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업이라서 호흡이 가쁘고 어깨가 좁아지면서 손이 떨린다. 복통으로 학교를 가지 않은 8살 아들이 거실에 있어서 더 신경이 쓰인다."엄마 조금 있다가 수업하니깐 잘 부탁해." 마음이 편해졌다. 난 예민한 편이라서 피해를 주는 걸 싫어한다. 줌으로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수업을 시작이 되었다. 미술심리 역사, 설명을 듣고 나서 직접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주어졌다. "집그림 자유롭게 그려보세요 " 자유롭게 집을 그려보라고.. 아무 생각이 없이 에이포 용지 위에 집그림을 그렸다. 카톡으로 그림을 보내고 차례대로 집그림 설명을 해주셨다. 드디어 내 순서가 되었다. 화면에 내 그림이 보였다. '내가 왜 이렇게 그렸지? 이상하다. 이해가 되지 않네...' 집이 있고.. 밥상 위에 밥, 꽃, 등... 어수선하게 그려져 있다. 집그림 그려보세요.. 말 듣는 순간.. 부싯돌이 불이 켜지면서 어린 시절 엄마가 떠난 날 그 시간으로 끌고 갔다. 무의식적으로 손이 움직이면서 그렸다. "밥은 생명위협을 받았을 때.. 그리죠.." 생명위협이라는 단어가 눈앞에 보여지면서 동공이 커졌다. 그러면서 과거와 현재 시간을 되짚어 보았다.
어린 시절 나에게 집이란? 공포였다.
4살 때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와 남동생은 친정할머니댁에 맡겨졌다. 그래서 많은 시간 엄마와 떨어져 지냈다. 할머니집에 정신이 이상한 삼촌이 있었고 ,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면 데리고 가서 때리는 삼촌이 있었다. 친정할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밥상을 걷어차고.. 1분 1초도 숨을 쉴 수 없었다. 탈출 시도했지만 삼촌에 붙잡혀서 맞았다. 다행히도 엄마가 와서 집을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남동생 함께 오지 못했다. 남동생은 방학날 서울에 있는 엄마집으로 놀러 왔다. 축 처진 어깨와 어두운 표정 남동생... 이유 없이 집을 나갔다. 동생을 찾기 위해서 엄마, 이모, 사촌언니 같이.. 오락실, 옥상, 온 동네를 운동화 발끝이 달아지도록 다녔다. 방학이 끝이 나면 할머니는 자주 엄마에게 전활 하고 했다. " 맞는 걸 보고 있으니 안쓰럽다.. 어서 빨리 데리러 가라."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동생을 데리고 오지 않았는지.. 20살이 되어서 데리고 왔다.
엄마는 26살 한순간에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남편을 사별한 감정을 추스르기도 전에 4살 된 딸, 2살 된 아들 키워야 했다. 주머니 딸랑 소리는 백 원과 천 원이 전재산이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슬리퍼를 신고 또 걷고 걸다 보니 슬리퍼 하나가 떨어졌다. 그 시절 여자혼자서 아이들을 키운다는 힘들 거 버거운 일이셨다. 가을쯤 엄마와 함께 동네 산에 올라갔다. 엄마는 30년 지난 과거의 그 시간 남동생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서 후회하시며 눈물 보이셨다. 나 역시 남동생을 볼 때마다 죄인이었다. 엄마도 나도 나쁜 사람인 건가? 엄마도 나도 잘못은 아니었다. 그 상황이 나쁜 거다. 엄마, 나, 남동생 힘든 시간을 잘 버티고 살아왔다. 부모가 되어보니 남동생을 따뜻하게 감싸 안 주고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부모 없이 혼자서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동생에게 다가가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고, 위로해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15년 동안 넘을 수 없는 벽이 쌓였다. 벽을 허물기 위해서 카톡, 문자, 손 편지 등.. 노력하지만 닫힌 문을 쉽게 열리지 않는다. 과거의 시간 동안 "사랑한다.""고맙다""잘살아줘서 고맙다 ""넌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야."못다 한 말하고 싶다. 흘러가는 하얀 구름을 본다. 흘러가는 구름처럼 지금 이 시간도 흘러가겠지? 반갑게 우리 가족이 웃으면서 대화하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가족이 어떻게 되세요?"물어보면 바늘에 심장이 찔린 듯 아프다. 시간이 약이다. 정말 그럴까? 그 말을 믿어본다 .시간이 약이 될 수 있게 기도한다.. 우리 가족이 다정하게 웃는 날 기다려 본다. 그날이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