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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Dec 23. 2020

80년대 생의 물음,애정이나 사랑이 집보다 중요할까요?

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1-5화) 리뷰 1  


만약 결혼의 지속 형태를 고를 수 있다면, 결혼에 대한 관념이나 풍속은 달라질까? 이를테면 결혼에 종신제와 5년 주기 갱신제가 있다면?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보이는 갱신제를 선호하게 될까? 종신제와 갱신제가 존재하는 결혼을 가정하고 쓴 정여랑의 소설 <5년 후>를 읽다, 문득 궁금해진 생각이다. 결혼 제도 자체에 항거하지는 않되, 형태를 변용한다면, 이들의 ‘어쩌다 결혼’ 서사도 그리 이상하기만은 아닐 터, 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주인공 지호(정소민)와 세희(이민기)의 ‘슬기로운 결혼 생활’로 들어가 보자.      


홈리스 지호, 위험한 동거에 들어가다  

  

드라마 보조 작가 지호는 느닷없이 홈리스 신세가 된다. 갑작스런 동거와 임신에 돌입한 동생 커플에게 같이 살던 집을 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입봉의 날만을 고대하며 가난하고 고단한 드라마 보조 작가로 살아온 지호가 홀로 살 번듯한 집을 구하기란 하늘에 별을 따는 일만큼이나 불가능하다. 부모는 여력이 없고, 드라마 보조 작가라는 직업은 주거 대출을 받을 자격이 되지 않는다. 사면초가에 처한 지호에게 보증금 없이 월 30에 안락한 주거 환경이 갖추어진 방이 생긴다면, 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지호가 처한 곤경은 2,30 대 ‘흙수저’ 미혼 여성이 처한 현실을 반영한다. 드라마 중간 중간 한 번씩 터지는 웃음보로 파안대소를 하다가도 이내, ‘레알 현실인데’ 하며 서늘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우스메이트(세입자)를 구하는 집주인이 당연히 여자일 것이라는 정황은 충분했고, 이로써 로맨스 코미디의 시작이 가능했겠지만, 현실에서 남자 집주인과의 동거가 그리 간단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남자 집주인과의 동거라는 불편한 상황은 영화 <프란시스 하>에서도 펼쳐지지만, 이 역시 비현실적으로 안전하고 코믹하게 처리된다. 잘 곳이 없는 흙수저 싱글녀에게 홈리스되는 일과 남자 집주인의 하우스메이트가 되는 일 중 하나를 고르라면, 누구라도 후자를 선택한다고 믿는 듯이 말이다.    

 

‘홈리스’를 ‘노숙인’으로 써보자. 더 ‘현타’가 올 것이다. 노숙인이 홈리스보다 출구 없음의 상태를 더 명확히 전달하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불려온 대로 ‘노숙인’이라 칭할 때 비로소, 주변인일지언정 그들의 삶이 우리에게 포착되기 때문일 것이다. 말이 홈리스지, 거리에서 밤을 보낼 생각을 해보자. 위험부담이 있는 하우스메이트라도 거부하기 힘들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지호가 세희의 하우스메이트가 되기 위해 드라마는 시청자를 안심시킬 안전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둘의 로맨스 코미디를 탄탄하게 견인해내기 위해서 말이다.  

  


세희의 믿음, “세입자와의 결혼이 답이었다.”    


집주인 세희는 까칠하지만 상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고, 동료에게 무성애자고 불릴 정도로 무욕적인 비혼주의자 남자로 그려진다. 이런 세희의  유일한 욕구는, 전세도 월세도 아닌, 비록 대출이 많더라도, 자신의 집을 갖는 것이다. 대출을 많이 받아 샀으니 그는 부지런히 빚을 갚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급여 외 안정된 수입원(월세)이 추가로 필요하고, 이것이 그가 하우스메이트를 구하는 이유다.


세희가 지호에게 던지는, "애정이나 사랑이 집보다 중요할까요?“라는 질문이 함의하듯이, 드라마는 80년대 생 지호와 세희에게 집이라는 안정된 공간이 결혼보다 중요할 수 있다고 설정한다. 청년 주거난의 심각성은 얼마 전 벌어진 ‘호텔 거지’ 논란에서 명백히 드러났듯 위태롭기 그지없다. 드라마의 설정이 픽션이 아님을 현실이 명백히 증명한 셈이다.    

 

하우스메이트로서 상당한 살림꾼이라는 지호의 자질은 임대인 입장에서는 매우 우호적인 조건이 된다. 지호는 애초 입주 조건인 고양이 밥 주기와 분리수거뿐 아니라, 발군의 청소 실력을 가졌다. 세희가 “아주 바람직한 습관”이라 말한 것처럼, 지호는 그가 출근하고 난 뒤 마치 우렁각시처럼 집안일을 돌본다. 이 정도 하우스메이트라면 오히려 비용은 집주인이 더 내야 할 판이다.


여기서 드라마는 지호로 하여금 젠더화된 성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게 함으로써, 여성이 더 믿을만한 임차인이 되기 위해서는 가사 능력이 필요하다고 믿게 한다. S대 출신이어도, 남들이 알아주는 번듯한 직업으로 어필할 수 없는 가난한 여성은, 가사라도 잘 해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는 듯 말이다.     


세희는 IT회사의 디자이너답게 데이터로 증명된 하우스메이트 적합도를 사람들의 신망보다 더 믿는다. 지호의 적합도가 지금까지 어느 세입자보다 높고 그가 탑재한 발군의 가사 실력은 세희에게 무척 매력적이다. 상대에게 이성으로서 끌리는 섹슈얼리티만 제거한다면, 남녀라고 해서 하우스메이트로서 같은 집에 사는 것이 무엇이 문제겠는가. 세희에겐 이보다 좋을 수 없는 하우스메이트가, 지호에겐 이보다 좋을 수 없는 방이 생기는, 서로에게 윈윈하는 기회인 것이다.   

  

여기에서 이성으로서 끌릴지 모르는, 지금의 지호와 세희에겐 망하는 계약이 될 수 있는 위험은, 지호의 기습키스에 무덤덤한 서로의 심경으로 안전장치를 마련한다. 키스를 해도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믿음은 둘의 안전한 동거에 더할 수 없는 확증편향을 안겨주고, “혹시 저를 사랑하십니까”라는 세희의 질문에 지호가, “아니오”라고 냉큼 쿨하게 대담함으로써, 동거를 넘어 결혼으로 진입하는 위험 내관이 안전하게 제거된다.


사회의 복지 대신 서로에게 안전망이 되어줄 동거의 필요충분조건이 이처럼 완벽하게 들어맞는다면, 시청자 역시 이들이 동거하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수 없게 되고, ‘로코’인 이 드라마의 문법을 충실히 따를, 처음엔 덤덤했지만 어여쁜 사랑으로 키워나갈 것이 분명한 둘의 ‘결혼 후 연애’ 서사에 열혈 동조하는 마음으로, 이들의 동거와 결혼에 한 표를 던지지 않을 수 없지 않겠는가.  

   


아직까지(5화) 둘은 각자의 이유로 ‘애정 기반 결혼’ 제도에 ‘진짜’로 편입되고 싶지 않다. 맹랑한 80년대 생 지호와 세희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거부감을 이에 격렬히 저항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적극 이용함으로써 결혼 제도를 기만하려 한다. 제도가 갖추라는 방식을 따라는 주겠지만, 철저히 각자의 사용법으로 불합리한 제도의 허를 찌르겠다는 출사표를 던진 셈이다. “시간 되면 저랑 결혼하시겠습니까”라는 세희의 제안은 서로의 ‘이익 최선의 법칙’에 따라 수용되어지고, 이들은 정말로 ‘까짓 거 한번 해보지’라는 당찬 실행에 이르게 된다.     


아무리 무늬만 결혼이라 해도, 가족과 주변인을 제대로 속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심리적 금전적 부담은 져야 한다. 양가에 서로의 존재를 확인시키고 상견례를 하고 마침내 결혼‘식’에 이른다. 일사천리로 나아가며 감정에 동요되지 않으리라 믿었던 결혼은, 결혼식장에서 전달된 지호 엄마의 눈물 젖은 편지로 뜻밖의 국면에 진입한다. “간단한 일이라 생각했”던 이들의 결혼에 “간단치 않은 일이 시작되고 있었다.”     


* 6회 이후 리뷰는 ➁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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