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코빼기

by 고재욱

면회 금지를 알리는 입간판이 요양원 입구에 설치된 지도 6개월이 넘었다. 나갈 수도 들어올 수도 없는 일상에 어르신들의 얼굴은 어둡기만 하다.

뉴스에서는 연일 코로나 19 속보를 전한다. 곧 면회가 재개될 거라는 어르신들의 희망은 며칠 만에 사라졌다. 가까운 지역의 일부 요양원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면회를 시작했다고는 하는데, 아직 이곳은 면회 금지를 고수하고 있다. 어르신들의 이유 없는 짜증이 늘어난 이유다.


한 할머니께서 말했다.

"내가 서른 살에 홀로 되어 지들을 키웠는데, 고마 이제 나를 버렸구먼."

나는 그제도 어제도 한 말을 되풀이했다.

"어르신, 아니에요. 저기 뉴스 보이시죠. 지금 전염병이 돌아서 그래요. 조금 있으면 자녀분들과 면회가 될 거예요. 조금만 더 기다려보세요."

어르신은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금세 서운한 마음으로 돌아갔다.

"고마 퍼뜩 죽어야 하는데, 자식새끼들한테 이리 짐이 되어서 살아 뭣하나."


외부 강사들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이나 여러 명이 모이는 자체 프로그램이 멈춘 상황에서 어르신들께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식사를 하고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일이 전부이니 얼마나 무료하실까.

창밖을 보는 시간이 늘어만 간다.

예전에 한 연예인이 목이 슬퍼 슬픈 짐승은?이라는 질문에, 저 알아요! 하며 답했다지. 기린이요! 하고.

가족을 만날 수 있는 날이 조금 더 지체되면 어르신들의 목이 슬픈 짐승을 닮아갈지도 모르겠다. 텔레비전을 보던 한 할머니의 턱이 자꾸만 창문 너머를 향해 들린다.


한 보호자에게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 요양원에 엄마를 모신 아들인데, 그는 암투병 중이었다. 그의 상태가 더 나빠졌다고 했다. 다시 엄마를 못 볼 수도 있다고,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면회를 부탁했다. 그 마음이야 백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요양원 어르신들을 위험한 상황에 노출시킬 수도 없어서 현관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만날 수 있도록 해드렸다.


6개월 만에 본 그의 얼굴은 검게 변해있었다. 셔츠 안쪽으로 살짝 보이는 쇄골이 피부를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

그는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일정 거리두기 때문에 유리문에 손을 얹고 엄마의 체온을 느낄 수도 없었다. 그는 엄마가 볼세라 서둘러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닦았다.

안쪽으로 유리문에서 1M쯤 떨어진 곳에서 할머니가 오랜만에 보는 아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의 책에 등장하는 밤마다 막내딸에게 유품을 남기는 할머니다. 할머니 손에는 보따리 하나가 들려있었다. 아들에게 주는 할머니의 선물인데, 아마 간식으로 나온 카스타드 빵과 사탕 몇 개, 그리고 할머니가 아까워서 신지 못한 양말이 들어있을 것이다.

할머니는 붉은 보자기로 단단하게 묶은 보따리를 앞으로 내밀고 흔들었다. 아들에게 가져가란 뜻이다.

한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보따리를 유리문 너머 고개 숙인 아들에게 전해주었다.


할머니는 평소에도 다른 사람의 말은 듣지 않고 본인 말만 하시는 분인데, 이 날도 다르지 않았다.

할머니는 같은 말만 반복했다.

- 잘 살아, 잘 살아, 잘 살아......

엄마의 붉은 보따리를 한쪽 손에 쥔 육십을 훌쩍 넘긴 아들이 어깨를 들썩였다.

아들도 같은 말을 계속했다.

- 엄마, 잘 지내, 잘 지내, 잘 지내.....


유리문 밖에서 울먹이는 아들에게 할머니가 손등과 손바닥을 번갈아 뒤집었다. 바쁜데 어서 가란다. 아들도, 할머니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도 모두 흐느꼈다.

돌아가는 아들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할머니는 유리문 앞을 떠나지 않았다.


코로나 19 확진자가 다시 늘고 있다는 그 날에, 창문을 바라보던 노인들이 '어째 애들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느냐'며 한숨을 쉬었고, 엄마의 붉은 보따리를 들고 가는 사내의 그림자는 쉼 없이 비틀거렸고, 산비둘기 두어 마리가 오음 절의 노래를 반복했고, 큰 소나무 뒤에 몸을 숨긴 꾀꼬리가 구슬프게 울었는데, 하늘은 푸르고 맑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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