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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Jul 24. 2023

내 인생의 리바운드

가족여행을 다녀오면 그동안 당연하게만 생각해 왔던 가족과의 관계가 더욱 끈끈하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이번 일본 가족여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토요일 자정이 다되어 귀국해 여독이 채 풀리지 않은 상태였지만, 지난주 월요일 밤에 아들과 극장행을 하며 장장 3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미션 임파서블>을 감상했다.


아들과 단 둘이 극장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꽤나 신선한 경험이었다. 아들도 나쁘지 않았는지 이어서 <명탐정 코난>을 보러 가자며 졸라댔다. 가족여행을 또 가려면 평소엔 좀 아껴야 하기에 휴대폰 제휴혜택을 받을 수 있는 다음 달에 가자고 설득했다. 안타깝게도 아들과 밀월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마냥 놀기만 하는 아들이 예뻐 보였던 건 여행 직후 딱 3일 간이었다. 이후부터는 각종 의구심이 스멀스멀 솟아올랐다. 신체건강한 만 19세 청년이 24시간을 허송세월하도록 방치하는 것이 과연 부모의 도리일까? 자녀와 관계가 소원해질까 두려워 최소한의 훈육마저 도외시한다면 부모로서 자격미달인 건 아닐까?


조바심이 난 나는 퇴근 후에 아들에게 슬며시 제안했다. 영어공부라도 하는 건 어때? 바리스타 자격증 같은 거라도 취득해 보면 어떨까? 집 근처에 이런저런 아르바이트 자리 있던데 한 번 도전해 보면 어떠니? 엄마의 끊임없는 참견이 지겨웠는지 어젯밤 아들은 자취방으로 가버렸다. 현관문을 나서는 아들의 발걸음이 더할 나위 없이 경쾌하게 느껴졌던 건 나만의 착각일까?




자식이 셋이라 좋을 때가 많다. 잔소리 탓에 비록 아들은 살짝 멀어졌지만 내겐 막내딸이 있다. 막내는 언니, 오빠와 달리 '자기만의 집'이 아직 없으니 나를 피해 도망갈 곳도 없다. 막내 역시 오빠 못지않게 방학 내내 종일 뒹굴거리는 모드로 지내고 있지만, 아들과 달리 막내딸은 아직은 내게 살짝 무서운 존재다. 갱년기 부모와 사춘기 자녀가 맞서면 갱년기가 이긴다고 들었는데 우리 집에선 이 법칙이 통하지 않는 듯하다. 사춘기가 시작된 지 벌써 5년이 훌쩍 지났건만, 도대체 막내의 사춘기는 언제쯤이나 마침표를 찍을런지 궁금하다.


외부행을 내켜하지 않는 막내와는 넷플릭스에 올라온 영화를 함께 봤다. 주중에는 <서치 2>를, 일요일 오후에는 <리바운드>를 함께 봤다. 몇 년 전 막내와 단둘이 <서치 1>을 즐겼건만, 흥미로워하는 나와 달리 막내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간간이 핸드폰에 눈길을 주며 의무방어전처럼 감상했다. <서치 2>를 보는 걸 내켜하지 않는 막내에게 1학기 성적표 열람이라는 부모의 권리를 포기하고 반대급부로 얻어낸 기회였는데, 아무리 봐도 내게 손해인 거래였다.




이에 반해 <리바운드>는 막내가 좋아하는 웹툰 <가비지타임>과 동일 실화에 토대를 두고 있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는 200% 몰입하며 즐겼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진한 감동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한 우리 모녀는 부산 중앙고의 경기모습을 찾아보고, 실제 농구선수처럼 땀 흘리며 활약한 주연배우들의 열연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모든 배우들의 프로필을 찾아봤다.


교체선수 없이 단 다섯 명의 선수로 전국고교농구대회에서 준우승이라는 기적적인 결실을 일군 것도 놀라울 따름인데, 4번째 쿼터는 두 명의 선수가 5 반칙으로 퇴장당하고 불과 3명의 선수로만 대한민국 최강팀 용산고와 맞붙었기에 더욱 감동적이었다.


이런 영화를 보고 나면 나 역시 이들처럼 열정적으로 살고 싶다는 열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몇 년 전 나라면 당장 일요일 저녁부터 뜨거운 기세로 중무장하고, 주말 내내 느슨하게 보낸 내 자신을 다그쳤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삶의 엔진을 뜨겁게 달구는 건 한껏 풀어진 일요일의 내가 아닌 출근하랴 바쁜 월요일의 내 몫이 되었다. 


인생은 이렇듯 리바운드의 연속 아닐까? 시원스럽게 3점 슛,  만인의 심장을 어택 하는 덩크슛에 성공할 때도 있겠지만, 일반인의 삶 속에서 이런 빛나는 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오히려 실책골을 잘 잡아내고, 넘어졌을 때 마냥 포기해 버리기보다 실수나 과오에서 개선지점을 찾아내 다시 한번 일어서서 용기 내 뚜벅뚜벅 걸어가는 게 일상다반사이자 행복하게 사는 첩경 같다.




이번 주에 내게 부과한 숙제는 읽고 배우기. 이번 주에 읽을 책은 총 6권이다. 남경태의 <종횡무진 서양사>, 박연준의 <고요한 포옹>, 강인숙의 <글로 지은 집>, 윤지영의 <나는 용감한 마흔이 되어 간다>, 최영미의 <난 그 여자 불편해>, 최성각의 <나무가 있던 하늘>. 서양사 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에세이다. 출근 전 박연준작가님과 윤지영작가님의 책을 좀 넘겨봤는데 출근하기 싫을 정도로 글이 마음에 들었다. 박작가님 글은 이전에 몇 권 접해봤는데 이번 책도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완독 후 블로그에 리뷰도 꼭 남길 생각이다.


11월 DELF B1에 도전하려면 이제 진짜 불어공부를 늦출 수 없다. 온라인 수업은 내 의지만으로 실행하는 데 한계가 있어 박약한 의지력을 메울 보조수단을 찾으려 한다. 예전 같으면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채찍만 휘둘렀겠지만 이제 나는 쉬엄쉬엄 사는 걸 즐길 줄 아는 지혜로운(^^) 여인이다.


오늘 밤에는 오랜만에 큰 딸과 오붓한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아르바이트와 각종 시험준비로 바쁜 큰애와는 여행직후 시간을 전혀 갖지 못해 아쉬웠는데, 오늘 저녁에 집에 들를 거라는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일본에서 사 온 니혼슈를 드디어 개봉할 수 있게 됐다. 내 인생의 리바운드 기술은, 세 아이 덕분에 나날이 성장을 거듭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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