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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왜 글쓰기를 멈췄을까?

글을 쓰지 않는 시간에도 엄마는 작가였다.

by 소금라떼


깜빡깜빡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명하게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초등학교 1, 2학년 즈음.

엄마는 거실의 동그란 원형 좌식 테이블에 앉아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글을 옮겨 적고 있었다.

작가가 꿈이었던 엄마는 '뒷목문학회'라는 문학 모임의 회원이었다.

엄마의 수필이 실린 작은 소책자를 들춰보다가, 나도 처음으로 '수필'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교감 선생님도 같은 문학회에서 활동하신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왠지 모를 자부심이 일었다. 그 영향이었을까. 나의 장래 희망도 '시인' 혹은 '작가'였다.


매년 학교에서 열리는 시화전에 작품을 출품했다.

어린아이가 얼마나 시를 잘 썼겠냐만은, 복도 한편에 걸려있는 내 시화 액자가 꽤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엄마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다.

나도 그렇게, 엄마의 꿈이 작가였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서른을 넘긴 어느 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내게 엄마가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집 앞 00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글쓰기 강좌 수강하기로 했어!”

그제야 문득, 잊고 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래, 엄마의 꿈은 작가였지.'

엄마도 그랬겠구나.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잠시 엄마의 꿈을 잠시 접어두고,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오셨겠구나.


지독한 감기 몸살로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던 날. 넷플릭스를 켰다.

'폭싹 속았수다'의 극 중, 애순이라는 인물이 시집을 가슴에 안고 행복해하는 장면에서

나는 또다시 엄마를 떠올렸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거실 테이블에 앉아 원고지를 채워가던 그 모습.

오랜 시간 잊고 있었던 그 장면이, 내 마음 안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마도, 엄마는 글을 '멈춘'게 아니라 잠시 접어두었을 뿐이었을 것이다.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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