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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뇌르 Aug 19. 2024

행복이 오길 마냥 기다리다 늙어버리겠어

은행원으로 일하던 때의 이야기다. 오전 8시까지 은행 지점으로 출근해 미처 어제 다 보지 못한 밀린 서류 일을 보다 9시 30분이 되면 영업점 셔터문이 올라간다. 드드득하며 올라가는 셔터문 소리를 무구 소리 삼아 나는 그날 하루 일정을 되뇌었다. 오늘 어떤 고객이 오기로 했지, 늘 이자연체로 신용등급이 떨어진 차주 대출 본부 승인은 올렸던가, 오늘 대출 연장 서류는 다 받아놨던가, 오늘은 세금 납부 만기일인가 아닌가. 아마 그날이 행운이 따를지 점치는 마음 반 행운을 기원했다는 마음 반이었다. 제발 내가 그날의 운수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까다롭고 어려운 업무를 보러 오는 고객이 없길, 진상 부리는 고객이 나를 찾아오지 않길, 그날의 시재가 딱 맞아떨어져 늦게 퇴근하는 일이 없길. 그렇게 사사롭고 구체적인 행운을 빌며 행복이 나의 하루에 강림하길 바랐던 것 같다.


그렇게 행운이 따르기를, 행복이 찾아오기를 빌었지만 어떤 날은 희대의 진상 손님을 만나거나, 또 어떤 날은 시재가 맞지 않아 밤늦도록 야근하거나 대출서류가 미비해 머리를 쥐어뜯는 날들이었다. 매번 행운을 기원하지만 불행이 지긋지긋하리만큼 따라 푸닥거리굿이라도 하고 싶다 생각하던 나날 중 이렇게 행복이 나에게로 오기를 기다리다간 늙어 할머니가 돼버리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제 행복을 기다리지 말고 행복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생각에 꽂힌 것은, 나의 실수로 격노하는 고객의 고함 소리를 들으며 내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던 날이었다. 이렇게 불행에 듬뿍 적셔진 채로 행복을 마냥 기다리기만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용기를 그러모아야 했지만 회사를 그만두었고 행복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이 늘 행복했던 것은 아니나, 덜 불행한 것은 확실했다.


지금 나는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 중 어디쯤 와 있을까? 그렇게 바랐던 번역가로 데뷔했는데, 이건 내가 진짜 바랐던 삶은 아닌 것 같다. 나의 자리를 가늠해 보고 다시 행복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전에 행운과 행복을 좇는 과정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먼 훗날,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행복의 가능성을 좇아 나선 내가 혹시라도 다시 불행해졌을 때, 불행인 줄 알았던 과거가 사실 행복이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때 이 기록들을 펼쳐보려고 한다. 그리고 행복이 오기를 기다릴지, 행복을 좇아 나설지 고민하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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