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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e Sep 30. 2021

시선

 ‘오늘은 좀 틀려도 돼’ 발레수업에 앞서 되뇌는 말이다. 다른 사람 신경쓰지 말고 나한테만 집중하자는 의미다. ‘순서는 틀려도 동작은 바르게 하자’ 처음 발레 클래스를 들었을 때와 사뭇 달라진 마음이다.


 발레 클래스를 처음 들은 날. 역시 몸치는 안 되는 것인가? 라는 원론적인 고민에 직면했다. 남들은 다 따라 하는 동작을 나만 못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동작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순서를 따라가는 것이 벅차서다. 클래스에서는 한 동작을 진행할 때 순서에 맞춰 동작을 배운다. 바워크 같은 경우 다리 번호에 맞춰서 한 동작을 한 번 혹은 두 번씩 진행한다. 예를 들어 플리에를 한다고 하면, 1번 발에서 드미 플리에 한 번, 그랑 플리에 한 번, 2번, 4번, 5번 발에서 또 한 번씩으로 순서가 짜인다. 이렇게 써 놓고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아서 조금 억울한데, 중간 중간 포 드 브라(port de bras)와 쑤-쒸(sous-su), 를르베(releve) 같은 곁다리 동작들이 붙으면 외우는 것이 쉽지가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생님의 수업 진행 패턴에 어느 정도 적응된다는 것이 위로할 만한 점이다. 정신 바짝 차리고 집중하면, 순서를 틀리지 않고 할 수 있게 되었다. 순서를 대강 외울 수 있게 되니 동작 하나 하나에 더 신경을 쓸 수 있게 되었다. “허리 펴고 골반 세우세요” “무릎 더 쭉 피세요” 같은 선생님의 지적 사항들이 이제야 귀에 들어온다. 한 동작 한 동작 더 신경 쓰다 보니 서있는 것 만으로도 땀이 비 오듯 떨어진다. 그제야 알았다. 아 내가 그 동안 해온 건 그냥 흉내내기였구나. 진짜 발레로 흘리는 땀은 지금부터구나.


 그러던 어느 날, 같은 클래스 듣는 분께서 수업 전에 나에게 말씀하셨다. “어쩜 그렇게 동작을 잘 외워요? 저는 항상 지연님보고 따라 해요” 어머나, 이게 무슨 말인가! 스스로 발레 열등생이라 생각해 왔었던 터라 아무도 난 안 보겠지 싶은 생각을 갖고 했는데 이렇게 인정(?) 받다니. 빈말이었을지 몰라도 너무 감사한 칭찬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누군가 날 보고 따라 한다고 하니 바짝 긴장하게 되었다. 잘 따라 하던 순서에서 실수가 반복되었다. 오랜만에 그냥 땀 아닌 식은 땀이 삐질. 한 시간 내내 다른 시선을 신경 쓰느라 도통 순서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제 좀 제대로 배워가는 것 같은데 남이 보는 게 뭐라고 자꾸 신경이 쓰이는 거야. 화가 났다. 이런 경험은 이후로도 여러 번 있었는데, 선생님이 클래스 동영상을 찍어서 학원 SNS에 올리실 때도 잘 하던 동작에서 꼬이고 틀리고. 대체 왜 이럴까 싶어 속상했다. 사실 발레는 공연 예술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예술 행위라는 것이다. 취미 발레인으로서 내 발레를 대중 앞에서 선보이는 기회는 거의 없겠지만, 나도 만족하면서, 남들이 보기에도 그럴듯한 발레를 할 수 있는 경지는 아직도 멀고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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