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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Jan 24. 2022

왕이 되려는 여자 VS 왕의 여자가 되려는 여자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 <공작 도시>  리뷰

18대 대선 무렵이었다. 진보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그럴 거라 짐작되던 한 지인이, 누구를 찍어야 하냐는 고민을 나누는 자리에서 폭탄 발언을 했다. “우리도 여자 대통령 한 번 뽑아봐야 하지 않겠어요?” 놀라웠다. 그렇게 믿은 사람이 많아서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한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최초 여성 대통령이 초유의 탄핵 대통령으로 추락하는 동안, 그의 정치적 무능과 무책임 외, 단지 여자라는 사실로 부적절한 말들이 범람하는 혼란의 시간을 지났다. 그러는 사이 ‘여성’ 대통령이란 마치 생일날 망가진 케이크처럼 다시 쓰기 어려운 무엇이 되어버린 듯했다. 우리에게 가슴 뛰게 하는 여성 대통령을 맞게 되는 날이 올까. 하나마나한 상상을 해보던 요즘, 반가운 드라마를 만났다. 웨이브 오리지널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이하 이상청)다.    

  

그가 청와대로 직진해도 되는 이유     



<이상청>은 갑자기 문화체육부 장관으로 깜짝 등판하게 된 정은(김성령)을 중심으로, 일관된 계획이라곤 일도 없는 주먹구구식 정치 해프닝을 코믹하게 엮는다. 웃음을 폭발시키는 코믹물이지만, 드라마는 놀라우리만치 현실적인 상황들을 극 안으로 끌어들여, 키득키득 웃다가는 바로 현실 정치 쇼의 한 컷들을 떠올리게 하는 날카로운 감각을 보여준다.    

  

VIP의 실세로 보이려는 청와대 민정수석의 허세, 속물 국회의원의 역겨운 거래 정치, 정론직필은 전가의 보도가 되어 버린 언론의 천박한 보도 행태, 종교계 인사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벌이는 막가파식 혐오 공세, 그리고 어공’과 ‘늘공’ 간의 아슬아슬한 긴장감까지, 정말 촘촘하고 생생하다.      


전 문체부 장관의 불미스런 스캔들을 잠재우기 위해 청와대는 신선한 인물이 필요했다. 이런 시기 국민 영웅은 꽤 맞춤한 소재고 정은이 낙점된다. 야당 국회의원이었다는 전직 외, 그는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사격 금메달리스트이자 앙골라에서 자이툰까지 섭렵한 군인 출신이다. 그의 충직하고 안정된 이미지는 추한 소문을 잠재우기에 딱이었다.      


설계자의 계획에 정은은 아마도 위기를 모면할 시한부 패였을 테지만, 어느 날 갑자기 ‘어쩌다 공무원’(장관)이 된 정은은 진심을 다하기 시작한다. 이벤트성으로 출범시킨 문화예술체육계범죄전담수사처(체수처)가 잠깐의 여론을 움직이는 도구로 이용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폭력 피해자가 더 큰 피해를 입게 하지 않기 위해, 정은은 자신의 폭력피해를 대담히 커밍아웃한다. 자신이 바로 체육계 폭력의 당사자이며 가해자가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자칫 정치 쇼로 그칠 체수처 설치를 명실상부한 조직으로 만들려한다.  

    

정은이 느닷없이 각료가 되어 고군분투하는 동안, “유시민이 되고 싶은 잔잔바리” 남편 성남은 열등감에 찌들어 위험한 음모를 꾸민다. 진보연하는 성남은 사회의 부정의에 매우 민감한 척하고 구조맹인 사회 구성원을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해악인 양 비난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이비 지식인이다.      


정은의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사업을 벌이고 싶지만, 번번이 단호히 “안 돼”로 일관하는 정은이 성남은 야속하다. 아내 덕 좀 보려는 얄팍한 계산이 무참히 거절당하자, 야속함은 선을 넘어 분노로 과녁을 이동시킨다. 아무리 잘난 여자라도 남편을 무시하면 어떤 꼴이 되는지 맛을 보이겠다는 성남의 치졸함은 남편이 싼 똥을 아내가 치우게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전락한다.    

  


장관 기용에 이어 국민 스포츠 영웅 출신 대북 특사로 지명된 정은은 자신의 정치 인생에 일사천리로 벌어지는 일들에 얼떨떨하다. 이런 와중에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찌라시 기사를 낚으려는 기자에게 걸려들어, 신참 장관이 일약 대선 잠룡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러한 언론 보도 과정의 재현은 찌라시가 기사화되는 무참한 과정, 그리고 기사가 더 이상 진실이 아니라 입맛대로 조작한 사실의 조합일 뿐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누설한다.  

    

그나저나 궁지에 몰린 정은은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정은은 왜 장관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지, 무엇이 공직자로서 결격인지를 전혀 설명하지 않는 납치범의 퇴임 요구 앞에 고심한다. 남편을 살리기 위해서 폭력 앞에 무조건 납작 엎드리는 게 공직자의 정의로운 선택일까. 뭔지 께름하고 어설픈 납치극에 휘둘리는 대신, 정은은 최선을 다해서 남북회담을 이끌고 최선을 다해서 남편을 잡겠다고 선언한다.      


대담히 그리고 영리하게 불의의 폭력에 맞서는 정은의 도전에서, ‘토큰 여성’ 정치인에게 붙여진 조작된 성별 이미지를 탈각하고 힘차게 전진하는 영웅의 포스가 느껴진다.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늘공’의 마음을 진심으로 향하게 해 혼연일체가 되어 위기를 타개해 나가게 만드는 국무위원으로서의 리더십은,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위해 갖은 불법과 부정의를 서슴지 않고 행하는 정치인의 몰염치를 돌아볼 때, 그가 왜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지 오히려 되묻게 한다.      


대리자 말고 여성 스스로 권력을 꿈꾸라     

 


자신을 믿고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저히 나아가는 정은과 달리, 대리자를 앞세워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는 사람이 있다. JTBC 드라마 <공작도시>의 재희(수애)는 자신의 욕망을 대리할 상대로 재벌가 미운 오리새끼인 준혁(김강우)을 선택한다. 


적당히 가졌고 적당히 열등한 재벌가 혼외자 준혁과의 결혼을 디딤돌 삼아, 성장기 내내 자신의 자존감에 타격을 입힌 세상에 일전을 고한 셈이다. 그러나 욕망이란 본디 무엇을 위해 어떻게 나아가느냐에 따라, 해방이 되기도 하지만 더 벗어날 수 없는 감옥에 갇히게도 한다. 불행히도 재희의 그것은 후자로 향한 듯하다.      


재희는 어정쩡한 자신의 계급이 사는 내내 답답했다. 판사라는 아버지의 번듯한 타이틀은 강직하고 청렴한 아버지의 성품 탓에(당연한 직업윤리임에도), 성장기 내내 재희를 화려하고 빛나는 소녀로 자라게 하지 못했다. 차라리 세상을 향해 분노를 분출할 만큼 가난하던지, 남들 보기엔 그럴듯하지만 ‘아빠 찬스’를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자신의 처지가 늘 애매하고 갑갑했다. 


그런 만큼 아버지의 무능이 싫었고, 자신의 초라한 신세를 드라마틱하게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시나리오는 오직 잘나가는 남자를 골라 그와 함께 도약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비틀어진 욕망을 좇아 결혼에 성공했고, 바야흐로 남편 대통령 만들기에 돌입한다.      


돌진하는 재희의 욕망을 바라보다 시청자는 그의 욕망에 의문을 던지게 된다. 드라마는 재희를 통해, 여성 누구나 기회만 온다면 준혁과 같은 상대와 결혼하기를 갈망한다고 가정하지만, 이것이 아직도 성공적인 결혼을 바라는 여성의 보편적인 욕망이 될 수 있을까. 분명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발원하고 있을 이 끈질긴 믿음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어져도 괜찮은 걸까.      


재희는 자신의 능력이 아무리 출중해도 부모의 든든한 지원 없이는 도저히 성공할 수 없는 현실에 분노한다.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돌아온 것은 기회의 대가로 성 상납을 요구하는 예술계 권력의 끈질긴 추근거림뿐이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결혼이라는 거래였지만, 그 결혼의 상대 역시 외도와 성 상납을 힘 있는 남성의 당연한 과실이라고 믿는 마초 남성성의 담지자다.    

  


그렇다면, 재희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온갖 모역과 혐오를 감내하면서 취할 성공이라는 목표가 과연 가치 있는 욕망이라 믿어도 되는 것일까. 쇼윈도 부부를 연출하며, 모두를 속이는 입양을 감행하고, 갖은 위법한 권모술수로 남편에 조력하고, 남편의 외도 상대인 여성을 모욕함으로써 자신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고 믿어도 되는 것일까.     

 

“온 세상이 (남편)을 우러러 보이게”하기 위해 흔들림 없이 내달리는 재희의 욕망은 그러다 문득 숨이 차 헐떡이며 괴로워진다. 비열해진 자신이 혐오스럽던 어느 날, 자신의 눈앞에 돌연 나타난 이설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재희와 이설 사이의 밀고 당기는 묘한 정동은 분명 우정 이상의 무엇을 품으며 이들 사이의 감정이 레즈비언적인 욕망일지 모른다고 추측하게 한다. 


그러나 이설의 접근이 우연이 아니고 목적을 가진 의도였다는 점에서, 이설이 재희를 향해 “좋은 사람”이므로 “지켜주고 싶다”며 돌변한 믿음은 설득력을 잃고 만다. 재희와 이설의 공모가(있다면) 여성 연대로 나아가려면, 남성 권력에 균열을 낼만한 해방적 목적이어야 한다.   

   

이 드라마의 백미이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은 재희와 시어머니 한숙(김미숙)의 고부관계이다. 두 배우의 속물스럽고 탐욕스러운 연기는 이 드라마가 스릴러물이라는 본령을 충실히 메워주고 있다. 성진그룹의 실세지만 미혼모였던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는 한숙은 자신의 주홍글씨를 떼기 위해 아들을 앞세운다. 아들을 성진의 회장 자리에 앉히는 일이야말로, 자신이 겪은 수모를 털어내고 성공하는 일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재희에게서 자신과 같은 지략가의 기질을 간파하고 조련시키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렇게 출중한 능력의 소유자인 두 여성이 결국 남성을 대리한 욕망을 실현하느라 이토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믿어지는 건 너무나 시대착오적이고 허무하다. 이 둘의 관계를 타임슬립으로 돌린다면, 권력을 지키기 위해 암투를 일삼았다고 믿어지는 왕비나 후궁들의 내전과 다를 바 없다. 


조선시대의 여자들은 스스로 권력의 주체가 될 수 없었기에, 생존을 위해 권력투쟁의 대리전에 임했다. 그러나 지금 21세기 한국에서, 저 정도 권력과 재력과 지능을 가진 여성들이 대리전을 치르기 위해 자신의 삶을 갈아 넣고 있다고 믿어야 하는 것일까.      


이제라면, 이 둘처럼 탁월한 능력의 여성들이 남성을 대리한 욕망을 좇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주체가 되어 권력 투쟁에 임하는 서사를 제시해야 한다. 이로서도 충분히 매력 있고 설득력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어둠의 암약가로 표상되곤 하는 왕의 여자들을 연상하게 하는 나태한 서사는 그만 재생산해도 되지 않을까. 누구의 여자도 아닌 한숙들과 재희들로서, 이들은 이미 스스로의 욕망을 펼치기에 충분한 자질과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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