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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Feb 21. 2021

니클의 소년들

죽어간 니클의 소년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박미정 씀.

 이 소설은 미국의 감화원에서 일어난 학대와 그 학대에 용기 있게 맞선 흑인 소년들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엘우드는 극심한 인종차별 아래 살면서도 마틴 루서 킹의 사상을 자기 안에 품고 성장한다. 그는 일상의 차별과 모욕을 견디면서도 흑인만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만인을 위한 투쟁을 하고자 한다. 흑인이지만 품위를 잃지 않고, 끝없이 배우려 하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성실한 엘우드는 멜빈 그리그스 대학으로 가서 공부할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대학으로 가는 길에 차를 얻어 탔다가 억울하게 경찰에 체포된다. 자신의 무죄를 증명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니클로 보내진다. 니클은 인종차별, 인권유린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곳이다. 스펜서와 직원들은 유충부터 에이스까지 단계를 나누고, 화이트하우스라 불리는 처벌 장소를 이용해 아이들을 통제한다. 엘우드는 화장실에서 폭력을 목격하고, 그것을 말리다 화이트하우스에서 채찍질을 당한다. 니클의 관리인들은 거리낌 없이 극한의 폭력성과 잔인함을 표출한다. 올곧은 엘우드의 영혼이 니클을 견딜 수 있을까.  


‘니클에서 자행되는 만행에 지침이 되는 상위 원칙 같은 것은 없다는 가설. 상대가 누구든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악의가 있을 뿐이었다.’(p.111) 이 문장을 옮겨 적으면서 큰 두려움을 느꼈다.  니클 안에서나 밖에서나 인간의 계급을 나누고 차별하며, 나와 다른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의 욕망은 같다. 니클은 사회의 어둠을 집약해놓은 곳이며, 사회의 민낯이다. 백인과 흑인을 나누고, 강자가 약자를 향해 거침없이 폭력을 행사한다. 엘우드가 기절할 정도로 채찍질을 휘두르는 스펜서. 니클 밖에도 수많은 스펜서가 존재한다는 게 더 끔찍하다.   


 엘우드가 니클에서 만난 친구 잭 터너는 ‘법을 바꿀 수는 있지만,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는 바꿀 수 없다.’(p.137)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편견, 차별, 폭력 등을 규제하는 법은 수없이 많다. 있는 법으로도 모자라 매년 새로운 법을 또 만든다. 하지만 편견, 차별, 폭력은 여전히 존재한다. 사람이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짐 크로 법이 사라지고, 제도적으로 인종차별을 막아도 니클 안의 차별, 폭력은 없어지지 않는다. 스펜서로 대변되는 백인 어른이 아동과 흑인(사회적 약자)을 바라보는 시선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바뀌길 기다려야 할까?


  법이 마련되면 그것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이 바뀐다. 혹은 사람의 인식이 바뀌면서 새로운 제도나 법이 생겨나기도 한다. 무엇이 먼저인지 따지기는 어렵지만 실제적인 변화는 사람이 바뀔 때야 가능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니클의 아이들이 폭력으로부터 해방되려면 니클의 백인 어른들이 변하거나 아이들이 변해서 폭동을 일으켜야 한다. 니클 밖 사람들이 바뀌는 건 불가능한 걸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왜 부모들은 아이들을 돌보지 않았나? 그들이 아이들의 삶에 애정을 갖고, 책임감을 가졌다면 어땠을까? 이건 니클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약자의 문제이다.


  엘우드는 니클의 실상과 니클에서 자행되는 폭력을 폭로하는 쪽지를 쓴다. 그는 감사관들에게 그 쪽지를 전달하면 ‘니클이 없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법은 살아있고, 그 법이 니클 소년들을 구원할 거라 믿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 시대가 변했고 엘우드의 바람대로 니클은 사라졌고, 억울하게 죽은 소년들의 사연이 세상에 공개된다. 하지만 엘우드는 그 대가로 목숨을 잃는다. 엘우드와 터너와 함께 지냈던 하퍼의 총에 맞아 죽는다. 하퍼란 인물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 그는 니클에서 자라며 그 누구보다 니클의 폭력, 차별을 잘 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문제라 생각하지 못하고, 니클 체제의 일부로 산다. 결국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배운 방식으로 흑인 아이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이런 백인들이 대를 이어 흑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 의식을 유지한다 생각하니 끔찍하다. 단순히 법만 바뀌어서는 인종차별, 아동폭력, 소수자에 대한 인권 유린이 멈추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절망적인 생각에 사로잡힐 때 엘우드가 말한다. “이건 장애물 경주가 아니야. 장애물을 피해서 돌아갈 수가 없다고.”(p.218) 피해 갈 수 없다. 피해자들이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엘우드는 그렇게 했다. 그리고 이제 엘우드로 살던 터너가 세상 앞에 나가 니클의 흑인 소년이 어떻게 지냈는지 폭로할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용기 있는, 고귀한 영혼을 지닌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조금씩 나아져왔다. 엘우드의 죽음과 터너의 결단.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귀 기울여 듣는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그들의 희생과 결단이 헛되지 않도록 함께 힘을 모으고, 그들에게 지지한다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지금 세대에서 행해지는 폭력, 혐오, 차별이 다음 세대로 전해지도록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 법을 만들고,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나부터 변해야 한다. 


「니클의 소년들」은 미국 흑인 소년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여기 우리의 문제이다. 우리가 모른 척하는 니클들이 너무나 많고, 그곳에서 인권을 유린당하며 ‘평범한 삶’을 간절히 꿈꾸는 약자들이 있다. 4.19 항쟁, 5.18 민주화 운동, 세월호,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  이 책은 그들을 향해 혐오, 차별, 폭력을 휘두르는 우리의 민낯을 보여준다. 아흔다섯 살이 된 얼(니클의 소년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던 관리인)이 “엘리너에서 몹시 존경받는 시민”으로 시 정부가 수여하는 ‘올해의 훌륭한 시민상’을 받았다는 대목에서는 구역질이 났다. 우리나라에도 당당히 살아남아, 뻔뻔하게 살고 있는 얼들이 많다. 더 많은 엘우드와 터너들이 제 목소리를 내고, 그들의 민낯을 벗겨낼 수 있도록 모두가 나서야 한다. 죽어간 니클의 소년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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