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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Apr 03. 2020

'인포데믹'은 격리된 나도 가만두지 않았다

'가짜뉴스'의 창궐을 보며

   


코로나 바이러스의 습격으로 다른 세상에 산 지 몇 달, 새로 구입해 처음엔 팽팽했던 고무줄 바지가 입다 보면 늘어나 허술해지는 것처럼, 일상이 헐거워졌다. 코로나 추이를 알리는 현황판으로 아침을 열고, 또 어딘가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안내 문자에 잠깐 놀라고, 바삐 나갈 일이 없자 집안을 어슬렁대며, 거의 코로나 서사로 채워진 지인들의 SNS로 세상을  향한 작은 창을 내기도 하면서. 그 창을 통해 본 세상의 차이도 꽤 첨예함을 느끼면서.    

 

디지털맹인 나로서는 정말 획기적인 변화도 있었다. 참여하는 단체에서 오프라인 회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자, 온라인 회의를 진행했다. 화상회의라니, 그것도 열 명이 동시에, 신세계를 영접했다. 신기했지만, 어색했다. 이 어색함이란, 대면 관계가 지배적인 세대의 정서일 테고, 애초 화상 대면이 보편화된 세대라면, 이 어색함이란 느낌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을 터, 세대 간 공유되는 감정의 폭이 얇아질 테다. 


창궐하는 ‘인포데믹’  

  

한 가톡방에 빌 게이츠가 썼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 전염병 재난의 위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며, 이 위기의 책임은 모두에게 있으니, 자신을 성찰하며 잘 이겨내자는 뻔한 내용이었다. 석유 재벌 액손 모빌이나 햇빛을 차단한다는 기함할 프로젝트에 엄청난 투자를 한 자본가가 한 말치고는 참 염치없다는 생각이 들어 어이가 없었는데, 다른 지인이 감동했다며 맞장구를 쳤다.


불끈했지만 반론하기도 기운 빠져, 악질 가짜 뉴스를 퍼 나르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허망했다. 그러다 두어 시간쯤 지나 우스운 일이 벌어졌다. 빌 게이츠 글이라고 올린 지인이 그 글이 가짜 뉴스였다고 알려오지 않는가? 기실 가짜 뉴스가 아니어도 한가한 얘기한다고 일침을 놓으려던 걸 참고 있던 참이었는데, 가짜 뉴스라니. 헛웃음이 났다.    


가짜 뉴스로 판명된 글의 내용 중 가장 화가 난 지점은 이랬다. ‘감염은 평등하다, 튀르도 총리 부부나 톰 행크스 부부를 보아라, 저들도 똑같이 감염되지 않나.’ 이 말은 맞지도 않지만 부정의하기 이를 데 없다. 우선 이들은 감염되지 않으리라 생각했기에, 한 마디로 방심했기에 (비행기가 세계를 일일생활권에 묶은 지가 언젠데, 어떤 감염병이 아시아에서만 돌고 말거라 단정하고 무방비란 말인가), 감염된 것일 뿐이다. 이들이 경각심을 갖고 보호막을 쳤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다.   

  


하지만 감염을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거리인 이미터조차 확보할 수 없는 사람들은 이 전염병에 어떻게 대응한단 말인가. 감염병 생활 수칙인 손 씻기는 어떤가. 물이 없는 지역에서 어떻게 손 씻기를 위생적으로 할 것이며, 이런 나라에서 마스크를 어떻게 구해 쓴단 말인가.


많은 공간이 머릿속에 어른댔다. 군대, 병원, 수용소, 빈민촌, 난민촌 등등. 감염이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말은 허위다. 게다 감염된 후의 풍경을 상상하는 것은 더욱 참혹하다. 인권이 아예 제로 값으로 설정된 공간에서 감염된 환자들이 적절한 조치로 치료받을 리 없다. 빌 게이츠가 한 말이어도 문제지만, 아니라고 해도 참 몰상식한 생각을 전하고 있다. 전염병은 질병과 마찬가지로 매우 차별적이다. 전혀 평등하지 않다.  

   

미국에서 급속도로 확진지가 늘어나자 뉴욕에 사는 지인이 걱정되었다. SNS로 괜찮냐고 안부를 묻자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 통화는 “얼마 전까지 한국을 걱정했는데 이제 여기가 난리네”로 시작해, 아비규환까지는 아니지만 자못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우선 먹는 게 문제인데, 일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다 보니 요리도 힘들어, 그간은 자주 매식을 해왔고, 조리된 음식을  주로 사다 먹었는데, 나갈 수가 없으니 너무나 막막하고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게다 남편이 얼마 전 림프종 수술을 받아 회복 중이라 신경이 무척 쓰인다고 했다.   

  

뉴욕은 인구도 많고 가난한 사람들도 많다. 비좁은 주거환경에 조리에 적당한 주방 시설을 갖추기 어렵다 보니, 대부분 매식을 한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식당 이용이 보편화되어 있어 감염이 빨랐고 쉬웠을 거라고 한다. 현재 코로나 증세가 있어 병원에 연락해도, 별 대책이 없으니 집에서 자가격리하라는 안내가 고작이라고 한다.


지인의 경우 의료보험 적용으로 어느 정도 보호되지만, 보험이 없는 빈곤층에게 이 시기는 정말 위기이라고 했다. 그나마 뉴욕 시장이 민주당이라 좀 나은 편이라고 기대하는 듯했다. 이런 줄은 알았지만, 슈퍼 국가라는 말이 허명임을 진즉에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 전염병에 속수무책인 나라임이 셀프 폭로되었으니...     



좀 있자 또 다른 카톡방에 퍼 나른 글이 올라왔다. ‘코로나 이차 파동이 우려된다. 이탈리아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미 변종 된 바이러스로 감염 속도가 네 배나 빠르다, 두 주가 고비인데 절대 감기에 걸리면 안 된다’, 이런 내용이었다. 글을 올린 지인의 의도는 ‘다 같이 조심하자’였을 것이다.


근데 딱 봐도 가짜 뉴스인데 이걸 믿고 다른 데도 막 퍼 날랐으면 어쩌나 싶어, 어디서 받은 글이냐고 가짜 뉴스 냄새난다고 하자, 학교 선생님이 공유해 주었다며 펄쩍 뛰었다. 학교 교사라고 가짜 뉴스에 속지 않는 백신을 맞은 것은 아닐 터, 또 헛웃음이 나왔다. 아 진짜, 가짜 뉴스가 왜 이리 많은 거야...    


반전은 오래가지 않았다. 삼 십 분도 되지 않아, 가짜 뉴스라는 연락이 왔다고, 글을 올린 지인이 민망해하며 알려 왔다. 얼마나 오염된 정보 속에 살고 있는지 실감 나는 하루였다. 가짜 뉴스라고 판단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고 진짜라 믿어버리면, 가뜩이나 불안한 사회에 혼란이 가중되는 건 자명한 일이다. 허긴 유명 일간지도 가짜 뉴스를 무람 없이 내보내는 실정이니, 가짜 뉴스 판별하기가 어려워진 건 사실이다. 대체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코로나 방지 생활 수칙처럼, 창궐하는 ‘인포데믹’에도 판별 수칙이 필요하다. 개인의 리터러시에만 기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 위기에 소외되는 이 없기를 


다시 빌 게이츠 가짜 뉴스가 올랐던 카톡방으로 돌아가겠다. 이번은 가짜 뉴스는 아니었다. 한 지인의 자녀가 뉴욕에서 귀국했는데 자가 격리 중이라고 한다. 자가 격리자라고 전달된 물품을 사진 찍어 올렸는데 쏠쏠해 보였다. 라면, 햇반, 즉석 카레, 물, 우유, 휴지, 손 소독제, 마스크 등이 보였다. 지인은,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외치며 꾸러미를 선물처럼 받았다고, 애국심이 펄펄 끓는다”고 전해왔다. 긍정 마인드의 최고봉이다.     


근데, 왜 우리는 안 주지? 우리도 애국심 느껴보고 싶은데. 내 딸도 해외에서 거의 엑소더스 급으로 귀국한 지 닷새 짼데. 일곱 달 만에 귀국했어도 오자마자 감금되어 서로 만지지도 못하고 대화도 휴대폰으로 하며 국가 시책에 너무나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는 마당인데. 왜 우리에겐 보급품이 없는 거지? 별게 다 샘이 나던 차, 결국 전화해 알아본 결과, 딸애는 코로나 심각 국가로 분류된 나라에서 입국한 게 아니라서, 즉 자가격리가 의무가 아니라서, 보급품이 없다는 말이었다.


흠..의무가 아닌 걸 이렇게 철저히 지키고 있는 우리, 진정한 애국자인가, 과도한 매뉴얼 수행자인가. 어쨌거나 의무도 아닌데 이렇게 책임 있는 시민성을 발휘하는 데, 보급품이 없다니, 서운하네. 우리도 보급품 받고 애국심 끓고 싶다.     



재난 기본소득이 현실화되면서 각 지자체의 도민, 시민마다 호불호가 갈릴듯하다. 개인적으로 기본소득 지지자로서 재난 기본소득이라는 명칭에는 동의하지 않지만(기본소득은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지급하는 게 기본적 가치다), 어쨌든 힘겹게 이 시기를 견디고 있는 분들에게 하루빨리 재난 수당이 지급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다 슬그머니 그럼 나는, 우리 가정은 받게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야 그림자 노동자지만 내 남편도 자영업자고, 아주 죽을 맛은 아니지만 경영이 꽤 어려운데, 그렇게 이것저것 따져 배제되면 되게 섭섭할 거 같은데. 조건을 따지는 행정비용도 만만치 않을 테고, 선별은 그야말로 가려내는 것이기에, 꼭 받아야 할 누군가는 반드시 제외되는 마련이다. 받지 말아야 할 누군가를 가려내기 위해 정작 받아야 할 대상이 제외된다면, 재난 기본소득이란 말이 너무 무색하지 않을까.    

 

딸애와 서로를 가둔 지 닷새째, 잠자리에 들 때마다, 자고 나면 두 주가 지나있었으면 하는 허황된 생각을 하게 된다. 단지에, 거리에, 공원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텐데, 속절없다. 아, 시간아, 어서 어서 흘러가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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