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18
더블린에 온 지 한 달이 된 날.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그래도 잘 버텨냈구나 스스로(?) 대견해하며 와인 한 병과 함께 나름의 소소한 자축파티를 열고 술이 얼큰하게 취해 괜히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 시간을 꽤 거슬러 아일랜드라는 나라를 알기 전까지로 기억이 넘어갔다.
생각해보면 내가 더블린이라는 도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음악다큐 tv프로그램 '비긴어게인'이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이(심지어 콘서트도 다 가 본) 해외에서 버스킹을 하다니. 낯선 곳에서 새롭게 노래하다, 라는 슬로건에 맞게 이들은 본인의 곡들과 외국의 곡들을 적절히 섞어 직접 편곡에 합주까지 단단하게 연습을 하고 외국인을 노래로 맞이한다.
특히 아일랜드 더블린 그래프턴 스트릿을 첫 버스킹 장소로 결정하고 관객들을 살피며 긴장감에 덜덜 떨며 노래를 부르는 이들의 모습을 보는 건 꽤나 신기한 장면이었다. 한국에서는 이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내노라하는 뮤지션들이기에. 이들은 이후 아일랜드 골웨이, 영국 리버풀과 맨체스터, 스위스와 프랑스에서 공연을 이어나갔다. 그 중 특히 아일랜드 슬레인 성에서 부른 노래들은 한 곡 한 곡 조심히 꺼내 곱씹어서 듣게 되고는 한다.
방송 당시 일에 치여 사람에 치여 나 스스로에 치여 꽤나 힘들었던 시기였는데, 매주 일요일 이 방송을 보고 꽤 많은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방송은 내가 아일랜드로 오게 된 하나의 이유가 되어주었다.
버스킹했던 노래들이 전부 너무 다 좋지만, 그 중 가장 좋아하는 Oasis의 Don't look back in anger를 픽. 맨체스터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부른 노래라 더욱 의미가 크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