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th week in Dublin (27/05~03/06)
벌써 더블린에 머문 지 한 달하고도 이 주가 흘렀고 그렇게 홈스테이 가족들과 인사를 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떠나는 주 월요일, 홈스테이 아주머니인 고시아와 소피와 얘기를 나누다가 이번 주가 이 곳에서 지내는 마지막 주라고 얘기하니 말도 안 된다며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나며 벌써부터 아쉬워해 보이는 내 표정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
나도 놀랐다. 정말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구나 싶어서.
사실 이번 주 일요일까지 지내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 원래 계약이었는데, 주말에 런던을 가야 하는 일정이 있어서 짐을 하루만 더 방에 맡겨놓았다가 돌아오는 월요일에 찾기로 했다. 그렇게 런던으로 떠나기 며칠 전, 흩어져있는 짐들을 다시 하나 둘 정리해 캐리어에 백팩에 담으면서 근 한 달동안의 일들을 떠올리며 많은 생각들을 했던 것 같은데, '왜 내가 이런 것까지 가지고 왔었지? 참 많이도 쟁여왔구나' '짐의 팔할은 옷인데 제대로 입어보지도 못하고ㅠㅠ' '맥주를 원없이 먹겠다던 내 포부는 어디로...' '그래도 용케도 이 짐으로 한 달을 어떻게 버티긴 버텼구나' '아, 집밥 먹고싶다' 등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짐을 다 싸고 침대에 앉아 나름대로의 소회를 브이로그처럼 영상으로 담았는데, 이건 부끄러우니 한국갔을 때 다시 보는 것으로.
런던으로 떠나기 전날, 시티센터에서 간단한 여름 옷들과 물건들을 사고 문구점에 들러 고시아와 소피에게 줄 카드 한 장을 샀다. 그리고 마감 직전인 카페에 앉아 부랴부랴 글을 써내려갔다. 짧은 영어실력이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대로 담겼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마음이라도 전달이 될까 싶어 적어내려간 카드. 그리고 고시아에게는 샤워 후 잔향이 좋아 3년 전부터 계속 쓰고 있던 바디로션을, 소피에게는 한복을 입은 테디베어 열쇠고리와 스티커들을 선물로 준비했다. 고시아는 이날 늦게까지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하게 되어 대신 소피에게 카드와 선물을 전해 주었다. 별 건 아니지만 그동안 고마웠다며. 그러자 소피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꼬옥 껴안아주었다. 여느 사춘기 소녀답지 않게 사랑스러웠던 소피. 그렇게 나는 다음날 새벽 런던으로 향했다. 그리고 런던에 막 착륙한 비행기 안에서 고시아의 문자를 받아보았다.
그렇게 런던에서 정신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어찌나 짧게 느껴지던지. 초췌한 표정으로 초인종을 누르니 고시아가 막 일어난 모습으로 문을 열어주며 꼬박 24시간을 못 잔 내 몰골을 보고 도대체 런던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며 나를 맞았다. (이 장황한 얘기는 뒤에 여담에서 설명하는 것으로) 고시아와도 짧은 얘기를 나누고 다음 집으로 가야하는 시간이 있어서 서둘러 짐들을 챙겨 집 앞으로 나왔다. 고시아와도 꼬옥 포옹하며 인사를 나누고 택시를 잡았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근 한 달을 별다른 걱정 없이 큰 불안감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다른 것도 아닌 고시아와 소피와 함께 머물렀던 집이 그만큼 편안했기에 가능했던 일들이라고 생각한다. 따수운 방에서 잠도 잘 자고 불편함 없이 잘 씻고 밥도 잘 해 먹고. 사실 이것들이 가장 중요했던 건데 그것들을 별 탈 없이 할 수 있어서 어학원도 잘 다닐 수 있었고 일도 빨리 구할 수 있었기도 했고. 멀리 타지에서 온 이방인을 친구처럼 맞아주었던 소피와 고시아를 오랫동안 잊지못할 것 같다. 고마워요!
+)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이틀 전, 고시아에게서 잘 지내고 있냐며 특유의 쿨한 톤으로 문자가 왔다. 보통은 홈스테이가 끝나고 나면 남남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고시아와는 그렇게 될 것 같지 않은 좋은(?) 예감이 든다.
그렇게 세 개의 캐리어와 백팩, 에코백 등 어마어마한 짐들을 택시에 싣고 새로운 곳인 스틸로건으로 가면서 어쩌다보니 택시기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20분 정도 되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공부 얘기, 사는 얘기, 일 얘기, 한국 얘기 등을 나누며 택시기사 안쏘니는 내게 우리 엄마(?)같은 얘기들을 해 주었다. 가령 모든 것에 자신감을 가져라,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하루하루 의미있게 살아야 한다 등. 처음에는 그냥 빈말이겠거니 했는데 꽤나 진중하게 답변을 해 주는 모습에 괜히 감동받았다. 앞서 말한대로 하루를 꼬박 잠을 자지 않았던 터라 비몽사몽했지만, 그래도 스틸로건으로 향하는 내내 택시 안은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내가 새로 묵게 되는 곳은 스틸로건에 위치하고 있는 수녀님들이 운영하시는 레지던시. 한국에서 미리 홈스테이 다음 집을 찾아보니 싱글룸에 식사도 제공해 주며 가격도 비싸지 않아 꽤 괜찮아 보여 2월부터 컨택했던 곳이었다. 수녀님과는 한국에서 그리고 더블린에서 종종 메일을 주고받으며 입주 시기를 조율하곤 했었다.
그렇게 새로운 레지던시에 도착해서 오피스 초인종을 눌렀는데 응? 아무도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다 싶어 주변을 서성거렸는데 쥐죽은 듯이 조용한 느낌에 기분이 쎄해졌다. 안쏘니가 차에서 내려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어보길래 내 상황을 얘기해주니 한 번 연락을 해 보라며 언질을 해 주었다. 그렇게 전화를 걸어보니 수녀님이 마침 급한 회의가 있어서 다른 곳에 있다며 10분 내로 갈 테니 잠시 기다리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러자 안쏘니는 짧은 핫팬츠를 입고 있었어서 추운 날씨에 오들오들 떨고 있을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수녀님이 올 때까지 기다려주겠다며 걱정스러운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그 친절에 부담도 되고 괜히 나쁜 생각인건가 순간 의심했지만, 정말 착한 마음으로 기다려준 것임을 알게 되고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한꺼번에 들었다. 매분 매초 손님을 태워야 하는 택시기사가 나를 위해 미터기를 끄다니. 정말 고마운 분. 그렇게 수녀님이 돌아오시고 수녀님도 택시기사 친구에게 '갓블레스유'라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월요일이었지만 공휴일이었기에 주변 분위기는 굉장히 조용했다. 그렇게 나는 간단히 방 소개와 규칙들을 안내받고 짐을 올려놓자마자 침대에 뻗고 바로 그렇게 기절했다. 곧 점심시간이었지만 그건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제일 필요했던 것은 잠이었기에. 그렇게 한참을 자고서야 겨우 일어나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이사했다는 안부를 전할 수 있었다. 잘 지내보아요, 스틸로건!
런던에서 BTS 콘서트를 보고 웸블리 경기장을 나섰던 것은 밤 11시 경이었다. 수많은 인파가 경기장을 나와 역으로 향하고 있었고 그들 중 나도 같이 섞여 있었다. 그 와중에 일정을 같이 했던 언니와 연락이 닿지 않아 서로 만나기로 했던 장소에서 엇갈려 30분 정도를 헤매다가 겨우 상봉했다. 그렇게 힘겹게 역으로 향해 나아가던 중 술에 잔뜩 취한 무리들이 인파에 갑자기 섞이기 시작했다. 나중에서야 알고 보니 이 날 큰 축구 리그 경기가 있었어서 실황중계가 끝나고 나오는 무리였던 모양이다. 주로 건장한 남자들이었는데 대부분이 알콜이 거나하게 들어갔던지라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고 환호성을 지르고 욕도 하고 밀치기도 하고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왜 겁없게도 그 순간들이 그저 재미있고 신기했던지.
그렇게 경기장 주변은 꽉 막혔고 가뜩이나 날씨도 추워져서 부들부들 떨면서 가다서다를 반복하기를 약 2시간. 12시 반이 훌쩍 넘어서야 역으로 도착할 수 있었는데, 아뿔싸. 이미 지하철 막차가 끊겨버린 지 오래였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볼멘소리를 터뜨리며 다른 대안을 찾기에 급급했다. 우선 나와 언니는 짐들이 있는 베이커 스트릿(Baker Street)으로 가야했기에 심야버스를 알아보고 근처에 있는 경찰에게도 물어보며 20분 정도 걸어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정류장에는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옷을 여며가며 버스를 기다렸다.
30분에 한 대씩 심야버스가 왔는데 처음 한 대가 만차여서 훌쩍 우리를 지나쳤을 때에는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그렇게 30분 후 또 한 대가 자비없이 떠나버리자 급 눈물이 났다. 이유는 너무 추워서. 새벽의 런던은 너무너무 추웠고, 그때의 내 옷차림은 청자켓에 짧은 숏팬츠. 그리고 짐을 찾아서 공항에 도착해야 하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자 급 불안해지기도 했다.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비싸더라도 우버를 불러야겠다 싶어 언니랑 우버를 알아보던 중 저 멀리서 보이는 버스 한 대. 앗싸! 자리가 있었다.
그렇게 새벽 2시 반이 되어서야 승객들로 가득 찬 버스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 맨 뒷자리에 앉아 그렇게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내 옆자리에 앉은 남자애가 갑자기 'FXXX'이라고 꽤 크게 욕을 했다. 나는 움찔해서 설마 나한테 그러는 건가 싶어 불안한 눈으로 옆을 쳐다봤고, 나를 본 남자애는 그런 나를 보더니 하얀 이를 드러내며 너에게 그런 거 아니니 괜찮다며 활짝 웃어보였다. 다만 버스를 몇 대 보내서 화가 났을 뿐이라고 하길래 알게 모르게 급 동질감이 생겨서 나도 지금 그랬다고 같이 크게 맞장구를 치니 내 리액션이 컸던 모양인지 남자애가 킬킬대고 웃었다. 마침 아까 덜덜대며 찾아본 우버 어플리케이션에서 결제 문제 때문에 언니와 내가 애를 먹고 있었어서 잘됐다 싶어 혹시 이거 도와줄 수 있냐고 물어보니 당연하다며 우버기사와 전화를 대신 해 주었고 그렇게 나는 그 남자아이와 급(?)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아프리카 감비아에서 온 이 친구는 5년 정도 런던에서 지내고 있는데 이런 저런 일들을 하며 하루하루를 지내는 모양이었다. 나도 오늘의 일상과 더블린에서의 일상들을 그 친구와 공유했다. 알고 보니 그 친구는 오늘 콘서트에서 진행 요원 파트 타임 근무를 했던 친구였고, 오늘 하루 쫄쫄 굶으면서 일했을 그 친구를 보니 마음이 쓰여 가지고 있던 팝콘을 조심스레 건네 주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집에 가서 간식으로 먹겠다고 고맙다며 반대로 나와 언니에게 목이 말랐을 거라며 물을 건네 주었다. 그렇게 인스타그램 아이디도 주고받으며 우리는 목적지에 먼저 내려 서로의 무사귀환을 빌었다. 그리고 그 친구와는 지금까지도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잘 지내고 있다. 그렇게 나는 베이커 스트릿에서 짐을 찾고 언니와 헤어지고 겨우겨우 공항버스에 올라타 체크인 시간에 딱 맞춰서 런던 루튼공항에 도착했고, 일출을 맞으며 더블린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리고 비행기에 타자마자 그대로 기절. 비행기가 이륙한 지도 착륙한 지도 모르고 죽은 듯이 내리 잠만 잤던 건 또 처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