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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부라이프 Sep 24. 2022

아부다비는 한가하다.

아부다비에서 감정다스리기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를 생각한다. 창밖을 보면 그림엽서처럼 멋진 에미레이츠 팔레스 호텔이 보이고 저 멀리 바다와 멋진 마리나 몰이 보이지만 그 너머 하늘은 여전히 내 머릿속처럼 뿌옇다.   

 

아이를 학교에 내려주고 집에 오는 차안이 영 쓸쓸하다. 어디론가 가볼까? 바다가 근처인데, 가기엔 날씨가 너무 뜨겁다. 이미 떠버린 태양에 살갗이 타들어갈 것이다. 쇼핑몰을 가자니 아직 오픈시간도 아니다. 이것저것을 고민하다 결국 다시 집으로 온다. 평일, 딸과 둘이 사는 집에서 집안일은 별로 할 것도 없다. 설거지도 빨래도 청소도 일상적인 일들은 큰 의미도 없이 금방 끝낸다. 한창 아이들을 키울 때, 바쁘게 직장 생활을 할 때는 그렇게 바랐던 여유. 그 여유가 넘쳐나다 못해 버겁다.    

  

오롯이 홀로 시간을 대면하고 있는 나는, 나를 돌아본다. 내 속에 있는 감정들 중에서 긍정적이고 밝은 것들을 끌어올리려 노력한다. 그리고 갱년기와 함께 나를 억누르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도 허공에 쏟아낸다. 여유로이 혼자 있는 지금 울고 웃고, 우울감과 행복감을 넘나들며 지금껏 익숙하지 않았던 감정에 충실한 시간을 보낸다.     


사람들을 만난다. 

학부형들을 만나면 정보의 홍수 속에서 더 공허해지는 걸 느낀다. 나는 저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한국 엄마들 특유의 교육열이 아부다비 태양보다 뜨겁다. 자꾸 듣다보면 나는 자꾸 작아진다. 아이에 대한 믿음도 자꾸 깨지려하고, 조바심이 생긴다. 한국말인데 듣고 있으면 자꾸 외로워진다. 집에 가고 싶다. 지인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그때뿐이다. 머릿속이 갑갑하다. 늙어서 그런가? 단어가 생각 안나 제대된 대화가 이어지지않는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때가 있다. 내 대인관계능력에 의구심마저 든다.          

책을 집어 든다. 

일본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조와 박쥐’를 읽었다. 살인사건에 대한 추리소설을 읽으니 오랜만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든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도 완독했다. 건축에 대한 건 잘 모르나 좋은 표현들이 가득차 있다. 다 읽고 나니 머릿속에 단어가 채워진 느낌이 든다. 이국종교수의 ‘골든아워’도 읽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왜 이리 고민이 엮여야 하는지. 울며 읽었다. 김훈작가를 멘토로 한다는 이국종교수의 문체는 김훈작가와 많이 닮았다. 몇 가지 책을 동시에 읽는 습관이 생겼다. 눈이 침침하고 허리가 안 좋아 그나마 오랜 시간 책읽기가 어렵다. 하지만 좋은 책을 읽을 때 보내는 시간은 행복하다.          


드라마를 본다. 

드라마를 보면 죄를 짓는 느낌이 있었다. 시간을 죽이는 허무한 일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내가 그 짓을 하고 있다. ‘디어 마이 프렌즈’라는 드라마를 봤다. 노희경 작가가 극본을 썼고, 김혜자, 고두심, 나문희, 윤여정, 박원숙 등 내로라하는 중견 여배우들이 다 나온다. 배우 윤여정이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영문학과를 갈 거야. 그래서 언니들 데리고 프랑스여행을 갈 거야’하는 말에 나는 눈물을 터트렸다. 극중 인물의 도전이 왜 내 감정을 건드렸는지 모르겠으나 그냥 한참을 울었다. ‘프랑스가려면 프랑스어과 가야돼’하는 박원숙의 말에도 내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나빌레라’라는 드라마가 있다. 박인환, 나문희, 송강 등이 출연하는데 알츠하이머에 걸린 70대 할아버지가 발레를 배우는 이야기다. 한번은 날아오르고 싶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또 눈물샘이 터졌다. 발레를 볼 때마다 기억이 돌아오는 것 같다는 할아버지를 위해 길거리에서 발레를 추는 남자 배우의 모습에도 눈물이 났다. 나도 날아오르고 싶었나보다.     


시간이 많아 감정에 집중하는지, 내 갱년기 시기가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다. 근데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실컷 울면서 내 속의 이유 모를 응어리들을 다 쏟아내면 후련하겠다. 그 후에는 맑고 깨끗한 정제된 감정만 남아 내 이웃과 가족에게 흘려보낼 수 있지 않을까.      


난 여기 아부다비에서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여유와 환경이다. 머릿속으로는 알지만 요즘은 가슴 한쪽이 꼬여있다. 하지 않아도 될 근심을 하고, 붙잡지 않아도 될 외로움을 느끼는 나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가 고민이다. 아침에 일어나 기분 좋은 굿모닝을 외치며 하루를 행복하게 보낼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괴롭다. 주어진 행운의 시간을 후회없이 보내기 위해 오늘도 몸과 마음이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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