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냥 Jun 15. 2023

조리를 중단하자 비염이 사라졌다

급식노동자들 폐암 유발한 '조리 흄(요리 매연)'


비염이 심하다. 특히 아침나절이 심하다. 아침 준비하며 쉴 새 없이 흐르는 코를 푸는 일은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언젠가부터 심해졌는데 그 원인을 1년 전에야 찾아냈다. 경위는 이랬다.     

지난해부터 딸애와 남편이 학업으로 집 밥을 먹지 않게 되었다. 딸애는 학기 동안 기숙사에 기거하고 남편은 늦깎이 공부로 야간대학을 다니느라 집에서 밥 먹을 일이 없어진 것이다. 살다 이런 일이 다 생기는구나, 쾌재를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 아침에 코가 흐르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너무 좋았다. 좋긴 한데 이상했다. 뭐가 내 비염을 호전시킨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다시 코가 흐르기 시작했다. 부녀의 한 학기가 끝나고 집으로 복귀하면서 조리를 다시 시작한 후였다.      


둔감한 나는 그때까지도 비염 재발의 원인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 코가 다시 멈추기 시작했는데, 남편과 딸애가 새 학기를 시작하고 조리를 중단한 때였다. 그때서야 무릎을 쳤다. 아 이거였구나, 급식노동자들을 아프게 만든 그 ‘조리 흄(요리 매연)’이 내게 비염을 일으켰구나.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 공간에서 나의 몇 백배 ‘조리 흄’을 마시며 지지고 볶고 끓였을 그들이 생각났다. 막을 수 없는 재해였던 것일까? 


     

조리 노동의 재해는 보이지 않는 곳에 산재해 있다     


내 언니는 식당 노동자다. 오래 일했다. 마흔쯤 자립하려고 일을 알아보는데 마땅한 일이 없었다. 급히 시작한 게 식당 일이었다. 첫발을 그리 떼고 환갑이 넘는 지금까지 식당 주방을 벗어나지 못했다. 모르는 사람은 그깟 주방일 할지 모르지만 모르는 소리 마시라. 중노동이다. 언니는 이제 안 아픈 데가 없는 환자가 되었다.

      

시난고난하던 언니가 지난겨울부터 기침이 계속 나온다고 했다. 감기인가 했다 참을 수 없어 병원에 갔더니 폐가 썩 좋지 않다고 했단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급식노동자를 아프게 하고 죽게 만든 그 ‘조리 흄’이 언니를 덮친 건가? 


먹고살기 바쁜 언니는 급식 노동자 폐암 산재 사건을 모른다. 나는 당장 식당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했지만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급식 노동자처럼 식당 노동자에게도 집단 폐 검진을 한다면, 이들에게서도 상당한 폐 질환 소견이 나올 것이다. 급식 노동자들이 산재 승인을 받는 것도 어려운데, 언니 같은 개별 식당 노동자는 어디다 호소할 수 있을까.     


폐암도 큰일이지만 급식 노동자에게 또 다른 종류의 산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얼마 전 친하게 지내던 지인 A를 만나면서다. 지인 A는 머리숱이 많은 편은 아니다. 나이 들며 숱이 조금씩 더 줄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만난 그의 머리칼 특히 앞 쪽이 확연히 줄어 있었다. 놀라 걱정이 되었지만 보자마자 숱 타령을 할 수 없어서 뜸을 들이던 차, A가 먼저 말을 꺼냈다.     


한동안 학교 급식실에서 배식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학교 급식 노동이 이런 식으로 비정규 단기 노동자로 채워지고 있는 것은 정말 문제다. 급식 위생을 위해서 조리복뿐 아니라 조리 모자도 써야 하는데 이게 화근이었다.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일하다 보면 어느새 모자 속으로 땀이 말도 못 하게 차는데, 특히 앞 쪽으로 쏠린다고 한다. 그렇다고 모자를 안 쓸 수도 없는 노릇,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앞쪽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더란다. 오랜만에 만난 A의 머리칼이 휑했던 이유였다.     

 


그런데 A가 이를 직업병이라고 의심하게 된 건, 같이 일한 선배 노동자도 A와 같은 탈모를 겪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모든 급식 노동자들이 탈모를 겪는 건 아니지만, 4~5 명 중에 2명이 탈모를 겪고 있다면, 이는 충분히 의심할만하다. 실태 조사를 한다면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듯하다. 탈모는 중대 질환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겐 소중한 머리카락이다. 다행히? 아르바이트가 끊겨서 지금은 쉬며 약을 먹고 있는데, 조금 효과가 있어 나아졌다고 한 게 나를 놀래 킨 그 정도였던 것이다.     


저임금 여성들 없이 대한민국은 하루도 굴러가지 못한다     


2021년 근로복지공단은 한 급식노동자의 폐암 사망을 처음으로 산재로 인정했다. 이후 13일 고용노동부가 제출한 자료를 보면, 학교 급식 노동자들 110명이 폐암 산재 신청을 했는데 76명만 인정되었다. 나머지 24명은 심사가 진행 중인데, 이 중 10명은 산재가 인정되지 않거나 반려되었다. 


고형암 잠복기인 10년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데, 이는 적절한 기준일까? 이들이 마시는 현저히 높은 ‘조리 흄’의 영향을 고려한다면, 10년이라는 기준은 지나치게 기계적이지 않은가? 1~2년 차이로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의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을 생각하니 착잡했다.      

 

딸애가 중학생일 때 1년간 학교급식소위원회 활동을 한 적이 있다. 조리과정이나 배식 후 급식실 소독과 뒤처과정을 볼 기회가 없었다면, 나 역시 그들의 고충을 몰랐을 것이다. 급식실은 늘 청결하게 관리되고, 조리되어 스텐 식기에 담긴 음식은 먹음직스럽다. 다 차려진 음식을 먹기만 하면 되는 사람들에게 노동은 보이지 않는다. 만약 이 저임금 노동 시장의 여성들이 싹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우선 도시락을 마련해야 하는 엄마들부터 큰 난관이다. 하루 이틀이면 모를까, 어떻게 매일 도시락을 싸겠는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도시락 싸는 노동을 줄여주는 급식 노동에 가장 공감해야 이들은 주부일 것이다. 그런데 하루 이틀 벌어지는 급식 파업에 대해 한 지역 맘 카페에서 벌어지는 공방은(아동학대다, 학습권 침해다 등) 살벌하다. 뭐 대단한 인류애가 아니더라도 입장 바꿔 생각해 보자. 저임금에 근골격계 질환은 물론 폐암까지 얻어야 하는 지독한 노동환경과 조건을 개선해달라고 벌이는 파업이 부당한가?    

  


지금껏 모르쇠로 일관한 교육청과 교육부도 급식 노동 문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값싼 노동력으로 환기도 되지 않는 노동환경에서 사람을 부려 아이들 먹일 음식을 마련하게 하는 것이 어떻게 교육 현장인 학교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인가. 노동을 하대하고 노동자를 모욕하는 현장을 보며 아이들이 그릴 노동자의 상은 무엇이 될까.   

   

그 어떤 사람도 누군가의 노동에 기대지 않고 사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지금 온갖 저임금 중노동의 현장(급식실에서, 요양원에서, 병원에서, 빌딩에서...)을 떠받치는 여성들이 없다면 대한민국은 하루도 돌아가지 않는다. 정부나 지자체 기업들 모두 이들의 노동을 소중히 여기고 정당한 임금과 노동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      

작가의 이전글 '사이렌'이 울렸다, 진격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