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랬구나 Dec 29. 2022

남편의 한 달 육아휴직이 갖는
두 가지 의미

그때 제주로 떠나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들

“여보, 이번 달 카드 값 어쩌지?”

아직도 그날 그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는 남편에게 그 말을 하며 진땀이 났다. 

엄마 아빠의 현실을 알 리가 없는, 아니 알아서는 안 되는 8세, 5세 우리 아들들은 제주항공우주박물관 실내 놀이터에서 나와는 다른 건강한 땀을 흘리며 놀고 있었다. 남편이 한 달 육아휴직을 냄으로 인해 시간은 얻었지만 월급은 반토막이었다. 반토막 월급이 어떤 의미인지 제주행 비행기를 탈 때는 몰랐다.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싶었던지도.



서울에서 4인가족 외벌이로 대출 많은 집을 버텨내며 사는 우리 가정은 예비비가 얄팍했다. 그 얄팍한 예비비로 우리는 제주에서 한 달 동안 지낼 예쁜 3층 집을 빌렸고, 제주 감귤을 사 먹었고, 흑돼지를 먹었다. 어디를 가나 입장료를 내야 했고, 아이들은 기념품을 졸라댔다. 여기서 안 먹으면 언제 또 먹겠냐. 지금 안 가면 언제 또 오겠냐 합리화하며 카드를 벅벅 긁었다. 또 서울집에 딸린 고정비는 우리가 없어도 따박따박 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푸른 섬 제주에 대한 로망만 가지고 떠나왔다. 처음 제주 한 달 살기를 생각할 때, 우리는 무조건 네 식구 함께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색빛 서울에 남편 혼자 두고 오기는 너무나 미안했다. 회사일을 생각하면 잠도 쉬이 들지 못하는 남편을 혼자 두고 올 수는 없었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 남편에겐 육아휴직이라는 카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육아휴직이 어떤 의미인지는 한 달 살기 막바지 무렵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서 제대로 깨달았다. 제주에서 지내며 반토막 월급의 의미만 깨달았다면 그날 바로 올라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렇지는 않았다. 




첫째 아이는 초예민한 기질의 아이다. 이 말은 나의 육아 난이도가 최상이라는 뜻이며, 초예민 아이를 만 7년 넘게, 그리고 순둥이이지만 둘째까지 아들 둘을 키우느라 그즈음 나는 육아 피로도가 상당히 높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편은 아이들이 잘 때 출근하여 아이들이 잘 때 퇴근하는 삶을 살다 육아휴직을 내고 제주로 와서 정말 육아를 했다. 남편이 혼자 올레길을 걷던 그 어느 날 오전만 빼고 24시간 그리고 한 달을 뭐든 둘이 함께했다. 아이들의 모래투성이 바지를 빨 때도, 땅 파는 아이들을 하염없이 지켜볼 때도, 장을 볼 때도, 밥을 할 때도. 나는 몸이 편해지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마음이 너무나 편해졌다. 서울에서 남편 없이 혼자 하던 육아는 너무나 외로웠고 무게가 컸었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함께하는 남편이 있었기에 무게는 절반, 외로움은 제로였다. 이런 꿀 같은 육아의 맛을 보다가 서울에 가서 혼자 다시 모든 것을 짊어질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제주로 떠나올 때도 그러지 않았던가. 알면서도 에라 모르겠다. 


photo by_그랬구나


또한, 예민한 기질의 첫째나 활동적인 둘째나 아빠와의 시간은 너무나 감사한 시간이었다. 대자연의 힘을 온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바닷가로 하루아침에 거주지가 바뀌었지만 아빠가 있었기에 아이는 안정감을 느끼고 생각보다 빨리 바닷가 마을에 적응했다. 서울에서 혼자 두 아이를 돌보다 보면, 밖이 싫은 첫째와 나가고 싶은 둘째 사이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힘들었던 날이 많았다. 그런데 여기 제주에서는 믿음직한 육아 파트너가 24시간 상주한다. 내가 나가고 싶으면 둘째 손을 잡고 현관문을 열고 나갔고, 나가기 싫은 날이면 둘째의 손을 남편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렇게 남편의 육아휴직은 나에게 시간적 여유를 주었다. 


한 손엔 가벼운 통장을 들고, 한 손엔 듬직한 남편의 손을 잡고 한 달을 살아보니 정말 얄미울 만큼 돈과 시간은 반비례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남편의 육아휴직은 우리에게 반 토막의 월급을 주었지만,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두 토막(?) 아니 만 토막의 시간적, 심적 여유를 주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난 역시 제주로 떠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집이 흔들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