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어 한국 드라마나 대중가요가 유행하는 초국적 현상을 한류라고 한다. 이렇게 문화가 국경을 넘어서 수용되거나 널리 유행하는 것은 단선적이거나 쌍방향이거나 지속하거나 주기적이거나 하나의 흐름이다. 이러한 흐름이 한류에서 처음 나타난 것은 아니다. 특히 한류가 시작되고 가장 성행한 동아시아에서 문화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고 내려가다 보면 한류의 또 다른 의미를 건질 수 있다. 특히 일본·중국·베트남은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문화 흐름의 주요한 행위국이다.
21세기 들어서 한국은 한류라는 흐름을 타고 문화강국이 되려고 한다. 한류를 딛고서 세계 문화의 중심에 올라서겠다는 의지다. 중심, 한국이 이루지 못했던 역사다. 급속한 경제 성장과 함께 반도체와 조선 같은 분야의 일부 영역에서 한국이 세계 1위를 차지하기도 하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지만 문화는 여전히 주변부에 머물렀다. 전근대 시기는 중화문명을 쫓았고, 근대에 들어서 근대화된 일본의 문화와 일본을 통해 서구 문명을 수입했고, 또 미국 중심의 서구 문화를 배우는데 열심이었다. 한류는 대중문화에 한정하지만 이러한 동아시아 문화 흐름을 거슬리고 질서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동아시아는 오랜 시기 중심-주변이라는 정치·문화적 질서를 유지해 왔다.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이 자리한 지역의 중심을 차지한 한족이나 이민족의 국가는 중심의 지위를 유지했고, 한국과 베트남은 그 중심의 주변으로 율령·유교·중국불교를 받아들이며 이 질서에 동참했다. 이 같은 중심-주변 구도는 단순히 문화적 전파와 수용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적 관계와 사회적 위계를 반영하는 상징적 구조로 작용해 왔다.
특히, 고대 동아시아의 중심-주변 관계는 책봉·조공이라는 제도를 통해 잘 드러났다.(2) 중국은 주변 국가들에게 조공을 요구하며, 그 대가로 책봉이라는 형식을 통해 주변 국가의 통치자를 인정하고 그들에게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 과정에서 유교 문화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유교는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베트남의 정치적·사회적 제도의 기초가 되었으며, 이러한 유교적 질서를 통해 중심-주변의 관계가 유지되고 강화되었다.
이와 같은 역사적 흐름 속에서 현대의 동아시아 문화 구조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변화했다. 특히 한류의 등장과 확산은 동아시아의 중심-주변 구도를 재편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990년대 말부터 한류는 대중음악과 드라마가 중국·대만·홍콩·베트남 등으로 진출해서 인기를 끌었다. 이를 통해 한국은 대중문화의 새로운 중심으로, 중국과 베트남은 주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중국과 베트남의 젊은 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며, 기존의 문화적 위계질서에 변화를 일으켰다. 특히, 한류 스타들은 동아시아 전역에서 새로운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으며,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력은 더욱 커져갔다. 이러한 변화는 문화적 중심-주변 구도가 역동적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긍정적인 측면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과 베트남은 한국 대중문화의 확산을 단순히 수용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각자의 문화적 자존심과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한류에 대응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한류에 대한 열광이 정점을 찍었을 때 정부 차원에서 이를 규제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는 한편으로는 한류가 중국 내에서 너무 큰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을 경계하는 동시에, 자국 문화산업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예를 들어, 2016년 한한령은 사드 배치에 대한 외교적 갈등으로 인해 중국 정부가 한국 연예인의 출연과 한국 콘텐츠의 방송을 제한한 대표적인 규제 조치였다. 이러한 규제는 한류 콘텐츠의 중국 내 확산을 억제함으로써, 중국 내 문화 산업을 보호하고 자체적인 문화 산업 육성을 목표로 하였다. 베트남 역시 한류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그와 동시에 자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고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베트남은 한류를 통해 대중문화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이를 자국의 문화산업 발전에 활용하려는 전략을 취해왔다. 한편으로는 한류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국의 전통문화를 강조하고 현대화하려는 움직임을 통해, 동아시아 내에서의 문화적 위치를 재정립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렇듯 한류를 통한 동아시아의 문화 흐름은 전통적인 중심-주변 구조를 뒤흔드는 동시에, 새로운 중심-주변의 구도를 만들어내고 있다. 한류는 한국을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부상시켰지만, 그 과정에서 중국과 베트남은 수동적인 주변의 위치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국의 문화산업을 발전시키며 새로운 문화적 균형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역동적인 문화 흐름은 동아시아가 어떻게 문화적 중심성과 주변성을 끊임없이 재구성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한류의 확산과 중국과 베트남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문화 흐름의 변화는 단순히 한 국가의 대중문화가 성공적으로 수출된 사례를 넘어, 국제관계에서 문화적 주체로서 국가의 위치를 재정립하고, 국가 간 문화적 영향력과 긴장 속에서 새로운 구도나 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 이는 한류 역시 유행이나 정체를 맞는 것이 자연스럽고, 피할 수 없는 문화 흐름의 변화에서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한 가를 보여준다. 따라서 긴 문화 흐름에서 한·중·베 삼국의 중심-주변 구도를 봐야 하고, 한류의 경우 어떤 문화적 흐름의 패권 의식에 잡히기보다 현재 대부분 대중문화에 머물고 있는 한류의 지류를 어떻게 다양화하거나 진화할 것인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동아시아라는 '공간'과 과거부터 현재 까지라는 '시간'이라는 문화 흐름의 배경에서 한류를 보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