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더울 땐 아무것도 하기 싫다.
가만히 있어도 힘이 빠지고 땀이 줄줄 나는데 뭘 하나.. 힘들게....
그래도 요가를 한다.
왜냐?
요가원에 등록했으니까.
..는 농담이다.
성인이 되고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확실히 알게 된 진리는
무언가를 확. 실. 히 배우고 싶단 생각이 들면 돈을 써야 한다는 거다.
왜냐면 돈 버는 게 쉽지 않은 걸 아니까 열심히 배우게 된다.
그래서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돈을 지불하는 데 그 효과가 대단하다.
이 더운 날 요가원에 자발적으로 가는 것만 봐도 이미 입증된 효과다.
집에서 요가복으로 갈아입고 요가원을 가는 사이에 벌써 땀이 줄줄 난다.
이상하게도 올여름은 땀이 많이 나는데 요가를 해서 몸에 혈액순환이 잘 돼서 그런 건지 아님 날이 역대급으로 더워서인지... 아마도 두 개의 이유 다 해당될 것 같다.
아무튼 이런 이유도 있지만 이렇게 더운데도 요가를 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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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몸이 쉽게 열린다.
처음 요가를 배울 때 선생님께서 그러셨다.
요가는 쭈욱 늘지 않고 계단식으로 는다고.
한동안 정체 상태로 있다가 한 번 성장하고 또 정체 상태로 있다가 또 한 번 성장하는데 대부분 여름에 많이 성장한다고 하셨다.
왜냐면 몸이 쉽게 더워지니까 평소보다 아사나를 더 깊게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면 나도 모르게 한 단계 성장해 있을 거라고 하셨는데 그 말을 맹신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몸이 금방 더워지다 보니 평소보다 유연성이 필요한 동작을 평. 소. 보. 단 잘 접근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
두 번째 더 뿌듯하다.
내가 단순해서 그런가 더워서 땀 흘리는 것 빼고 내가 자발적으로 움직여서 땀이 나는 건 좀 뿌듯하다.
무언가 하고 있다는 게 확실히 느껴져서다.
내 인생은 내가 열심히 하려고, 잘하려고 아등바등해도 과정이나 결과가 내 마음처럼 되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요가는 아사나를 잘하든 말든 일단 내가 하고 있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어 뿌듯하다.
거기에 새로운 동작을 도전해 보고 실패하는 그 모든 과정도 뿌듯하다.
내가 시도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요가는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계속 시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안되던 동작이 마법처럼 되기도 한다.
내 몸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잠재력이 높은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대부분 선생님의 핸즈온에서 느낄 수 있다.
위의 그림은 받다코나사나 라고 나비 자세라고도 부른다.
두 손을 발 앞에서 깍지를 낀 상태로 가슴을 앞으로 밀면서 앞으로 내려가는 동작이다.
이마나 턱이 바닥에 안정적으로 닿고 여유가 있으면 두 손을 앞으로 쭉 뻗는 동작으로 이어진다.
이날은 팔을 쭉 뻗고 쉬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내 뒤로 오는 게 느껴졌다.
내 두 허벅지를 양옆으로 꾸욱 눌러주시면서 내 척추를 아래에서부터 위로 살짝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셨다.
... 기록하고 보니 선생님의 손길이 마치 꾹꾹 이해 주는 고양이의 손길 같았다.
조심스럽지만 확실한 가이드였다.
선생님이 핸즈온을 해주시는 덴 내 몸이 갈 수 있는 곳까지 알려주시는 거라 생각해 호흡에 집중하고 몸을 맡겼다.
그러자 내 몸이 조금씩 더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을 받았고 처음으로 내 가슴이 발에 닿았다.
지금까지 받다코나사나를 하고 앞으로 숙였을 때 이마나 턱이 바닥에 닿은 적은 있지만 가슴이 발에 닿은 적은 처음이어서 놀랐다.
내 몸은 오늘 새로운 지점에 닿았군 하는 뿌듯함이 들었다.
*
세 번째 개운하다.
이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확실히 더울 때 요가를 하면 몸이 더 열려서 그런지 더 개운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평소보다 비교적 안전하게 아사나에 더 깊이 도전할 수 있다 보니 기존에 요가할 때 보다 더 몸을 쓰게 된다.
그 결과로 근육통이 따르기도 하지만(난 이거 좋아한다)
몸을 확실히 움직여줘서 개운한 것도 있고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바쁘게 몸을 움직이다 보면 사바사나 할 때 깊은 이완이 찾아오며 요가가 끝났을 땐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끝나고 맥주 한 잔을 먹더라도 평소에 먹던 것보다 더 개운하다.
사실 요즘은 요가 끝나고 집에 와서 물만 마셔도 시원하다.
더워서 입맛 없고 뭘 하든 의욕이 없을 땐 요가를 하고 나면 머리나 몸이 한번 환기가 되는 느낌이라 의욕도 더 생기고 무엇보다 입맛이 확- 돈다.
특히 올여름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너무 더워서 노출 있는 옷을 입게 되는데 요가하고 나서 뭘 먹으면 먹을 때 죄책감도 좀 덜하다.
땀 흘렸는데 이 정도 보충해 주는 건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