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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Mar 21. 2020

휴지기

겨울을 지나 봄이 왔음에도 일상이 코로나19로 꽁꽁 얼어붙어 있다. 세상 어느 곳에 가야 봄을 찾을 수 있을까 휴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과수원 길을 지나 모악산을 매봉길로 오르려니 주차장은 차량으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모두 나와 같은 마음으로 집을 나섰을 거란 생각에 어릴 적 소풍을 가서 하던 보물찾기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없는 곳에 가야 보물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비단길로 방향을 바꿨다.


6년 전 모악산 아래 둥지를 틀고 주로 매봉길을 따라 산행을 하곤 하였다. 매봉길은 능선에 오를 때까지만 조금 가파르고 일단 오르고 나면 능선을 따라 멀리까지 탁 트인 경치를 보며 거니는 맛이 일품이다. 그에 비해 비단길은 정상에 오를 때까지 산속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걷다보니 주변 경치보다는 산에 있는 나무와 풀, 꽃, 새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봄을 찾기에는 비단길이 제격이다 싶었다. 개울을 따라 동네를 지나다보면 신금마을에서 비단길 초입을 만나게 된다. 길을 따라 조금 오르다보니 두 갈래 길이 나오면서 한쪽 길엔 지주목에 팻말이 붙어 있었다. 휴식년이라 통행을 할 수 없다는 알림 문구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작년 한해는 오직 글 쓰는 재미에 푹 빠져 지냈다. 일 년이 되어 갈 무렵 브런치에서 북 출판 프로젝트가 공지 되었다. 맞선을 앞둔 총각처럼 가슴이 뛰고 설레기 시작했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초보가 고수들의 잔치인 프로젝트에 왜 설레고 떨리는지 부끄럽기까지 했다. 뭐든 시작하고 보는 천성을 핑계로 신청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출품작을 스스로 기획하고 만들면서 행복했고 대견했다. 작가가 된 것 같은 착각의 시간도 즐겁기만 했다. 기존에 썼던 작품들 중에 애정이 가는 몇 편을 골라 목차를 정하고 책 표지는 아내가 정성스레 그린 보태니컬 작품으로 편집하였다. 드디어 생애 첫 수필집 “50, 인생이 설레기 시작했다”를 출간하였다. 비록 정식 인쇄물은 아니지만 한권의 책을 완성해서 세상에 내놓는다는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막상 출품작을 보니 처음 기대와는 달리 부족한 면만 보이고 자신감도 위축되어 고민이 깊어갔다. 그래도 평가를 받아보자는 생각에 마감일을 며칠 앞두고 졸작을 출품했다.


나의 글쓰기는 휴지기에 들어갔다. 선정이 되리라 기대를 한 것도 아닌데 발표 일까지 글이 써지지 않았다. 매주 한편의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이었는지, 심혈을 기울여 뭔가를 완성하고 나서 오는 공허함과 허탈감 때문이었는지, 수험생이 발표를 기다리는 초조함 때문이었는지 그 이유는 딱히 모르겠다. 한 해가 저무는 마지막 날에 10편의 다양한 작품들이 수상작으로 선정이 되었다. 그 후론 노트북을 쉽게 열지 못하였다. 자꾸 눈에 띄는 노트북을 외면하며 쓰고 싶다는 욕구를 떨치지 못해 아파하면서도 선뜻 다시 글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자의든 타의든 휴지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산에 오르다보면 휴식년이란 문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람들로 인해 부러지고 밟히고 파헤쳐져 상처투성인 자연이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휴식년이 끝난 길을 다시 걷다보면 이 길의 모습이 원래의 이런 모습이었나 싶을 정도로 활기차고 생동감이 넘친다. 울창한 나무와 형형 색색한 꽃, 이름 모를 수많은 풀잎, 청명한 산새들의 노래 소리에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쉼이 생명을 다시 불어 넣어 준 것이다. 휴식이라 마냥 쉬지 않고 새 생명을 싹 틔우기 위해 얼마나 바삐 움직이며 노력했을지 생각하니 대견하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처음 글을 쓰면 한동안은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낸다고 한다. 한참을 쓰다보면 글감이 소진되면서 뭘 써야 할지 막막해지는 시기가 온다고 했다. 그때는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다고 했다. 어린 시절의 추억, 부모님에 대한 회상, 알콩달콩 가족이야기로 글을 채우다보니 나의 삶이 형상화되었다. 일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뭔가 부족하고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쉼이 필요한 시간이 된 것이다. 쉬는 동안 다양한 작품들을 읽어보며 나의 글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다. 다른 분야의 작가도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나눠 보았다. 왜 글을 쓰는지, 앞으로 어떤 글을 쓸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다. 아직도 부족한 뭔가를 찾지는 못했지만 다시 쓰고 싶은 마음에 나의 휴지기를 일찍 마쳐야 할 것 같다.


산기슭의 바람이 아직 차다. 너무 일찍 얼굴을 내민 산수유와 진달래의 흔들리는 꽃잎이 안쓰럽고 반갑다. 보물을 찾은 것 같아 초등학생처럼 마냥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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