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녕에는 우포가 있다. 우포는 가시연꽃으로도 유명한 곳이지만 우포의 또 다른 명물은 따오기이다. 사실 따오기가 오늘날처럼 경남 창녕 우포에 정착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따오기는 1970년대 마지막 개체가 발견된 이후에 마지막으로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가 황새 복원의 전문가였던 고 김수일 박사와 현장 전문가인 이익수 선생이 의기가 투합하여 따오기 복원을 추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복원이라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어서 다른 나라에서 따오기 개체를 들여와야만 했다. 그 대상으로 물망에 오른 게 중국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후진타오 당서기의 방한에 맞추어 중국 산시성에서 따오기 한 쌍을 한국에 겨우 들어올 수 있었다. 이후 우포의 따오기를 정착시키기 위한 센터 건립을 위해 기존에 살고 있던 주민들을 상대로 설득과 이주 작업이 뒤따랐다. 다행히도 일은 원만하게 진행되어서 우포에서는 본격적으로 따오기 복원 작업에 착수할 수 있었다.
한 생명체가 이 땅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다양한 복합적 요인을 동반한다. 사라진 개체를 살리는 일에는 몇 곱절의 노력이 필요하다. 생태환경이 달라지고 주위 여건이 변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우리가 사라진 한 개체를 복원하는데 그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들의 노력 덕분이었는지 따오기 개체 수는 점점 늘었다.
현재 우포 따오기 복원센터에는 400여 마리가 살고 있다. 어느 한 종을 복원시키는 일은 사라지지 않도록 지키는 일보다 더 힘들다. 엄밀히 말하면 더 많은 노력과 시간, 그리고 경제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이런 지원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성공적인 복원을 확신할 수 없는 게 자연의 이치이다.
우포가 따오기 복원센터를 유치하고 또 성공적으로 따오기 복원이 가능할 수 있었던 데는 지역사회 시민단체의 노력과 지자체의 아낌없는 후원이 있었다. 또한 아무도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을 때 선구자의 심정으로 복원사업을 진행했던 고 김수일 교수와 같은 선각자의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따오기를 도감에서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전에는 존재했으나 이미 사라져 그 흔적을 볼 수 없는 동식물이 존재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의 해수구제정책에 의해서 사라져버린 한반도의 호랑이와 표범, 그리고 강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헛된 허영과 욕망은 자연 생태계에 존재하던 종 자체를 말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한때 인간의 탐욕으로 지상에서 없어진 도도새처럼 따오기 역시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뻔하였다. 만약 그랬더라면 단순히 한반도에서 한 종의 멸종으로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에서 들여온 한 쌍의 따오기는 이제 완벽하게 한국에 적응하여 후손을 키워내고 있다.
멸종위기종인 새가 복원에 성공하기까지는 고려해야 할 사항이 제법 많다. 먹이부터 생장 환경, 그리고 서식지 형성 등 여러 요인이 적절하게 맞아야 가능한 일이다. 고 김수일 교수와 이 선생과 같은 눈 밝은 일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노래 가사로만 따오기를 만날 뻔했다.
이 땅에 어렵사리 복원된 우포의 따오기가 오래 살아남아 그 명맥을 오래 유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지금은 우포에서만 볼 수 있지만 우리 주변에서도 따오기를 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자주 보아야 정도 들고 더 사랑스러운 법이다. 우포 따오기도 예외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