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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평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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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Aug 22. 2022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구소희 씀

송경동 시집 / 창비 / 2022. 04.


  오래간만에 마음에 쏙 드는 제목을 가진 시집과 만났다.  김현수 선생님 페북에서 소개하신 걸 보고 바로 구입!!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제목에서 시인의 '화'가 느껴졌다. 시인은 무엇에, 왜 화가 났을까? 나는 왜 이 제목에 꽂힐까? 아마도 나에게도 뭔가 ‘화’가 있는 것일까? 책의 첫 장을 펼치자마자 떠오르는 사건(?)이 있었다.


  지난 3월부터 서울의 Y대학교 근무하는 청소 경비 노동자들이 임금인상과 샤워실 설치 등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캠퍼스에서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청소 경비 노동자들의 집회 소음으로 수업을 방해했다며 수업료와 정신적 손해배상, 그리고 정신과 치료비를 청구 그리고 업무방해죄로 형사고소까지  하였다. 기사를 보며 눈을 의심했다. 내가 그동안 대학생들은 사회에서 힘없는 자들의 권익을 대변하며 싸워온 이들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세상이 많이 변했던 모양이다. (이 소식을 들은  Y대 졸업생 법조인들이 청소 경비노동자들을 대신해 소송을 담당하여 최근 원고 청구 기각을 요청하는 답변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 잘 마무리도 되었다고 했다.) 백 번 양보해서 학생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어느 정도 불편한 마음이 들 수 있겠다 싶기는 하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수업을 들으려는데, 집회 소리가 방해가 되어 불편한 마음이 들 수는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그것이 고소까지 할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Y대 기사를 보며 몇 해 전(아마도 10년쯤 된 것 같다), 어느 교사 커뮤니티에서 수학여행에서 있었던 일이라며 한 교사가 올린 글을 읽은 적이 있던 것이 떠올랐다. 


  수학여행 마지막 날, 담임 선생님이  학생들 방을 점검했다. 방 한 군데서 아이들이 과자 부스러기와 쓰레기, 음료수를 바닥에 뿌려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았다고 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불러 타이르고 치우라고 했는데, 한 아이가


우리가 돈 내고 빌린 방인데 돈 받은 사람들이 치워야지요.


  라고  당당하게 말했다고 한다. 사건의 심각성을 느낀 선생님은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후 학부모 면담을 요청하였다.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들은 부모님은 ’ 우리 애가 무슨 잘못을 한 건지 모르겠다.’며 오히려 아이를 두둔했다고 했다. (응??)


  두 이야기 속에서 타인의 입장을 공감하지 못하는  공감 불능인 대한민국의 현실과 내 비용을 지불한다면 갑으로 행세하려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민낯을 다시금 느꼈다.. 내가 비용을 지불한다는 것은 그 재화를 구입하는 것이지 그것을 제공하는 사람의 인격까지 구입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나를 우위에 절대적인 존재로 여기고 타인을 서비스의 제공자 혹은 하나의 물체로 대상화하는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공감능력은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공감은 인지적인 영역인 동시에 정의적인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감받아본 경험 필요하고 후천적인 학습도 필요하다.  


  가정과 학교를 돌아보게 되었다. 요즘 대다수의 가정은 한두 명의  자녀를 애지 중지 키운다. 사회의 경쟁은 치열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아주 어린 나이부터 아이들은 학습 노동으로 내몰린다. 자신에 대해서 탐색하고 자신의 감각을 충분히 탐색하고 알아가기 전부터 아이들은 학습에 내몰린다. (혹은 스마트폰의 세계로 내몰린다.)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체험의 경험을 주지 않고 인지적 학습으로, 혹은 정 반대로 아예 무관심으로 스마트폰의 세계로 빠진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고분고분 순종하며, 혹은 반항하더라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이를 악물고 열심히 공부해 좋은 학업 성취를 보이는 아이들은,  그저 내 공부를 열심히 했을 뿐인데 '모범생'이 된다. (모두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학업 성취를 마치 아이의 전체적인 성장인 양  바라본다. 적절한 시기에 사람답게 살아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하여 머리만 크고 가슴은 빈약한 사람으로 만드는데 우리 어른들이 일조하고 있지 않은지, 혹여나도 그 머리만 큰 사람 중 하나는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이 글을 쓰면서 또 다른 기사를 접했다. 며칠 전  비행기에서 아기가 심하게 울자  


아기는 피해받으면 안 되고 어른은 피해받으면 되는 건가?? 
그럴 거면서  자식은 왜 낳아서 남한테 피해를 주냐고!


  는 막말을 퍼부었다는 내용이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공감'까지는 바라지도 않겠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해주자! 당신도 당신을 참아주던 많은 주위의 어른들이 있었다는 것을... 참아주고 기다려주는 존재, 그게 어른이다. 그걸 배워가는 것이 아이이고...  몸은 성인이나 타인의 미숙함을 특히 어린 존재들의 미숙함을 참아주지 못한다면, 온전한 성인이라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그 첫 장에 있는 송경동 시인의 시를 한 편을 발췌하고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청소노동자들의 선언

                                 송경동

우리는 당신들의 집과 건물이
깨끗하기를 바랍니다. 
그만큼
우리를 대하는 당신들의 인성도
깨끗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삶과 생활이
더 윤택하고 빛나길 바랍니다. 
그만큼 우리가 받아야 할 대우도 
환하고 기름지길 바랍니다. 
우리는 노예나 종이 아닙니다. 
당신과 나의 권리는 서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불의를 바르게 정돈하고
잘못된 구조와 모순을 뜯어고칠 일은
우리 모두의 일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쓸겠습니다. 
당신은 닦으십시오.
부디
우리가 치워야 할 쓰레기가
당신들이 아니길 바랍니다.  


  덧))) 청소 경비 노동자들이 요구한 것은 


  1) 시급 440원 인상

  2) 정년퇴직자 자리 충원

  3) 샤워실 설치였다. 


  이것이 대단히 무리한 요구였을까? 대한민국이 당연한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타인의 노동을 발판 삼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면 좋겠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은 내가 열심히 해서이고 그가 그렇게 사는 것은 그가 열심히 살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도 그 나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당신처럼... 내가 몸담고 있는 공간에 누군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면, 공감하고 지지해주기를....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이,  내 자녀가, 길에서 맞추지는 아이들이 그런 성인으로 커 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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