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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뇌르 Aug 26. 2024

억대 연봉자에서 경단녀가 되고 난 뒤의 변화 2

아이가 영어 놀이학교를 그만둔 후 국공립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금전적인 여유가 생겼다. 미술학원이나 피아노 학원, 태권도장 등 남들이 다 다니는 학원을 보내볼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린이집에서 유아체육, 유아미술, 코앤코 음악 등의 수업을 방과 후활동으로 하고 있어 보낼까 말까 고민만 하다가 결국 우리 아이들은 학원을 전혀 다니지 않은 채로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사실 여러 학원에 상담 전화를 돌리고 샘플 수업도 들어봤지만 꼭 보내고 싶은 곳을 발견했던 게 학원을 보내지 않은 가장 큰 이유다. 게다가 어린이집을 졸업하기 1~2년 전부터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난리라 어린이집도 등원하지 않고 가정보육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1학년 교과활동 중에 그림 그리기, 만들기와 같은 활동이 많아 미술학원 정도는 7세 때부터 보냈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보내도 괜찮았다. 전혀 늦지 않다.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미술학원에 1년 정도 보내고 관내 그림 그리기 대회에 입상한 걸 보면 미술학원에 얼마나 오래 다녔는지보다 아이의 관심, 그리고 엄마의 관심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어린이집에 10시에 등원해서 3~4시 사이에 하원했는데,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이와 가장 많이 한 것이 바로 그림책 읽기다. 개인적으로 그림책을 좋아해서 아이에게도 그림책 읽는 재미와 즐거움을 일찍부터 일깨워주고 싶었다. 놀이학교를 그만두기 전부터도 책 사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는데, 놀이학교를 그만두고 나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다양한 책을 구입해 책장을 채우기 시작했다. 책을 사서 책장을 채우는 것은 나에게 큰 즐거움을 주었지만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은 나름 노력을 해야 하는 일이었다. 집안일을 하다 보면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 매일매일 잊지 않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싶어 블로그에 독서 인증을 하기 시작했다. 남는 시간에는 나만을 위한 독서를 하고 짧은 감상을 남기기도 했다.


이웃도 별로 없고 누가 찾아오는 블로그가 아니었지만 책 표지 사진부터 시작해 책의 내용과 감상까지 정성껏 작성했다. 당시 포스팅을 펼쳐보니 <수박씨를 삼켰어!>를 하루에 20번도 넘게 읽으며 아이와 함께 깔깔 웃으며 여름을 시원하게 났고, <가을 열매는 맛있어>와 <가을 나뭇잎>을 읽으며 직접 단풍 구경을 가지 못해도 가을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어들 수 있었다. 아이가 감기에 걸려 열이 나고 보챌  때도 그런 그림책들이 위안을 주던 때였다.


신용카드, 예금, 보험 등 창구에서 얼마나 많은 실적을 냈는지 지역본부별, 전국별로 순위를 매기며 매일 피 터지는 경쟁 속에서 도파민 중독자 같던 삶을 살던 내가 아이를 키우느라 소아과 진료를 보는 일 외엔 늘 집에만 있는 갑갑한 삶은 너무 낯설었다. 아이와 그림책,  일기장처럼 쓰던 블로그가 나에게 전부였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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