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은 조용하다

식목일에 생각하는, 결과를 보지 못하는 일들

by KI Ki

오늘은 식목일이다.

공휴일에서 제외된 지 오래됐으니 대부분은 그냥 지나쳤겠지만, 어딘가에서는 누군가 실제로 나무를 심었을 것이다. 삽을 들고, 흙을 파고, 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다시 흙을 덮는 사람. 그 사람이 그 나무가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을지는 모른다. 어린 묘목이 그늘을 만들 만큼 자라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으니까.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결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심는다는 것이다.


그 역설이 나의 지금 상황과 맞물려, 오늘 하루 내내 마음에 걸렸다.


사람들은 대개 결과가 보이는 것에 에너지를 쓴다. 빠르게 피드백이 돌아오는 것, 노력이 수치로 확인되는 것, 오늘 심어서 내일 거둘 수 있는 행동들 중심으로 말이다. 효율이 당연한 언어가 된 세계에서 언제 열매를 맺을지 모르는 것에 시간을 들이는 건 비합리적으로 보이기 쉽다.


그런데 돌아보면, 지금의 나를 만든 것들은 대부분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당장 쓸모가 없어 보여서 그냥 읽었던 책 한 권. 누가 시키지 않아서 그냥 써봤던 글 한 편. 아무 결과도 없이 그냥 나눈 대화들. 그것들이 당시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는데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연결됐다. 씨앗이 땅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인데, 내가 그걸 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씨앗은 조용하다. 자라는 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게 어려운 이유도 거기 있다.

조용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무언가를 심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기가 어렵다. 피드백이 없다. 맞게 하고 있다는 신호도 없다. 그냥 심고, 물을 주고, 기다려야 한다. 중간에 포기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기다려도 생각한 것과 다르게 자랄 수 있다. 나무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라지 않는다.


그러니 심는 행위에는 어느 정도의 내려놓음이 필요하다. 결과를 통제하겠다는 욕망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는 방향만 마음에 담아 둬야 한다. 심고 나서는 그 나무의 몫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일도, 관계도, 생각도 결국 비슷하지 않을까?

내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심는 것까지다.

어떻게 자랄지는 내가 결정할 수 없는 영역이다.


오늘 나는 무엇을 심었는지 생각해봤다.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어떤 생각을 글로 남겼고,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고, 오랫동안 미뤘던 질문 하나를 스스로에게 다시 꺼냈다. 그것들이 어디로 자랄지는 모른다. 몇 년 뒤에도 기억조차 못할 수 있다.

그래도 심었다.


결과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에 에너지를 쓰는 것. 그것이 어쩌면 가장 긴 호흡의 투자다.


식목일은 나무를 심는 날이지만, 꼭 흙을 파야 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오늘 어떤 씨앗을 어디에 심었는지 그걸 한 번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이 날의 의미는 충분할 것 같다.


씨앗은 조용하다.

하지만 조용한 것이 멈춰 있다는 뜻은 아니다.


2026년 4월 5일 일요일

K1.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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