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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뇌르 Aug 31. 2024

친절하고 정중한 엄마가 되는 법

성공적인 홈스쿨링의 비결

초등학교 저학년 기준 내가 사는 지역의 영어 학원 평균 수강료는 30만 원, 수학 학원은 20만 원, 독서 논술 교실은 10만 원 정도로 책정되어 있다. 뜨악할 정도로 비싼 것 같지만 수도권으로 가면 수강료는 더 올라간다. 여기에 피아노 학원, 미술 학원, 태권도나 줄넘기 같은 각종 운동 학원, 요즘 유행하는 로봇코딩학원까지 더하면 아이 1명당 매월 학원비가 100만 원이 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 집은 아이가 셋이니, 학원비만 300만 원이다! 300만 원이라니, 나의 퇴사와 함께 우리 집 수입원이 50% 이상 줄어들었으니 어림없는 금액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사교육이 아닌 "홈스쿨링"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아이들은 피아노 학원, 수영, 미술 학원을 다니고 있고, 영어와 수학은 홈스쿨링 중이다. 영어와 수학 학원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엄마와 함께 공부하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긴 했지만 내 능력이 허락하는 한에서(피아노, 미술, 수영은 능력이 없어서 못 가르친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현장에 함께 있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루 세끼 밥 잘 챙겨 먹이는 엄마 노릇도 힘들었지만 아이들의 공부를 도와주는 일은 정말 못할 노릇이었다. 꼼꼼히 보지 않아 덧셈 받아올림이나 빼기 받아내림을 자꾸만 틀릴 때는 내가 감내할 수 없을 만큼의 분노가 일었다. 아이를 가르치다 지치고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민 날 밤엔 캔맥주를 따지 않으면 진정되지 않을 정도였다. 아이들은 어땠을까. 걸핏하면 화내는 엄마 때문에 우는 날도 있었으니 아마 공부가 점점 재미없어졌을 것이다.


나는 정말 불친절한 엄마 선생님이었다. 이러다간 아이와의 관계마저 틀어지겠다 싶어 고민했다. 하지만 아이의 어이없는 실수는 화내지 않겠다고 굳게 한 다짐을 쉽게 허물어버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불친절한 선생님이 운영하는 공부방에 보내고 싶은 엄마가 있을까? 공부방에 공부하러 온 아이를 울리다니, 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칠 것이고 아동 학대로 신고당할 수도 있다. 그러다 문득 소설 <가녀장의 시대>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이슬아 작가님이 마감과 나 자신 사이의 주선자로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신을 소개하던 장면을.



"마감과 나 자신의 사이가 나쁘지 않도록 조율해야 돼. 마감이 있고 내가 있으면 나는 둘 사이의 주선자야. 주선자로서...... 나에게 마감을 소개하고, 마감에게 나를 소개하는 거지." (...)

"마감 선생님, 이쪽은 이슬아 작가예요. 실력과 체력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애니까 잘 봐주세요...... 이슬아 작가님, 이쪽은 마감 선생님이십니다. 굉장히 엄격한 분이시니까 시간 엄수 부탁드려요. 그럼 두 분...... 오늘 자정까지 좋은 시간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복희는 익숙하고도 낯선 딸의 얼굴을 골똘히 바라본다.

<가녀장의 시대> p. 285~286



욕실로 들어가 찬물로 세수를 한 다음 거울 속 나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말을 건넸다.

"원장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삼 남매네 엄마예요. 저희 아이들 집중력이 좀 부족하지만 잘 좀 부탁드릴게요.... 에이, 걱정하지 마세요. 요즘 아이들이 다 그래요. 그래도 연산 실수 같은 건 학년이 올라가면서 더 나아지니까요. 우리 아이들 수학 영어는 제가 책임지고 끌고 갈 테니 믿어 주세요."라고 말하는 나의 얼굴이 익숙하고도 낯설었다.  


홈스쿨링을 하겠다 마음을 먹은 이상 나는 우리 집 공부방의 원장인 동시에 공부방에 매달 원비를 내는 엄마인 셈이다. "선생님, 제발 친절하고 정중한 선생님이 되어 주세요." 나는 우리 집 공부방의 원장이니 공부방에 등록한 유일한 학생인 내 아이들에게 더 친절하고 정중할 필요가 있었다. 실제 수강료를 지급하지 않으니 현금의 유출과 유입은 일어나지 않지만 나는 나에게 수강료를 지급하고 수취하는 급자인 동시에 소비자였다. 나는 매달 100만 원을 쓰는 아이 엄마이자 그 돈을 받는 공부방의 원장이다. 이 아이들은 내 밥줄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 밥줄(?)들에게 더 정중하고 친절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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