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디터람스 리뷰
“무능력해 보여서 마음이 좋지 않아요.”라고 말하며 낙담하는 후배가 있었다. 한 직장에서 12년째 근무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 후배는 내가 경험한 사람들 중 꽤 기특하고 우수한 사람이었다. 후배가 자신을 무능력자라고 판단하는 기준은 단순했다. 스스로 실수를 인정할 수 없어서였다. 그런 그에게, 능력은 처음부터 실수를 안 하는 것도 있지만, 실수를 발견하고 나서 수습하고 수정하는 과정, 실수를 인정하는 과정에도 있는 것 같다는 조언을 건넸다.
꽤 멋진 조언을 한 나 자신에게 반했다.
내 조언에 감화된 그녀의 표정도 좋았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나 또한 참 나 자신을 무능력한 사람으로 라벨링을 해오며 직장에서 버텼기 때문이다. 나는 다소 아쉬운 일머리로 실수가 많은 사람이었고, 다만 실수가 많은 데 비하여 선배와 상사들로부터는 곧잘 넘어가거나 좋은 피드백을 받았었는데,
나는 늘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기특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직장 내 좋은 사람이라는 이상형을 설정해 두고, 그 이상형에 스스로를 맞추며 비슷해지는 나 자신에게 안도했고, 왠지 벗어나면 자책을 했다. 늘 친절하고 배려하며 능력도 있어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길 바랐다.
나는 실수가 있던 날에는 그걸 만회하기 위해 내가 가진 최대치의 원료를 돌려 팀에 공헌했다. 할 수 있는 데 까지는 내가 하나라도 더 하려고 했고, 타인의 수고했다, 고맙다는 말은 내게 괴로운 양분이었다.
팀원들과 큰 분란 없이 순조로운 하루를 보내는 것에 만족했고, 자연히 원료가 떨어져 사리사욕에는 심드렁했다. 엄밀히 말하면 내 사리사욕은 본래 그 의미와는 결이 좀 달랐다.
직장에서 On이 되며 좋은 사람이지만 Off일 때는 많이 피곤한 사람
내 빈약한 사리사욕 덕분에 힘이 되는 좋은 벗들이 곁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만족스럽지만, 타인의 인정과 감사에 힘을 내는 나 자신은 아무래도 과하고 부담스럽다. 이대로 선임이, 이대로 마흔이 될 수는 없었기에
덜어내고자
영화 <디터람스>이다.
디터람스
미국, 다큐멘터리
2019.08, 79분
산업디자인하면 우리에겐 한입 베어 문 애플이 주는 영감이 많지만, 이전으로 조금 더 시야를 돌리면 생활가전과 가구디자인, 나아가 산업디자인의 개념을 바꾼 디자이너, 브라운 사의 디자이너 디터 람스가 있다.
원칙적이고 유연한
덜어내지만 더 나은
좋은 사람들과 일하며 인간을 이롭게 하는
디터 람스의 디자인 철학은 곧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닮았다.
디터 람스가 가전회사인 브라운 사에서 옮겨 건축사무소에도 소속된 적이 있는데, 그가 활동하던 1950년대 말과 1960년대는 세상의 발전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주거공간이 효율적으로 변화해야 했던 시기이기도 했고, 효율이란 한정된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디터람스는 이 공공아파트라는 것에 자신의 디자인을 접목하고 삶의 태도를 더욱 견고하게 끌고 나가게 되는데, 그의 가구 디자인과 비평 감각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지금도 인테리어 플랫폼에서 여전히 유행하는 비초에 의자와 시스템 모듈선반은 디터 람스의 것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모자라면 붙여 쓰고, 과하면 빼서 쓰는 부품조립형식의 모듈을 좋아한 것 같다.
브라운을 떠올리면 우리에게 느껴지는 심플한 느낌의 디자인 대부분은 이 시기에 고안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힙한 노인.
내가 그에게서 얻은 삶의 기조는
기존의 것을 가지고 더 낫게 한다는 점과
좋은 사람들과 일한다는 것이다
디터 람스는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한 사람이지만,
그의 디자인의 출발은 기존의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데 있었는데 이것이 결국 미래 자연과 인류를 위하는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비교적 최신 슬로건인 지속 가능한.
이것을 디터 람스는 50여 년 전에 고민했던 것이다.
자신의 철학을 좋은 사람들과 구현하며 모두를 이롭게 한 디자이너. 꼭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리라 다짐하지 않아도 그의 취향과 철학이 자연히 모두의 영감이 된, 그의 디자인 10계명은 디자인이라는 글자 대신 자신의 직업을 넣어도 좋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