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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Jul 24. 2021

아내들이 죽어가고 있다

<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 (레이첼 루이즈 스나이더, 2021, 시공사)


J는 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 결혼했다. 동기들 중 결혼 스타트를 끊은 셈이었는데, 이른 결혼도 결혼 상대도 모두 뜻밖이었다. 그 애가 결혼을 결정한 남자는 꽤 연상이었고, 무엇보다 아주 지독한 ‘한남’이어서 친구들 모두 그를 어려워했다. J는 예비 남편의 뜻에 따라 그의 고향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당시 J와 친했던 나를 포함한 친구 몇은 결혼식에 가기 위해 땅 끝 마을과 지척인 먼 도시로 내려가야 했다. 가부장이 센 도시 자체도, 남자의 친구인 조폭 같은 친구들도 모두 무서웠다. J의 결혼식과 피로연을 끝내고 도시를 떠날 때 우리는 마치 호랑이 굴을 빠져나온 듯 안도했다.     


J의 결혼 출산 육아가 수순처럼 이루어졌기에 한 동한 그 애를 보지 못했다. 잘 살겠거니 하던 어느 날, J가 뜻밖의 전화를 걸어왔다. 내 집에서 잠깐 지내면 안 되겠냐고 물어오는 그 애의 불안정한 목소리는 그 애 신변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못 보던 시간 동안 너무나 상해버린 그 애 모습에 먼저 놀랬고, 그 애가 고백해온 가정폭력 피해의 진상은 더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페미니즘은 알지도 못하던 서른 즈음의 나는 잠시 피신처를 제공하는 외, J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J의 남편은 아내가 집을 탈출하자 내게 득달같이 전화를 해 와선, 질문인지 협박인지 모를 말로 나를 떠봤다. 한마디로 J를 숨기고 있으면 당장 내놓으라는 압박이었다. 짐짓 처음 듣는 소식인 양 연기를 했지만 두려웠다. 구타와 강제 성관계는 물론, 칼을 들이대고 아내를 위협하고 가해하는 그 악당이 무섭지 않을 수 없었다.

      

대책을 궁리하기 위해 집에 돌아왔을 때 J는 사라지고 없었다. 휴대폰을 쓰던 때도 아니어서, 그 애가 연락해오지 않는다면 찾을 길이 없었다. 남편이 끌고 간 건 아닌지, 설마 죽인 건 아닌지 애를 태운 이튿날, J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사하다고, 고마웠다고, 지금은 쉼터에 있다고, 전해왔다. 무사하다는 말에 한숨 놓았고 그것이 J와의 마지막 통화였다. 


한동안 걱정했지만 내 삶도 엉킨 실타래였기에 잊고 살았다. 그러다 20년도 넘은 그때 일이 선명히 되살아났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죽은 여자들의 이야기를 읽었기 때문이다. <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은 결국 살리지 못하고 죽게 둔 여자들에 대한 깊은 회환과 책임감 그리고 더 이상은 죽게 두어 선 안 된다는 조바심을 가지게 한다. 연락이 끊긴 J는 살아있을까, 눈물이 났다.      


죽어가는 여자들     



<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에서 만나게 되는 피해자의 이야기는 리얼하지만 낯설다. 나 역시 J 말고는 남편에게 맞는 여자를 만나지 못한 것처럼, 우리 여자들은 매 맞는 여자를 서로 알지 못한다. 위 책의 원제가 <No visible bruises>인 것도 아내에 대한 폭력이 가시화될 수 없는 사회 구조 문제 그리고 학대의 상처가 눈에 보이는 육체의 피해를 초과하고 있음을 함의할 것이다. 가정폭력이라 불리는 ‘아내에 대한 폭력’은 사적인 영역으로 귀속되어 실재하는 폭력이나 범죄라 여기기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반려자에게 학대당하거나 살해당하는 피해는 나의 일이 아니라, 어떤 팔자 사나운 여자가 당하는 불운이라 믿게 된다.      


그러나 이 책에서 불완전하게나마 밝히고 있는 남편에게 학대당하다 죽은 여자들의 숫자는 충격적으로 많다. 2000~2006년까지 미국에서 가정 내 살인 사건으로 사망한 피해자는 10600명이다. “집은 여자에게 가장 위험한 장소다.” 2017년 UN의 한 연구 보고서는 한 해 전 세계 약 5만 명의 여자가 반려자 또는 가족에 의해 살해당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많은 여자들이 친밀한 폭력으로 죽어나가지만, 이 가공할 페미사이드는 여전히 사회가 직면해 시급한 대책을 내놔야 하는 의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아내 살해가 개인적 문제인 한, 피해자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선 모든 것을 걸어야만 한다. 지난 해 상영한 영화 <The Invisible man>는 이 극단적 경험을 처절하게 다룬다. 주인공 세실리아는 세상과 고립된 채, 남편 애드리안의 감시와 통제 속에 살아간다.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기 위해 집안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감시하는 남편은 게다, 초 첨단 과학 기술이 탄생시킨 투명슈트까지 가지고 있다. 모든 폭력 남편이 그렇듯 애드리안도 눈에 흙이 들어가지 전에는 절대 아내를 놓아주지 않을 심산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남편에게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은 세실리아는 아주 오랜 시간 공들여 탈출 계획을 세우고 마침내 실행에 성공한다. 이쯤에서 마음을 놓을 수 있다면 그렇게 많은 여자들이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서를 받고도 남편에게 살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애드리안은 전형적인 폭력 남편의 행태로, 동원 가능한 모든 악랄한 수단을 이용해 사라진 아내를 기어이 찾아내 제자리로 돌려놓으려 한다.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아내를 죽인다.      

투명슈트라는 SF적인 장치를 빼고 보면, 영화는 아내를 찾아 다시 집에 가두고 수인으로 만들려는 전형적인 아내 폭력 범죄 서사다. 영화가 오버하듯 등장시킨 투명슈트란 실은, 드러나지 않는 폭력으로 아내를 때리고 죽이는 남자들의 통제 기제를 첨단 과학 장치로 변주시키고 있을 뿐이다. 한번 걸려들면 절대 빠져나가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 말이다.      



그러나 영화의 반전은 통쾌하게 그러나 처절하게 싸워 살인범 남편에게서 벗어난 여자 주인공을 극적으로 주조시킨다. 다시 살인범의 인질이 되는 대신 대담하게 남편과 맞짱 떠 살아남은 여주인공의 모습에서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통쾌한 복수극 영화가 이끈 자명한 결론은 이것이다. 때리는 남편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남편을 죽이는 것뿐이라는 섬뜩한 진실 말이다. 실제로 여성이 살해를 저지르는 사건 대부분이 폭력 남편을 죽인 결과다.  

   

세실리아가 남편에게서 탈출해 언니와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이들이 보이는 반응은 ‘믿을 수 없다’다. 그렇게 스마트하고 젠틀하고 게다 재력가인 남자가 ‘그럴 리가 없다’는,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는 가해자 동일시 가스라이팅 말이다. 이는 가정폭력범에게 공명하는 관용적인 사회 인식을 생각해 볼 때 이상한 반응이 아니다. 이런 2차 가해는 피해자를 남편에게 죽을 만큼 맞아도, 남편이 죽일 거 같아도, 참고 사는 소극적 인질을 만든다. 그리고 마침내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고 나면 사회는 이렇게 힐난한다. 그렇게 때리는 동안 왜 가만있었던 거야?      


아내 살해범은 때로 아내만을 죽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가족 모두를 몰살시킴으로써 가족의 생살여탈권을 쥔 자신의 권력을 전시하고, 가족 살해 후 불특정 혹은 특정 대중을 대상으로 총격 사건을 벌이기도 한다. 1분에 20명의 폭력 피해자를 발생시키고 1년에 1200명의 여자를 살해하는 극악함은 강력 범죄이지 가정 폭력이 될 수 없으며, 때로 다중 총격 사건으로 이어져 무고한 희생을 야기한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을 위협하는 가정 폭력 범죄는 코피 아난 전 UN 총재의 말처럼, “전염병 수준의 전 세계적인 건강 문제”이지 결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매 맞는 아내는 물론 매 맞는 엄마나 가족을 바라봐야 하는 당사자 역시 폭력의 피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 상처는 오랫동안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괴롭히고 파괴시키며 결국 사회적 대가를 치르게 한다. 가정폭력을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공중 보건의 문제”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다.


     

어떻게 위기의 여자들을 살릴 것인가


[Part 1]에서 피해자가 왜 죽어야 했는지를 사후 부검한 저자는, [Part 2]에서는 아내를 죽여도 된다고 믿고 “사랑해서 때린다”고 폭력을 낭만화하는 남자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이들이 아내나 가족을 죽이면서까지 믿고 따른 규범의 실체는 무엇일까? 이를 규명하고 해석하기 위해 저자는 아내 살해범들을 만난다. 


저자가 이들을 만나 인터뷰한 남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역겹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들의 기만을 끝까지 읽을 인내심을 발휘할 수 없었다. 자신이 벌인 페미사이드를 합리화하고 변명하고 있는 이 남자들을 교육하고 교화한다고 달라질 것인지 회의가 들었다. 그럼에도, 폭력이 문제 해결의 방식이라고 믿는 남성들의 사고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젠더 규범으로 학습된 집단 반응임을 깨닫게 하고, 가해자나 학대자를 위한 개입 프로그램이 늘어야만 아내에 대한 폭력 피해를 줄이는데 유효하다고 믿는 저자의 생각은 수긍할 만했다.      



[Part 3]은 이런 나쁜 남자들에게서 어떻게 여자들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내 살릴 것인가를 끈질기게 고민하고, 그 연구 결과를 정부와 관리들에게 알리고 설득해 나가는 연구자와 활동가들의 활약상을 다룬다. 광산의 카나리아와 같은 이들이다. 특히 재클린 캠벨의 노력과 성과는 인상적인데, 그는 가정 폭력의 실상을 이해하고 그 처리 방법을 바꾸기 위해 ‘위험 평가’를 가정 폭력 현장에 도입시켜 숱한 목숨을 지켜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가정 폭력 피해자의 위험도를 평가하기 위해 3가지 질문을 던진다. 그가 당신을 향해 무기를 사용하거나 무기로 위협한 적이 있나, 그가 당신이나 아이들을 죽이겠다고 위협한 적이 있나, 그가 당신을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가를 묻고 그렇다면, 지역 가족 폭력 긴급전화에 연결시켜 즉각 보호 조치에 나선다. “타이밍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캠벨의 위험도 평가 모델은 30개 주와 워싱턴 DC에서 사용되고 있다.      


책을 덮고 한국 사회의 가정 폭력이나 친밀한 폭력의 현실로 돌아오면 마음이 무겁다. 책 읽는 내내 틈입했던 J와 또 다른 J들의 고통이 사무쳤다. 한국 여성의 전화가 2020년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남편이나 애인 등) 내 여성 살해’를 분석한 것에 따르면, 최소 97명이 살해되었고 살인미수 등으로 살아남은 여성은 최소 131명이라고 한다. 


여성 범죄 피해에 대한 젠더 데이터 공백과 가정 폭력 등 친밀한 폭력의 상당 부분이 암수 범죄인 것을 고려하면, 이 수치는 과소할 것이다. 게다 코로나로 가족 구성원 대부분이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낼 수밖에 없는 극단적 현실까지 생각하면, 위기에 처한 여성의 안전이 풍전등화와 같다. 어떻게 이들을 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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