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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on Jul 26. 2024

마성의 중딩레즈_1

혼돈의 사춘기

중학교 1학년


고백을 하고는 친구가 덧붙여 말했다.

“지금 당장 답 안해도 돼, 3일 내로 문자로 알려줘”


친구는 말을 마치고 가방을 싸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나갔다.

엄마는 방으로 들어와 친구가 가는데 인사도 안하냐고 했지만, 내 귀에 그런 이야기가 들어올리 없었다.


그 친구는 원래 친했던 친구는 아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6학년 때도 같은 반이 되었었다. 그 무렵 친구들은 다들 휴대폰을 가진지 2~3년 정도 되었지만 간간히 없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나와 그 친구였다.


휴대폰을 비슷한 시기에 사게된 우리는 매일 문자를 했다. 쇼 곱하기 쇼가 티비에 나오며 알이 부족했던 시기였지만 알이 없고 전화가 안되면 인터넷 전화를 엄마가 잠든 후 챙겨와 이불을 덮고 밤새 통화했다. 그러다가 20만원 가까이 요금이 나오고 뒤지게 혼났지만, 그래도 했다. 나는 그게 으레 또래들의 당연한 친구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지내던 차에 작은 동네였던 우리는 같은 중학교 그것도 같은 반에 배정되었었다.


3일까지 고민할 것도 없었다. 나는 바로 친구에게 좋다고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그 친구를 좋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본능적으로 내가 이 고백을 거절하면 그 친구를 잃을거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친구를 잃고싶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6학년 때는 어떤 아이와 짝이 되고 싶어서 일기에 담임 선생님께 편지를 써서 짝이 된 적도 있었고, 중학교 1학년 때는 공부를 정말 잘하던 친구와 친해지고 싶어 장난을 계속 치기도 했다. 그 아이는 빨간 안경을 썼었는데, 너무 보고싶은 맘에 저녁 산책을 나가 그 친구가 사는 집 주변을 맴돌며 마주치진 않을까 경로를 계속 바꿨던 적도 있었다.


얼마나 강렬한 첫사랑이었는지, 숫자 기억을 정말 잘하는 나는 아직도 그 친구의 번호를 외우고 있다. 여즉 그 번호를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6학년 때 그 아이도, 중학교 1학년 때 빨간안경을 쓴 그 아이도 아니었지만 나는 '친한 친구'를 잃지 않고 싶은 마음에 승낙을 하고 연애를 시작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정확히 어떤 데이트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도보고, 카페에 가서 중학생에게는 비싼 파르페라는 것도 처음 먹어보고 그렇게 데이트를 했던 거 같다.

그렇게 약 3주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내 생일이 왔다.

중학생이었던 당시의 나는 플룻을 배웠는데, 플룻 학원에서 선생님이 그려놓으신 10개의 동그라미를 찍찍 그어가며 연습을 하고 있었다. 다른 앞 뒤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헤어지자는 내용의 문자를 받았다.

이유도 모르겠고, 그저 선생님께 아프다고 한 후 집에 돌아가 방문을 걸어잠그고 많이 울었다.

동생을 끌어안고 울기도 했던 거 같다.


헤어짐을 처음으로 겪어서, 친한 친구를 잃었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하필, 나는 그 친구와 사귀기 전 겨울 스키캠프를 함께 가기로 약속했고 신청해놓았었는데 그게 바로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였다.

그 친구와 마주쳐도 인사도 하지 못했었는데, 사실 캠프 가기 전날 초경이 터졌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든 건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중학교 2학년


내가 중학교 1학년 무렵, 한국은 2세대 아이돌의 쓰나미였다. (지금이 더..) 빅뱅, 원더걸스, 소녀시대, 동방신기, FTIsland, 소녀시대..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아이돌에는 하등 관심도 없다가 중학교 2학년 때 왠 솔로 가수에 빠졌다. 지금은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으로 남았지만. (현재 사회에서 매장? 당한 가수 중 하나..)


그 때는 휴대폰이 없었기에, 소위 덕질을 하기 위해서는 다음 카페 가입이 필수였다. 카페에서 공방(공개방송)에 가기 위해 선착순으로 댓글을 작성하고, 인원 수 내에 들면 가요 방송에 들어가 연예인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Latte는 인터넷을 통해 또래 친구를 만들고, 함께 공방에 가고는 했다.


나는 공방에 가기전 또래 친구 몇 명을 만들어 문자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경기도에 살고 있던 나는 그 경로를 통해 서울, 인천, 지방까지 다양한 지역에 있는 친구들을 사귀어 볼 수 있었다. 인천에 살던 어떤 아이와 문자를 주고 받던 중, 그 아이가 인천에 있는 모 여중에 다닌다는 것을 들었다.

나에게는 신기한 일이었는데, 신도시에 살던 나는 여중여고, 남중남고는 엄마 아빠 세대에만 있고 모두 공학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신도시는 모두 공학이었다.)


흥미로운 이야기에 그 친구에게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우린 연락을 지속해나갔다.

공방에 가서 만나고 안면을 트며 차차 전화도 하고, 공방이 없더라도 둘이 만나 놀기도 했다. 그렇게 작지만 마음이 생겨갔다. 다른 장면은 기억나지 않지만.. 학교 체육 시간에 다른 친구들이 배드민턴을 치고, 나는 벤치에 누워 운동장에 드리운 나무를 한참 바라보다가 그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가 널 좋아하는 것 같아, 우리 한번 만나볼래?"


답장이 온 건 약 10분 후였지만, 내게는 10시간과 같았다. 좋다는 답변이었고, 그렇게 우리는 연애를 시작했다.


사실 중학교 2학년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었겠는가. 그저 문자하고, 밤에 전화하고 한 달에 두어번 만나 캔모아에 가는 게 전부였다. 나는 경기도의 끝, 그 친구는 인천의 끝에 살았고 지금보다 지하철이 없어 서로를 만나기 위해서는 왕복으로 5시간 거리였지만, 주말에 아침부터 나가 밤에 들어오고는 했다.


그렇게 우리는 약 1년간의 연애를 하다 장거리에 지쳐 어느 순간부터 만나는 날들이 적어졌고, 

나는 이별을 전했다.


이 친구와 헤어진 게중학교 3학년이 되고 나서였는데 나는 중학교 2학년 1년동안 함께 다녔던 한 친구에게도 문자로 고백을 받았었는데 너무 내 스타일이 아니었고(..)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기도 해 고백을 거절했던 짧은 해프닝도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나는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친한 친구들은 단 한명도 같은 반이 되지 않았지만, 친구의 친구들이 있었고 나는 3명의 친구들과 무리를 이루어 놀았다. 그 3명 중 한명은 유독 하얗고 예쁜 친구였는데, 소문이 매우 좋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어떤 남자 아이와 오래 만났었는데, 복도에서 키스를 했다나.. 소위 좀 노는 친구들 중에 한명이었다고 생각해왔던 아이였다.


지내보니 그 친구는 예쁜 외모 탓에 주위의 시선과 시기 질투를 함께 받았었던 것 같다. 착하고, 쾌활했고, 나쁜 점을 딱히 찾지 못했다. 나는 그 3명과 문자를 하며 자주 놀았는데, 어쩌다보니 그 친구와 유독 가까워졌다. 어느 주말, 집에서 티비를 보며 문자를 주고 받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친구가 문자로 질문을 했다.


야, 너는 여자랑 여자가 만나는 거 어떻게 생각해?


어째 그 나이 그 시절은 다 레파토리가 비슷한 것인지. 단도직입적으로 날 좋아하냐고 물었고, 그렇다는 답문이 왔다. 나와 연애가 하고 싶다고. 집 앞으로 갈테니 잠깐 얼굴 보자고. 집 앞으로 나가니 그 친구가 있었다. 날 보며 웃었고, 나도 함께 웃었다. 그렇게 나는 중학교 3년 내내 공학에서 어쩌다보니 친구를 모두 홀린 마성의 레즈비언이 되었다.


같은 반이어서 좋았지만, 그렇기에 불편한 점도 많았다. 이 친구는 예뻤고, 하얀 탓에 인기도 많았는데 그래서 좋아하는 남자아이들이 많았다. 특히 매일같이 붙어다니다가 한 번 싸우기라도 하는 날에는 친구들이 우리 둘에게 와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했다. 진실은 말할 수 없었지만.


나를 만나며 그 친구는 2~3번의 고백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역시 사귀는 중 중학교 2학년 때 만났던 아이의 친구가 나에게 연락이 오기도 했고(술먹고 나 안데려오면 죽겠다고 했다며..) 다른 친구가 고백을 하기도 했다.  많이 붙어있는 만큼 우리는 많이 싸웠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나이때 풋풋한 연애를 했다.


내가 방송부였기 때문에 우리는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교 후 방송실으로 가 나는 컴퓨터를 하고, 그 친구는 청소를 하고 오기도 했고 이야기도 많이하고, 같이 컴퓨터로 웹툰과 네이트판을 보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우리는 서로 집에 데려다 주겠다며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서로의 집 앞을 오갔다. 중학교는 우리의 집 중앙에 있었는데, 내가 데려다 준다고 그 집 앞에 갔다가, 아쉽다고 다시 우리집 앞으로 갔다가, 다시 그 집 앞에 갔다가.. 그렇게 데려다준다는 핑계로 데이트를 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졸업을 목전에 두고 있었고, 평준화 지역이었던 나의 동네는 원하는 고등학교 지망을 작성하여 제출해야 했다. 당시 내 여자친구는 전문계(실업계) 어떤 학교에 입학하기로 했었고, 나는 인문계로 진학을 원했다. 우리 동네에는 인문계 고등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동네가 워낙 작아서 대부분 초-중-고를 같이 나오게 되는 구조였다. 하지만 나는 그 학교에 가고싶지 않았는데, 이유는 한가지였다. 바지를 입을 수 없다는 것.


내가 진학하고자 하는 고등학교의 기준은 딱 2가지였다.

첫번째, 여자도 바지를 입을 수 있을 것.

두번째, 남녀 합반이 아닐 것.


연애 이야기를 하다가 무심결에 지나쳤는데, 나는 중학교 2학년부터 교복 바지를 입었다.

지금이야 여자가 교복 바지 입는 게 왜..? 하겠지만.. 딱 15년 전만 하더라도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우리 중학교 역사상 최초로 바지 교복을 입은 여자였고 (물론 허락은 받았다) 그 때문에 별 이야기를 다 듣기도 했었다.


예전에 언급했듯 나는 치마가 싫었고, 어찌저찌 학교는 다녀야 하니 치마는 입었지만 대부분 체육복을 입고 생활하다가 결국 바지와 그냥 남학생용 교복을 입었다. (이로 인해 정말 수많은 오해를 받았고, 이건 다른 이야기에서 풀어봐야지)


우선 내가 갈 수 있는 고등학교 중, 여고는 없었다. 후보는 2개의 학교로 좁혀졌는데 남녀 분반을 운영하는 사립 고등학교 1학년 때만 남녀 분반으로 운영하는 공립 고등학교였다.


사립 고등학교는 집에서 그나마 가까웠지만 공립 고등학교는 내가 갈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제일 먼 학교였다.(버스타고 40분) 사립 고등학교는 어떤 종교가 엮여있기도 했고, 공부가 너무 빡세다고 소문이 자자해서 나는 가장 먼 공립 고등학교를 지망으로 써서 냈다. 그리고.. 사실 알았던 거 같다. 고등학생이 되면 당시의 여자친구가 멀어질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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