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1번째주
[아래는 제가 발행하는 뉴스레터인 Balanced의 내용입니다. 매주 월요일날 오전에 발송한 이후 1주 늦게 브런치에 올립니다. 구독을 원하시는 분은 다음주소로 오시면 됩니다 https://balanced.stibee.com
지난 금요일 오후에 깜짝 소식을 전화로 듣게 되었습니다. 저의 3번쨰 책이었던 "스타트업, 쉽게 할 수 있다는 거짓말"이 세종도서에 선정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기쁨으로 가득찬 편집자분의 소식이지만, 저는 사실 처음에 좀 당황했습니다. 왜냐하면 세종도서에 당선되었다는 사실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몰랐기 떄문입니다.
세종도서란 무엇일까
알고보니 세종도서는 국가에서 특정기간에 발간된 책 중에서 추천할만한 책을 발굴하고 인증해주는 제도였습니다. 그리고 국비로 책을 구매해서 도서관등에 납품하는 절차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글을 쓴 당사자에게도 영광스러운 일이었고, 출판사에게도 꽤 도움이 될만한 국가 사업인 것입니다. 첫 책을 발간한지 6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이런 제도가 있는지 조차 몰랐습니다. 부족한 저에게는 당연히 감사한 일입니다. 다만, 제가 몰랐던 만큼 감사의 순간이 조금 늦게 찾아왔던 것이죠.
감사의 순간, 슬럼프에 빠져있는 상황
이번 세종도서에 선정되었다는 사실이 저에게 평소보다 좀더 큰 의미를 가지는 의마가 있습니다. 요즘 저는 글쓰기에 영 흥미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정기적으로 쓰는 글이라고 해봐야 정기적인 기고와 간헐적인 요청에 의해서 쓰게되는 약간은 기계적인 글밖에 없지만 말이죠. 전혀 프로페셔널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동안은 꽤나 글쓰기에 열정도 있었는데 어느순간 모든 열정이 사라져 버렸던 것입니다.
그나마 일주일에 한번씩 보내는 뉴스레터가 아니면 아마 모든 글쓰기에 흥미를 잃어버렸을 수도있었을것 같습니다. 저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글쓰기에 대한 방향성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첫번쨰 책의 우연한 성공에 취해서 낸 두번쨰 소설책이 망하고, 세번쨰 에세이도 반응이 미지근한 상황에 놓이자 저는 텍스트라는 형태의 콘텐츠로 뭔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의 가닥을 놓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해야만 버틸 수 있는 시장
글을 쓰는 모든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텍스트로 하는 비즈니스는 난이도가 높습니다. 왜냐하면 수익성이 상당히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투입되는 노력에 대비하면 결과로 주어지는 보상들은 경제적인 수준을 제외하더라도 상당히 느리게 주어집니다. 또한 글을 읽는 사람들이 점차 줄어드는 시대에서 텍스트로 만들어진 상품은 다수의 의무(교과서, 문제집등)로 만들어지는 상품들이 주류를 차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뭔가를 배우기 위해서 텍스트를 소비하지 않습니다. 저도 궁금하면 챗지피티를 꺼내기 떄문입니다.
점차 줄어드는 시장에서, 그것도 사람들의 수요가 적은 스타트업 시장에서 활동하는 글쟁이의 시장은 더욱 작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경제적인 이유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이 시장에서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경제적인 것보다 어떻게든 자기가 원하는것을 하지 않으면 몸살이 나는 매우 원초적인 수요가 이곳의 글쟁이들을 공급하는 동력이 됩니다.
인사이트 기반의 글의 한계
그래서 저같은 글쟁이들은 꺠달음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스스로 깨달은 바가 있고 이것을 알리고 논의하기 위해서 손가락이 움직여야 하는것이죠. 제가 활발히 글을 쓸때는 할말이 많았습니다. 제가 아는것들이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거든요. 그래서 SNS에도 글을 계속 쓰고, 기고도 썻습니다. 매일을 바쁘게 말이죠. 하지만, 어느 순간 부터 저의 머릿속은 의심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이게 정말 도움이 될까?"
시간은 흐르고 저도 성장했지만, 저는 여전히 초기 창업자들을 위한 글만 쓰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똑같은 이야기를 너무나 많이 반복했습니다. 했던 말을 또하고 계속 하자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져들은 것입니다. 저 스스로의 성장도 정체되는 상황에서 글을 쓰고 있으니 당연히 내용도 지지부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또한 제가 했던 사업의 영역에서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저는 똑같은 상황에서 기계적인 반복만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에게는 슬럼프가 왔습니다.
당연한 말은 쓰고 싶지 않고, 생각나는 인사이트는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저는 더이상 글을 재미있게 쓸 수 있는 동기를 잃어버린 것이죠.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것일까
그리고 정작 저를 사람들에게 알리게 되었던 글이나 콘텐츠 -예를 들면 기업분석과 같은-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에도 저는 살짝 질리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지인들은 알겠지만, 저는 외부인의 단순히 주어진 자료만을 보고 기업분석을 하는 과정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회계사들이 회사에 대해서 마치 정확히 아는듯이 쓰고 분석합니다. 하지만, 사실 여러분들 회계사들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회사를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내부자가 아니라면 주어진 정보들은 단편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은 그들도 압니다. 물론 저도 알죠...그래서 회계사가 하는 기업분석의 자료들은 단편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게 한계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것을 아는것 같은 마음으로 주위에 말하고 써야하는데...문제는 제가 그게 안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가끔 저도 그런식의 글을 쓰고 발표도 합니다. 저도 똑같은 사람이기 떄문이죠. 차이점이 있다면 그런일이 발생하면 자괴감으로 몇일간 괴로워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정확히 원하는것을 찾지 못했다는 괴로움과 너무나 뻔한 글을 써서 창피하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괴롭히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꺠닫게 되죠. "이건 내가 원하는게 아니구나"
우연으로 주어진 작은 선물을 통해 다시 일어서다
그렇습니다. 저는 최근 몇년동안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주어진 숙제를 하면서 괴로워하고, 똑같은 글을 보면서 슬퍼하고, 글을 썻다가 지우는 과정을 겪으면서 여전히 슬럼프에 빠져있고, 방향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 최근 책이 세종도서에 선정되었다는 사실은 작은 선물과 같습니다. 노벨상도 아니고 엄청 거창한 상도 아니지만, 저에게는 그냥 꾸준히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이정표를 받은 느낌이 듭니다.
저는 앞으로도 방향을 고민하면서 걸어나갈 생각입니다. 어떻게든 뭔가 되겠죠. 두번쨰 책같이 예상보다 훨씬 망해서 재고가 쌓여있을 수도 있고 (현재 저의 베란다를 채우고 있는 것처럼), 의외로 시장에서 호평을 받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결과가 무엇이든 앞으로 걸어나가는것 같습니다.
아직 준비는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내년에 나올 책을 위해서 또다시 달려보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