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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랬구나 Feb 24. 2023

집 정리 이야기_싱크대

제일 무섭던 싱크대 수납장부터 열었다

두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학기 중에는 집이 아무리 엉망이어도 아이들 등교 후엔 나도 외출을 했었다. 엉망인 집이 나 좀 정리해줍쇼 하고 아련하게 바라보는 것 같았지만 현관문 탁 닫고 나왔었다. 볼일을 보러도 다니고 볼일이 없을 때는 만들어서라도 나왔다. 그러다가 방학이 되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강제적으로 늘었다. 그동안은 바쁘다는 핑계로 모른척했지만 이제는 그 핑계도 안 통하니 정면돌파를 해보기로 했다. 정면돌파는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어려운 대상부 터해야 제맛이다.




가장 어려운 놈. 나에게는 싱크대 수납장이다. 정리를 잘하고 살진 않았지만 주워들은 건 많았다. 누군가 그랬다. 일단 다 꺼내놓고 다시 배치하라고. 싱크대 문을 열고 저지레 하는 아기처럼 와르르 모두 꺼냈다. 거실에서 놀던 두 아이가 신기하다는 얼굴로 구경하러 온다. 엄마가 뭐 하나 싶었을 거다. 정리가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대부분의 물건들은 꺼내면서 마음속으로 3초 안에 행방이 정해졌다. 버릴 것과 사용할 것. 정리하기 전과 후를 찍어놨어야 하는데, 정리하기 전이 너무 부끄러워 차마 공개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비교의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정리하기 전과 후의 사진은 없고 배치되지 못하고 남은 물건들의 사진만 남겼다. 



사진 속 물건들이 왜 다시 싱크대 수납장에 들어가지 못했는지 크게 몇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① 아이들 식기 중 필요 없게 된 것 : 유치원에서 사용하던 식판, 뽀로로 도시락은 이제 보내 주기로 했다.

②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린 것 : 뚜껑 없는 밀폐용기, 뚜껑만 있는 밀폐용기, 뚜껑이 녹이 슨 유리병

③ 돌려주어야 할 것 : 시어머니와 지인의 반찬통

④ 불필요하게 많은 것 : 플라스틱 채반, 사용빈도가 낮은 컵들

⑤ 있는 줄도 몰랐지만 이제 사용할 것 : 선물 받은 가위, 식기세척기 세제


사진 속 물건들은 원래의 주인을 찾아가고, 사용될 위치로 재배치되고, 재활용수거함에 들어가고, 거기도 못 들어가는 아이들은 폐기물 마대자루 속으로 들어갔다. 


물건 정리는 보통일이 아니다. 육체적으로도 고단하거니와, 이 물건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앞으로 다시 쓸 일은 없을까 고민하느라 정신적으로도 매우 피곤한 일이다. 그러다 보면 물건을 들이는 일에 신중을 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리를 하다 보니 앞으로 주방에 들일 물건들에 내 나름의 규칙이 정해졌다. 


① 유리나 스테인리스 종류로 하자. 

정리를 하다 보니 나는 플라스틱 주방용품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환경을 위해서도 플라스틱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유리나 스테인리스 종류로 구매하여 오래오래 사용하도록 해야겠다. 


② 안 쓰는 판촉용 머그컵은 사양하자. 

나는 컵은 한 번에 최소 6개 이상 구매하여 세트로 사용한다. 짝 안 맞는 1개짜리 머그컵은 사용도 안 하며 자리만 차지하게 된다. 받게 되는 경우 정중히 거절하자고 마음먹었다. 


1월 초쯤 정리를 하고 이 글을 작성했는데, 발행은 2월 말이 되었다. 이런 나의 모습이 정리를 잘 못하는 나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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