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한-칠레 FTA 발효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 4편 - 03

by 한정엽

2004년 4월 1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정식 발효되었다.


이는 한국 경제사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점이었다. 한국이 독립 이후 처음으로 체결한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이었기 때문이다.


이 협정의 탄생은 단순한 경제적 거래를 넘어서, 한국의 대외 경제 전략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은 대내외적으로 경제 개방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특히 WTO 체제하에서 다자간 무역 자유화의 진전이 지체되면서, 양자 간 FTA가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했다.


이러한 국제 경제 환경의 변화 속에서, 한국 정부는 보다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대외 개방 정책을 모색하게 되었다.


칠레라는 파트너 선택은 매우 신중한 전략적 판단의 결과였다.


칠레는 이미 미국, 캐나다, 멕시코, EU 등과 FTA를 체결한 경험이 풍부한 국가였다.


또한 남미 지역에서 가장 안정적인 정치 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공산품에 대한 수요가 상당했다.


무엇보다 칠레는 상대적으로 작은 경제 규모로 인해 한국 국내 산업에 미치는 충격이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되었다.


협정의 핵심 내용과 특징


한-칠레 FTA는 상호 보완적인 경제 구조를 바탕으로 설계되었다.


한국은 자동차, 전자제품, 섬유, 화학제품 등 공산품 분야에서 칠레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하고자 했다.


반면 칠레는 구리, 와인, 과일, 수산물 등 1차 산품의 대한국 수출 증대를 기대했다.


협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단계적 관세 철폐 방식이었다.


즉시 철폐되는 품목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품목은 5년, 10년, 16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관세가 인하되도록 설계되었다.


이는 급격한 시장 개방으로 인한 국내 산업의 충격을 완화하려는 의도였다.


특히 농업 분야에서는 민감성을 고려한 세밀한 접근이 이루어졌다.


쌀은 완전히 제외되었고, 사과, 배 등 일부 과일은 물량 제한 하에서만 관세가 철폐되었다.


이러한 예외 조치는 국내 농업 보호와 무역 자유화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의 산물이었다.


서비스 분야에서도 상당한 개방이 이루어졌다.


통신, 금융, 유통 등 다양한 서비스 업종에서 양국 기업들의 상호 진출이 용이해졌다.


또한 투자 보호 조항을 통해 양국 기업의 상대국 투자에 대한 안전장치도 마련되었다.


03_fta.jpg 한국-칠레 FTA 발효 내용 <출처 : FTA정보원>


경제적 의의와 파급 효과


한-칠레 FTA의 경제적 의의는 다층적이었다.


먼저 직접적인 무역 효과 측면에서, 양국 간 교역량은 협정 발효 이후 꾸준히 증가했다.


한국의 대 칠레 수출은 2003년 약 4억 달러에서 2010년 약 30억 달러로 7배 이상 증가했다.


칠레의 대한국 수출 역시 같은 기간 약 2억 달러에서 약 40억 달러로 20배 증가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FTA가 한국 기업들에게 남미 시장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의 주요 기업들이 칠레를 거점으로 남미 전체 시장으로 진출을 확대했다.


이는 한국 경제의 지리적 다변화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한편 칠레산 와인, 과일, 수산물 등의 수입 증가는 한국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제공했다.


특히 칠레 와인은 한국 와인 시장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는 한국 소비자들의 생활 패턴과 소비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초기 추진 단계의 복잡성


한-칠레 FTA 추진 과정은 2000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경제 구조 개혁의 일환으로 대외 개방을 적극 추진하고 있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 정부 산하 연구기관들이 FTA 체결의 필요성과 파트너 국가 선정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칠레가 우선 파트너로 선정된 것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첫째, 칠레의 풍부한 FTA 체결 경험이 한국에게 학습 효과를 제공할 수 있었다.


둘째, 양국 경제의 상호 보완성이 높아 윈-윈 관계 구축이 가능했다.


셋째, 칠레의 상대적으로 작은 경제 규모로 인해 국내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2000년 11월 APEC 정상회의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리카르도 라고스 칠레 대통령이 FTA 추진에 합의함으로써 공식적인 협상이 시작되었다.


이는 한국 외교사에서 매우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한국이 처음으로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나선 것이었기 때문이다.


협상 과정의 역동성


실제 협상은 2001년 12월부터 시작되었다.


양국은 총 6차례의 공식 협상을 거쳐 2003년 2월 기본 합의에 도달했다. 협상 과정에서 가장 큰 쟁점은 역시 농업 분야였다.


한국의 농업계는 칠레산 농산물 수입 증가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고, 정부는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특히 사과 분야에서 치열한 협상이 벌어졌다.


칠레는 세계 최대 사과 수출국 중 하나였고, 한국은 사과 주산지인 경북 지역 농민들의 반발을 고려해야 했다.


결국 사과는 TRQ(관세율할당) 방식으로 연간 일정 물량에 대해서만 관세를 철폐하기로 합의했다.


공산품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순조로운 협상이 진행되었다.


칠레는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 전자제품에 대한 관세 철폐를 수용했고, 한국도 칠레의 주요 수출 품목인 구리, 와인 등에 대한 관세 인하에 합의했다.


03_fta_woguqtk.jpg 2016년 한국-칠레 FTA 재협상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비준 과정의 정치적 역학


협상 타결 이후 가장 큰 난관은 국내 비준 과정이었다.


2003년 2월 기본 합의 이후, 한국 국회에서는 치열한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 진영은 국내 농업 보호 필요성을 강조하며 반대했고, 민주당 등 진보 진영은 경제 개방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찬성했다.


농업계의 반발은 특히 강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 단체들은 대규모 집회를 열어 FTA 체결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들은 칠레산 농산물 수입 증가로 인한 농가 소득 감소와 농업 기반 붕괴를 우려했다.


정부는 이러한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농업 경쟁력 강화 대책을 마련했다.


2003년 8월 'FTA 체결에 따른 농업 경쟁력 제고 대책'을 발표하여 총 1조 2천억 원 규모의 농업 지원 예산을 확보했다.


이는 구조조정 지원, 품질 향상, 마케팅 지원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대책이었다.


2003년 12월, 마침내 국회 본회의에서 한-칠레 FTA가 통과되었다.


찬성 148표, 반대 70표, 기권 12표로 가결되었다. 이는 한국 정치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한국이 처음으로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을 비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발효 준비와 후속 조치


국회 비준 이후 정부는 FTA 발효에 대비한 준비 작업을 본격화했다.


관세청은 관세 인하 시스템을 구축했고, 농림부는 농업 경쟁력 강화 사업을 시작했다.


또한 중소기업청은 중소기업의 칠레 진출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2004년 4월 1일, 드디어 한-칠레 FTA가 공식 발효되었다.


이날 서울과 산티아고에서 동시에 기념식이 열렸다. 한국에서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칠레 주한대사가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발효 직후부터 양국 간 교역량은 눈에 띄게 증가했다.


특히 한국의 대 칠레 자동차 수출과 칠레의 대한국 와인 수출이 급증했다.


이는 FTA의 직접적인 효과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한국 FTA 정책의 출발점


한-칠레 FTA는 한국의 FTA 정책사에서 매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는 단순히 최초의 FTA라는 의미를 넘어서, 한국이 다자주의에서 지역주의로 대외 경제 전략을 전환하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후 한국은 싱가포르, 아세안, 인도, EU, 미국 등과 연이어 FTA를 체결하며 FTA 허브 국가로 발전했다.


특히 이 협정을 통해 한국은 FTA 협상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었다.


농업 분야의 민감성, 국내 이해관계자들의 조율, 국회 비준 과정의 정치적 역학 등을 경험함으로써, 이후 더욱 복잡한 FTA 협상에 대비할 수 있었다.


경제적 성과와 한계


경제적 성과 측면에서 한-칠레 FTA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양국 간 교역량은 협정 발효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특히 한국 기업들의 남미 진출에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했다.


현대자동차는 칠레 시장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 전체로 진출을 확대했다.


칠레산 와인의 한국 진출도 매우 성공적이었다.


2003년 이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칠레 와인이 2010년대에는 한국 와인 시장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는 FTA가 단순한 무역 증진을 넘어서 양국 국민들의 생활양식에까지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칠레의 상대적으로 작은 시장 규모로 인해 한국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또한 양국 간 지리적 거리와 문화적 차이로 인해 협력의 심화에는 한계가 있었다.


03_fta_kbs.jpg 한국-칠레 FTA 비준안 통과 모습 <출처 : KBS>


농업 부문의 구조적 변화


한-칠레 FTA는 한국 농업 부문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당초 우려와 달리 단기적인 충격은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


이는 정부의 농업 경쟁력 강화 대책과 단계적 관세 철폐 방식이 효과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 농업의 구조 조정을 가속화했다.


칠레산 과일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국 농민들은 품질 고급화, 브랜드화, 수출 확대 등 다양한 전략을 모색해야 했다.


이는 한국 농업이 보호받는 산업에서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통상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


한-칠레 FTA는 한국의 통상 정책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전까지 한국은 WTO 등 다자 체제를 통한 무역 자유화를 선호했다.


하지만 다자간 협상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양자 간 FTA가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했다.


이 협정을 통해 한국은 개방과 보호의 균형점을 찾는 방법을 학습했다.


완전한 자유화보다는 단계적 개방과 예외 조치를 통해 국내 산업의 충격을 최소화하면서도 경제 효율성을 제고하는 전략을 개발했다.


지역 경제 통합의 선구자


한-칠레 FTA는 한국이 지역 경제 통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출발점이었다.


이후 한국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FTA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특히 RCEP(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 참여는 한-칠레 FTA에서 시작된 지역주의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FTA 정책의 적극적 추진은 한국을 동북아시아 지역의 경제 허브로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경제적 이점으로 활용하는 전략의 기초가 되었다.


역사적 의의와 미래 전망


한-칠레 FTA는 한국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는 한국이 수출 주도 성장 모델을 보다 정교하게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단순한 수출 증대를 넘어서 시장 다변화, 산업 구조 고도화, 경쟁력 강화 등 종합적인 경제 발전 전략의 틀을 제공했다.


또한 이 협정은 한국의 대외 관계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전통적으로 안보 중심이었던 대외 정책에서 경제 협력을 통한 실용적 외교로의 전환을 상징했다.


이는 21세기 한국 외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미래를 전망해 보면, 한-칠레 FTA의 경험은 한국의 신남방 정책, 신북방 정책 등 새로운 지역 협력 전략의 기초가 되고 있다.


특히 중남미 지역과의 협력 확대는 한-칠레 FTA에서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2004년 한-칠레 FTA 발효는 한국 경제사의 분수령이었다.


이는 한국이 폐쇄적 경제에서 개방적 경제로, 수동적 무역 정책에서 능동적 통상 정책으로 전환하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비록 협정 자체의 경제적 규모는 제한적이었지만, 이후 한국의 FTA 정책과 대외 경제 전략 전반에 미친 영향은 매우 컸다.


한-칠레 FTA는 한국이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경제 강국으로 도약하는 첫걸음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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