지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파주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청소를 하고 바깥에 나가 밭을 보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차를 타고 이동해 물품을 구입한 뒤 돌아와야 했다. 신림에서는 대부분 컴퓨터 앞에 앉아 있거나 침대에 누워서 TV를 보고는 했는데 이 곳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개집을 짓기 위해 하루가 사라질 정도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시간을 보냈다. 파주 생활 초반인 관계로 갖춰지지 않은 것이 많아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틀 동안 잡념 없이 계속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이점으로 느껴졌다.


가만히 있다 보면, 잡념이 나를 사로 잡는다. 컴퓨터에서 페이스북을 켜고, 카카오톡으로 지인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 몸부림을 치지만 여전히 외롭다. 멀지 않은 그 곳에 그들이 살고 있지만 만나지 않고 있기에, 외로움의 크기는 상대적으로 컸다. 하지만 파주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물리적으로도 먼 거리,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그 곳의 생활, 혼자만의 시간이 있어도 그곳에서는 그것이 당연했다. 음악을 듣고, 영어 리스닝을 하면서 시원한 바람을 쐬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금방 지났다. 나를 괴롭히던 잡념이 잠시 사라졌다. 그곳에서는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미래에 대한 고민, 지난 일에 대한 후회, 부족하게만 보이는 내 삶의 결함들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시골에서 자라본 적이 없기에, 내 고향 전주 역시 나름 큰 도시였다. 아버지처럼 톱질을 하고, 못질을 하고, 드릴을 사용하는 일을 잘하지 못한다. 그래도 옆에서 이를 도와 나무를 잡아주고, 필요한 공구를 가져다주는 일은 마치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흘러가다 보니 파주가 나왔다. 조금 더 가보자.

본격적으로 파주에서의 삶을 살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이틀 동안 느꼈던 파주에서의 기분, 도시 생활에서 느끼지 못한 그 감상들이 단지 주변 상황이 바뀌어서 그랬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도시 생활은 도시 생활 나름의 편리함이 있을 것이고, 시골 생활 역시 그와 다른 장점이 있을 테다. 다만, 파주에서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보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휴일마다 힐링을 위해 전원으로 향하고, 자연으로 향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닐까.


결국 사람은 상황에 맞게 변하고, 맞춰 살아가게 된다. 삶을 바꾸고 싶으면 주변 상황을 바꿔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운이 좋게도 전원 생활을  함께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었다. 33년 동안 혼잡한 곳에서 살아왔던 내게 단 이틀의 파주 생활은 생각보다 큰 즐거움과 안정감을 주었다. 


내 인생의 33번째 해, 나를 바꾸고 싶었다. 그 열망이 나를 즐겁게 만들었고, 힘들게 만들었고, 어리석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바뀌고 싶은 나, 돌아가고 싶은 나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흔들리고 있다. 그 와중에 만나게 된 파주 생활은 바뀌고 싶은 욕망 쪽으로 나를 조금 더 끌어 당겼다. 


내 삶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새로운 일을 하게 될 수도 있지만 아직 결정된 바는 없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슬럼프에 빠진  듯하다. 서울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 왔는데 아직까지도 서울이 익숙하고 편리하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내 삶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바라는대로 흘러간다

바뀌고자 한다면 바뀔 것이지만, 시간은 오래 걸린다. 발버둥 치며 살아도 결국은 흘러가야 할 곳으로 흘러가게 된다. 그러니 무리하게 발버둥 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여 이런 말들이 당장은 크게 와 닿지 않는다. 


파주에서의 이틀 동안 인벤을 그만뒀을 때의 나, 7개월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했다. 나아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달라진 것은 확실하다. 조금씩,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조금 더 흘러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방향성을 잡고 흘러가다 보면 새로운 곳이 나올 거야. 나는 본능적으로 33살을 맞는 올해가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그 때임을 알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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