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보이는 자리

나에게 기차는 그리움이다

by 이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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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기차역 근처에 살았던 적이 있었다.

저녁 무렵 엄마는 기차역으로 아버지를 마중 나갔다.

아버지가 기차에서 내리면

큰 아이는 걸리고 둘째(나)는 아버지가 번쩍 들어 안고

막내는 엄마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오던 얘기를 자주 했었다.

이제 곧 좋은 직장으로 옮기게 되면 월급을 훨씬 많이 받게 된다며

갖고 싶은 걸 물었다.

“큰 놈은 크림빵! 딸내미는 피아노, 그리고 당신은? 이라고 물어서 나는 당신만 일찍 들어오면 돼요.”

라고 말했다는 얘기를 할 때마다 엄마의 표정은 꿈을 꾸듯 행복해 보였다.

결국 가장 현실적인 대답을 했던 오빠에게 크림빵을 몇 번 사줬는지는 모르지만

내게 피아노를 사 주지도

현장 근무를 하느라 집에 일찍 들어오지도 못한 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엄마가 했던 옛날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많았을 텐데

나는 유독 이 이야기가 자주 떠올랐고

떠오를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시렸다.

그래서 일까?

기차를 보면 마음이 일렁거린다.

어떤 때에는 기차라는 말만 들어도 그렇다.


철커덕 척! 철커덕 척!


일정한 은율처럼 들리는 기차의 바퀴 구르는 소리가 좋다.


산책 거리를 늘리면서

전에는 가지 않던 단지 내 산책길의 남은 절반을 걸을 때

그 길은 기찻길과 나란히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대부분은 조경수에 가리거나 화단이 넓어 거리가 있거나 한데

어느 동의 옆쪽으로 돌아가는 모퉁이에서는 가깝게 기차가 보였다.

양 방향으로 전철이 두세 번쯤 지나고 나면 기차가 지나간다.

어떤 때는 화물기차가

어떤 때는 여객열차가 지나간다.

하루에 운행횟수가 많지 않아 거의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쩌다 새마을호나 무궁화호가 지나가면

‘대전에 가겠네.’

라는 말을 소리를 냈는지 마음속으로 웅얼거렸는지 모르겠다.


“안양역에 가서 기차 타고 슝~ 오면 되지.”

지난 3월, 이 곳으로 이사 왔을 때

이제 대전 오기 편하겠다며 아이가 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자주 가지 못했다.

하루도 그립지 않은 날이 없었는데

상황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나에게 기차는 그리움이다.

기차를 보면 아버지의 오래 전 퇴근길이 생각나고

갑천이 내려다보이는 집과 창백한 아이 얼굴이 떠오른다.

오늘도 기차를 보려고 그 자리에 섰다.

전철이 두 번 지나가고

화물열차가 지나간다.

방음벽에 가려 지붕과 몸통의 반밖에 보이지 않지만

저 차가 대전까지 가겠네 생각을 하면

어쩐지 마음이 먼저 그 곳에 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잠시나마 마음이 그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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