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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Jul 31. 2020

나는 이 드라마를 보이콧하겠다

JTBC 드라마 [우아한 친구들] 리뷰


오랜 친구들이 모여 장난을 시작한다. 서로의 휴대폰을 식탁에 내놓고 그 내용을 공유하는 게임을 시작하는데, 치킨게임이 예정될 수밖에 없다. 모두 사이가 좋은 듯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위태로울 정도로 금이 가 있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중년 ‘쇼윈도 부부’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까발긴 영화 [완벽한 타인]의 얘긴데, JTBC 드라마 [우아한 친구들]도 이런 정도의 서사이지 않을까 예상했다. 오랜 친구와 이들 부부의 숨겨진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며 퍼즐이 맞춰지는 미스터리물이겠거니 하며 보기 시작했는데, 이를 어쩌나. 계속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망설이게 할 정도로 수준 미달이었다.    


“20년 지기 친구들과 그 부부들의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드라마”라 소개된 [우아한 친구들]은 이 드라마의 본령이 대체 미스터리 드라마인지 아니면 역겨운 성범죄 전시 드라마인지를 헷갈리게 하며 시종일관 불쾌감을 자아낸다.


중년이 된 20년 지기 친구는, 그 세월은 단지 외모만을 변화시켰는지, 이들이 모여 벌이는 저속한 치기(주점에서 젊은 여성들에게 부킹을 시도하고, 함께 놀 여자를 소개해 달라고 떼를 쓰고, 오줌발 경쟁에 패싸움까지... )는 미성숙한 어린 남자의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저런 걸 의리라고 부르나 싶은 비이성적인 부화뇌동은 물론이고, 젠더 의식의 부재 또한 심각해 성 평등 관점에서 인권침해적인 장면이 빈번히 등장하며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 드라마 미스터리물 맞나?     


대학 동창인 20년 지기들에게 대학 시절 어떤 사건이 있었고 이 사건에 이들 모두가 자유롭지 않음을 드라마는 암시한다. 이 사건의 진실을 가지고 20 년 전에 사라졌던 해숙(한다감)이 만식(김원해)의 죽음을 계기로 친구들 앞에 등장하고, 이어 미스터리가 본격 전개될듯하던 드라마는, 골프강사 강산(이태환)의 등장과 함께 폭력적인 성범죄물로 전락한다.  

   

골프강사인 강산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정해(송윤아)에게 접근한다. 일부러 교통사고를 내 부채감을 가지게 하더니 골프 레슨을 하며 정해의 신체에 불필요한 접촉을 하고 날치기범들에게서 정해를 구해낸다. 마침내, 잦은 접촉으로 낯선 타인에 대한 경계가 흐릿해질 무렵, 바에서 우연히 마주친 듯 접근하여 물뽕으로 혼절시켜 나체 사진을 찍는다. 게다 그 사진을 남편 궁철(유준상)과 친구 재훈(배수빈)에게 유포하는 장면에서 시청자는 기함하지 않을 수 없다.   

  

강산은 불법 촬영한 사진을 무기로 정해를 협박한다. 그녀가 근무하는 병원에 찾아와 을러대며 “사귀자”고 강요한다. 불법 촬영한 사진을 찍어 유포한 것도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데, 이를 무기로 사귀자고 떼쓰는 이 상황은 분명 심각한 범죄임에 틀림없는데, 이 설정이 드라마의 미스터리에 과연 반드시 필요했을까?


“세상에 알려지는 게 더 무서워”, 경찰에 신고하자는 남편 궁철(유준상)의 제안을 거절하고 어떻게든 조용히 처리하고 싶어 하는 정혜의 입장은, 불법 촬영이라는 범죄에 노출된 여성은 그 나이나 지위, 계급 여하를 막론하고 같은 양상의 피해에 처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며, 시청하는 여성의 공포를 극대화한다.  

   

이 부부들의 모습이 보통 중년 부부들이 살아가는 모습일까  

   

[우아한 친구들]은 등장하는  부부 관계를 그린 서사도 문제적이다. 우선 경자(김혜은)와 형우(김성오)의 부부 관계를 보자. 연상녀인 아내에 빌붙어 사는 무능한 영화감독 형우의 태도는 이 사람이 경자의 배우자인지 자식인지조차 묻기 민망할 정도다. 아내에게 “누님, 엄마, 찌찌” 따위의 창피한 언설을 날리는 것에서, 자신의 무능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애로 영화배우였고 지금은 고급 바를 운영하는 아내의 위치를 이용해 자신의 이력을 쌓는 데 이용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남편(형우)의 출세를 위해 아내(경자)가 술 접대에 나서는 장면에서 이 드라마의 저급함은 바닥까지 드러난다. 영화사 대표가 술자리에서 경자를 대놓고 성희롱하는데도 형우는 아부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경자가 그 수치(범죄)를 감내하도록 방관한다.


더 웃지 못할 일은 성희롱을 당하고 접대 자리를 뜬 후 경자가 영후에게 “힘내라”며 위로를 전하는 장면에 있다. 남편을 성공시키려면(영후는 딱하게도 성공할 깜냥도 안 된다) 저 정도 성폭력은 감수하는 것이 내조라고 이 드라마는 지금 이야기하려는 것인가?   

  

술자리에서뿐 아니라 영후가 경자를 대하는 평소 모습 또한 아내를 배우자로서가 아니라 돌봄 제공자로 삼고 있음이 다분하다. 무능한 자신을 언제든 경제적으로 지원해 줄 거라, 무슨 짓을 해도 아량 있게 봐 줄 거라 믿으며, 한량처럼 살아가는 형우의 태도는 결혼 생활을 소중히 여기는 남편의 방식으로 보기 어렵다. 


이들의 관계는 형우의 과도한 심리적 경제적 의존으로 부부가 아니라 마치 모자간이 아닐까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그렇다면 드라마는 연상인 여성이 연하남과 살려면, 경제적 우위는 물론이고 모성에 준하는 지극한 돌봄까지 제공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인가? 지금 이 시대에 이 부부가 사는 법이 정말 아직도 유효한가?     


은실(이인혜)과 춘복(정석용)의 부부관계 또한 이질적이다. 이들은 경자 영후 커플과 달리 연상남과 연하녀 커플인데 나이 차가 꽤 크다. 이들의 경우 은실은 나이 어린 철없는 아내로 설정되는데, 남편의 고단함은 아랑곳 않고 오직 가족의 안위만을 위해 살기를 요구하거나, 마트에서 쇼핑하다 마주친 이웃이 춘복을 은실의 아버지로 오해하는 데도 이를 묵인한다. 이런 장면들에서, 드라마는 철부지 아내와 사는 남편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감내해야 하는지를 은근 슬쩍 노출시킨다.     



이는 경자 영후 커플이 경자가 연상의 배우자로서 고충을 감수한다는 면에서 춘복 은실 커플의 춘복이 겪는 애로와 유사한 듯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다르다. 연상녀인 경자는 성적인 수치심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헌신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드라마는 오히려 이를 ‘내조’로 아름답게 재현한다. 하지만 연상남인 춘복의 경우, 직장에서 호되게 까이면서도 철없는 아내를 배려하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희생하는 ‘고개 숙인 아버지(남편)’로 재현된다. 


연상인 배우자는 부부관계에서 한 수 접고 가야 한다는 고루한 의식도 실소할 일이지만, 부부의 비상식적 행태의 문제는 실은 나이 격차가 아니라 젠더 편향에 기인함에도, 이를 속이고 있는 것이 더 문제적이다. 드라마는 여성인 연상녀의 헌신은 당연한 것이고, 남성인 연상남의 헌신은 상찬 받을 일이라는 메시지를 여전히 발신 중이지 않은가.     


정애와 궁철의 부부관계 또한 위태위태하다. 갑자기 나타난 해숙이 정해에게 “이십 년 전에  니가 한 짓 다 알고 있어”라는 경고를 보내는 것에서, 정해 또한 대학 시절의 그 사건에 깊이 연루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해숙이 궁철에게 연정을 가졌었고 누구보다 궁철을 보기 위해 이들 앞에 나타났다는 설정에서, 이들 부부가 어떤 비밀을 간직한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그 비밀이란 서로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을 뿐인 비밀일지 모른다. 자기 기만의 비밀 혹은 진실이 이들 부부를 위기로 몰고 갈 기폭제일 것인데, 그렇다면 드라마는 이 기폭제를 적시에 활용하지 않고 왜 성범죄를 무리하게 매개하면서 시청자에게 불필요한 자극을 주고 있는 것일까?    

 

드라마는 정해의 진료 장면에서도 석연치 않은 장면을 노출한다. 만식은 죽기 전, 정신과 의사인 정해에게 우울증 치료를 받았는데, 만식의 아내 명숙(김지영) 역시 우울증 치료를 받기 위해 정해를 찾는다. 가까운 지인에게 부부가 거의 동시에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는 것도 상식적이지는 않지만, 정해가 명숙에게 보이는 냉담함은 더 납득하기 어렵다.


정해는 진료를 받으러 온 명숙에게 그녀의 고통에는 둔감한 채 만식을 걱정하며, 중년 남자의 자괴감을 극복하는데 무엇보다 “힘이 돼 주어야 하는 사람은 아내”라고 조언한다. 이는 친구로서뿐 아니라 의사로서의 윤리로서도 맞지 않는다. 고통을 호소하러 온 환자에게 그 환자의 고통에 공감하기 앞서 배우자의 고통을 돌보라고 충고하는 것은 의료를 앞세운 폭력이다.    

 

이 드라마는 서사 전체가 젠더와 인권 감수성에서 낙제점이다. 지금 들끓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분노와 그 피해 여성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가볍게 여기고 불법 촬영 범죄를 드라마 서사로 고민 없이 재현한 점, 성 평등 관점의 부재로 여기저기 노출되는 부적절하고 불편한 젠더 편향 서사를 여과 없이 드러낸 점 등이 그렇다. 게다 결정적으로, 드라마는 불쾌감을 자아낼 뿐, 다음 화에 대한 기대를 살리지 못하며 미스터리물로서의 본령에도 다가서지 못했다.     


좋은 드라마로 평가되어도 옥에 티는 있게 마련이다. 다만 제작진이 동시대를 살고 있는 시청자들의 현실과 그에서 파생될 수밖에 없는 고통에 공감하며 비판과 성찰을 통해 더 나은 드라마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아한 친구들]의 제작진은 이제라도 성폭력이 만연한 현실을 엄중히 인식하고 젠더 감수성이라는 촉수를 예민히 세워 드라마를 사려 깊게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시청자인 내 결정은 이렇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이콧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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