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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Jan 01. 2024

[서평]불안을 이기는 철학

  최근 스토아철학을 주제로 한 책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스토아철학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 많아졌다는 증거다. 스토아철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건 우리나라뿐 아니다. 아마존(Amazon)을 방문해보면 스토아철학을 다룬 책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도 많다. 


  스토아철학이 현대인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를 '통제의 이분법'(dichotomy of Control)이라는 스토아철학의 기본원리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다. 이 원리는 살아가며 부딪치며 해결해야 할 여러 가지 경험을 두 가지로 명료하게 정리해준다. 자기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말이다. 어찌보면 너무나 상식적인 이 원리가 왜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의 비법 혹은 지혜로 어필하고 있는 걸까?


  사람들은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착각하곤 한다. 세상 모든 일을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오만한 믿음은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 얻을 수 없는 대상을 욕망하게 한다. 


  가령 자신을 괴롭히는 직장 상사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일단 사소하게 직장 상사에 대한 뒷담화를 주도하거나 참여한다. 뒷담화를 통해 그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시도다. 조금 더 대담한 차원에 들어서 말과 행동으로 갈등을 일으킨다. 계속해서 언쟁을 벌이고 그를 회사에서 쫓아내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이때 직장상사에 대한 증오심은 그를 살해하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갖게 한다.


  문제는 이런 일에 집착하는 본인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 증오심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더 악화시킨다. 분노와 적개심은 직장 상사를 힘들게도 하지만 정작 본인을 더 힘들고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인스타에 등장하는 셀럽들은 보통 사람들이 갖기 힘든 고가의 구하기 힘든 명품들을 뽐낸다. 그들은 세상 행복한 존재로 보인다. 그들이 가진 명품들이 행복의 이유라 결론을 내린다. 그 명품들 중 경제적으로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살 수 있는 것을 구입한다. 잠시 행복한 듯 착각한다. 하지만 그 착각은 금새 시들해진다. 더 비싼 명품들에 대한 욕망, 그 명품들을 소유하지 못했다는 상실감이 내 삶에 불만을 가져온다. 자신의 몇 년 치 연봉으로도 살 수 없는 명품들을 손에 넣을 방법은 없다. 결국 자신은 '이번 생에는 실패한 인생'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현대인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 불행하게 살아간다. 분노하고 슬퍼하며 불행한 원인이 대부분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의 집착'에서 비롯된다. 이런 상황에 대한 해법을 바로 스토아철학이 제시한다. 사람들이 스토아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는 대표적인 이유다. 




  『불안을 이기는 철학』(Reasons not to worry)의 저자 브리지드 딜레이니는 철학자가 아니다. [가디언]의 기자이자 칼럼리스트다. 영국의 한 대학에서 일반인 7천명을 대상으로 스토아철학의 원리대로 생활하게 한 후 그 변화를 확인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실험결과 부정적인 감정이 줄어들고 삶의 만족도가 증가했다. 딜레이니는 이 실험에 대한 칼럼을 쓰기 위해 본인도 실험 참가자처럼 일주일을 생활한다. 이것이 저자가 스토아철학을 처음 만난 계기가 된다.


  이후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인간의 통제력이 얼마나 제한적인가를 깨닫게 했다. 저자 역시 코로나 봉쇄조치 속 무력한 자신을 발견하며 스토아철학을 다시 떠올린다. 그리고 스토아철학을 자기 삶에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노력의 결과물이다. 


  스토아철학을 쉽게 풀어서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책들이 많다. 이런 책들은 그 내용상 차별화된 내용을 찾기 어렵다. 스토아철학이 단순명료한 주요 상식적 처방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기 때문이다. 2권 정도 읽으면 노트 한 쪽에 정리할 수 있을 정도다. 문제는 이런 원리를 삶에 어떻게 적용하여 내 것으로 만드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들이 원리를 적용하는 부분에서 재미가 크게 반감된다. 모든 '워크북'(Workbook)이 그러하듯 깊이나 재미를 기대하기 어렵다. 독서에서 중요한 문학적 경험, 감동을 얻을 수 없다. 스토아적 원리를 적용할 삶이라는 상황이 너무나 다양하고 변수가 많아 책에서 제시하는 상황을 연습하더라도 


  실제 독자의 삶에 적용하기에는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난 후 공허해지거나 며칠 지나고 나면 삶에 아무런 변화를 발견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런데 『불안을 이기는 철학』은 워크북이 아니라 저자가 스토아철학을 삶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과 시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속에 문학적인 재미와 감동을 담아낸다. 몇 가지 안 되는 스토아철학적 처방을 저자 자신의 다양한 삶의 상황에 어떻게 적용했는가를 소설처럼 생생하고 재미있게 보여준다. 다른 스토아철학 개론서에 비해 훨씬 흡입력이 있고 삶을 실제로 변화시키는 힘이 크다.


  '통제의 이분법'은 에픽테토스가 쓴 『엥케이리디온』  의 다음 구절에서 그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

"세상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일도 있고 통제할 수 없는 일도 있다. 통제할 수 있는 건 우리의 의견과 추구하는 가치, 욕망과 혐오다. 하지만 신체와 재산, 명성은 통제할 수 없다. 한마디로, 우리의 행동 외에 모든 것은 통제할 수 없다."


  이렇게 보면 우리 맘대로 통제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다. 이런 삶의 진실을 발견하면 비참해지는 것 아닌가?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내게 무슨 도움이 될까? 에픽테투스는 이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은 나의 의지로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걱정을 멈추는 것이다."




  이런 결론을 이해하려면 설명이 더 필요하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에 대한 두려움, 걱정, 슬픔, 불만족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인데도 그것을 내 맘대로 하고 싶은 욕망이 나를 불행하게 한다. 그런 잘못된 욕망을 없애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 왜냐하면 할 수 없는 일에 집착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어리석음을 피하고,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직장 상사의 예를 들어보자. 그 권위를 도무지 인정할 수 없는 무능하고 성격 나쁜 상사가 있다. 사사건건 마음에 들지 않고 나와 부딪친다. 알량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무조건 찍어누르려고 하지만 내겐 그에 대응할 특별한 무기가 없다. 그런 그를 대하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 이런 지독한 직장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가 사라지는 것이다. 최소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착하고 훌륭한 인간'으로 바뀌면 해결된다.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도 나는 그의 존재를 부정하려 한다. 그를 없애버리거나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려는 불가능한 욕망에 집착한다. 그건 내 능력밖의 일인데도 집착한다. 그런 집착이 가져오는 부정적인 화살은 결국 나 자신을 향해 날아온다. 나의 몸과 마음은 그 화살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야 내가 살 수 있다. 불행에서 벗어나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내가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건 나의 성품, 반응 및 행동, 타인을 대하는 방식이다. 직장 상사가 제 아무리 꼴통과 같이 굴어도 무시해보자. 대신 그로 인해 나의 성품을 망치는 말과 행동을 삼가하자. 그가 무슨 말과 행동을 해도 화를 내거나 주먹으로 폭행하거나 욕하지는 말자. 그래 봐야 후회나 처벌밖에 내겐 남는 게 없다. 그로 인해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내 소중한 가족이나 좋은 동료들에게 화를 내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자. 이 모든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 즉 내 통제 안에 있는 일들이다. 내 불행의 원인인 직장 상사에 대해서 최대한 신경을 꺼 버리고 내가 하는 소중한 일과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자. 이렇게 할 때 나는 직장 상사로 인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내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들 중 부자가 되었거나 빠른 승진으로 출세한 친구들을 만났다고 하자.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어 유명해진 친구도 있다. 그런 친구들과 비교해 나 자신은 초라하기만 하다. 그 사실에 나는 불행해진다. 


  스토아철학자들은 이런 불행의 원인들을 '선호하는 무심'의 영역으로 몰아낸다. 부, 건강, 평판 등과 같은 가치를 가진 것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얻고 싶어하는 것이다. 즉 선호하여 얻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선호의 대상들은 내가 얻고 싶다고 얻을 수 있는 것, 즉 내 통제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대상들을 가진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교하고 얻고 싶어하는 마음을 없애야 한다. 다시 말해 '무심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선호하지 않는 무심'의 영역이 있다. 죽음, 질병, 고통, 추악함, 빈곤, 부정적 평판, 별 볼 일 없는 집안 출신 등이다. 이런 것에 신경을 쓰는 것도 불행의 원인이다. 누군가 나를 비난하며 내 사회적 평판을 깍아내리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내가 쓴 글에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다. 이들에 대해 너무 신경을 쓰면 결국 나만 손해다. 그들은 내가 원한다고 악플을 멈출 사람들이 아니다. 질병은 어떤가? 내가 신경을 쓴다고 질병을 완벽하게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즉 내 통제 밖에 있는 일들이다. 이런 일에도 '무심해야 한다.'


  얼마 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책 제목이 '신경 끄기의 기술'이었다. 스토아철학의 '무심하기'가 바로 이 기술과 같다.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 신경을 끄면 인생의 많은 일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이러한 신경쓰기의 기술이 삶의 질병을 없애는 기술이라면, 현재 나와 내 삶을 긍정하도록 만드는 기술이 있다. 바로 '부정적 시각화'(negative visulization)다. 이는 아주 간단하게 말해 '가장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보는 방법'이다. 


  이 책의 저자는 시드니의 항구 근처에 아파트를 얻었다. 처음 아파트로 이사한 후 정말 행복해한다. 하지만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의 집에 방문하며 처음의 행복은 사라진다. 자신의 집보다 전망이 좋아 가리는 것 없이 항구가 보이는 이웃의 집을 다녀와 앞 건물이 가려 전망이 좋지 않은 자신의 집이 싫어진다. 또 다른 이웃의 집은 평수가 훨씬 넓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집이 너무 비좁게만 느껴진다. 이렇듯 비교는 자신이 현재 가진 것에 불만을 가지게 만든다. 


  이때 저자가 사용한 방법이 바로 부정적 시각화다. 저자는 오래전 더 가난할 때 살았던 낡고 좁고 불편한 집을 떠올렸다. 자신이 아직도 그런 집에 살고 있는 모습을 머리 속으로 그려본다. 그러자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가 얼마다 더 넓고 쾌적하고 훌륭한지 깨닫게 된다. 불만은 만족과 감사로 바뀐다.


  이렇듯 현재 내가 가진 것, 내가 처한 상황, 주변 사람들이 다 잃어버리는 부정적인 상상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런 부정적 시각화는 '지금, 여기'를 감사와 행복의 이유로 만들어준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만족하고, 더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저자는 스토아 철학의 간단명료한 이런 행복의 원리들을 자기 삶 구석구석에 적용한다. 운전을 하다 불쑥 끼어드는 다른 운전자에 대한 분노, 인스타나 트위터와 같은 SNS에서 마주치는 가짜 뉴스와 악플, 폭식과 음주, 포모증후군, 막연한 불안감과 같이 현대인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문제들을 다룬다. 자신이 이런 문제들을 스토아철학을 어떻게 적용하여 해결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에 대처하는 법,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도 안내한다.


  책의 표지에 있는 문구다. 인정, 사랑, 성공, 성취감은 현대인들이 소유하고 싶은 최고의 가치들이다. 이런 가치들을 얻기 위해 욕망하나 얻지 못할까 불안해한다. 그런 불안이 모든 불행의 원인이다. 


이 책은 그 불행을 진면목을 우리에게 폭로하여 보여준다. 그리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비결을 제시한다. 그러나 주의할 것이 있다. 이 비결을 아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변화와 해결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에 대한 저자의 에필로그를 소개하며 서평을 마친다.


"행복은 근육 운동과 같다."


"지난 몇 년 동안 스토아 철학을 실천하면서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고 나니 진짜 어려운 부분이 시작됐다. 스토아 철학은 매일 연습하는 철학이다. 종교에 헌신하듯 몸과 마음을 다해 실천해야 한다. 마음의 근육을 튼튼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다. 몇 달이 지나도록 스토아 철학에 관한 글을 읽지 않았거나 앤드루와 함께 스토아 산책 일정을 잡지 못했다면, 스토아 철학은 내 손에서 미끄러져 나가고 나는 과거의 습관과 패턴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에 조마조마하면서 평온함을 잃고 과거의 저점으로 되돌아간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높은 곳만 향해 달려갔을 것이다. ... 그리고 결국엔 스토아 철학을 통해 배운 모든 것을 잊어버렸을 것이다."(3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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