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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쯔잉 Mar 17. 2022

침몰 가족

정은문고 서평


“나는 쓰치를 낳고 싶어서 낳았습니다. 집에 틀어박혀 종일 가족만 생각하느라 타인과 아무런 교류도 없이 살다가 아이는 물론 나 자신까지 잃어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90년대 도쿄, 비혼의 싱글맘이 돌린 전단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 쓰치의 엄마는 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 재밌는 사람이 재밌는 사람을 데려오던 오카 화랑으로부터 힌트를 얻어 공동 육아를 제안한다. 마침 공교롭게 옴 진리교의 테러가 발생한 탓에 이상한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셰어하우스의 개념조차 없던 시절, <침몰가족>이 탄생한다. 점차 이혼 가정이 늘어나고 가족 간의 유대가 희미해지던 세태를 개탄하며 한 정치인이 "이대로 가다가 일본이 침몰한다."고 말한 것을 두고 이들 스스로 자신을 <침몰가족>이라 칭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들의 돌봄을 받고 성장한 94년생 가노 쓰치는 대학 졸업과제로 자신의 유년기를 추적한 독립영화  <침몰 가족>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공동 육아에 참여했던 어른들을 찾아가 인터뷰한 내용을 책으로 기록한다. 


가노와 그의 엄마는 <침몰 가족>이 거창한 사회운동으로 과대해석되는 것을 경계하며 “자란 환경과 지금의 자신을 지나치게 연관 지으면 어딘가 괴로워진다. 나라는 사람이 침몰 가족 하나로만 완성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방식의 육아는 누구에게도 얽매이고 싶지 않은 비혼의 싱글맘에게 단순히 생활의 한 방편이었을 뿐이다.


이 책은 혈연을 앞세워 옭아매기보다는 서로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는 관계, 그 관계의 진정성에 관해 말한다.


전단지 문구처럼 아이는 낳고 싶었지만 아이를 매개로 누구와도 종속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던 가노의 엄마에게 어쩌면 개인의 침몰이야말로 가족의 침몰 이전에 더더욱 피부에 와닿는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무작정 육아에 내몰린 여성들 중에 무한한 모성이 샘솟아서 너무나 행복했다고 말하는 경우를 본 적이 거의 없다. 나 역시 저녁 무렵 잠투정하는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몇 번이고 같은 골목을 맴돌았던 쓸쓸한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따스한 조명이 새어나오는 카페 유리창 안에서 대화를 나누며 즐겁게 웃고 있던 사람들을 쓸쓸하게 바라보던 나를 바라보던 또하나의 내가 있었다. 생애 가장 잊을 수 없는 추억 하나를 골라야만 사후 세계로 떠날 수 있는  일본 영화 <원더풀 라이프>처럼 가장 쓸쓸했던 한 순간을 고르라면 주저없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완숙한 활기와 정점에 이른 자아로 인해 어느 때보다 사회적 욕구가 높은 30대에 숨통 하나 틔울 수 없는 육아의 터널을 지나는 여성들의 심리적 단절은 상상외로 크다. 


<침몰 가족>이라는 육아 형태는 그런 이들에게 잠시나마 밖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되어주고, 한 사람에게 기대고 한 사람에게서 상처받는 것이 아니라 부모나 자녀 모두 정서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에 관한 다소 과감한 시도였다고 본다. 


어쨋든 침몰하는 배 안에서는 누구도 다른 누구를 도울 수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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