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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저 Aug 23. 2023

사실 제 추구미는...

한병철, <아름다움의 구원> 리뷰 / 오타쿠일기 4호 백업  

(이미지=https://twitter.com/r_hellomasumme/status/1662277315135696897)

 

언제부턴가 '추구미'라는 단어가 횡행하기 시작했다. (무려 2일차 시간절약 코너에도 썼으니.) 이제는 그 단어가 아예 밈이 되긴 했지만, 여전히 최초적 의미의 추구미는 건재하다. 트위터를 하다 보면 영화, 뮤직비디오 스틸컷이나 핀터레스트에서 주웠을 법한 이미지들을 모아놓고 나의 추구미라고 선언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전에는 비슷하게 '손민수', '카야병', '크리스탈병' 등이 있었다. 그러나 추구미가 생겨나면서 앞선 용어들을 상당히 미학적으로 포장하고 포괄할 수 있게 됐다.  


 요즘 시대에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자주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들은 타인도 나도 기분이 좋아지는, 매끄러운 이미지 상품들이다. 저물녘 바닷가 파도의 부서짐(그러나 사진가, 카메라 기계, 보정 프로그램의 시선으로 가공된), 아이돌의 새로운 티저 이미지(훌륭한 자기관리의 결과물을 포함한), 비슷한 색상과 분위기로 묶인 일상적 사진들(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충분히 편집된).


 아름다움이 앞서 열거된 '이미지'가 아니라면 어떤 것이 아름다울까? 어제 본 영화의 슬픈 결말? 시간과 효율에 딱 들어맞는 일 처리? 향긋하고 맛있는 커피? 귀여운 고양이의 부드러운 털?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여름의 햇살? 이것도 아니라면 건강, 자유, 도덕, 진리, 선함, 사랑, 우정? 또는 죽음과 삶? (너무나 뜬금없지만 퇴사해서 자유를 얻으면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이.)


 이제 추구미는 단순히 손민수처럼 타인의 개성을 따라 하는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 추구미는 주체가 스스로 미적 목적을 가졌다는 점에서 자기 만족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추구미'를 통해 스스로 아름다워지기를 추구하는 주체는 자신의 결여를 이미지 속 대상에 덧씌우고, 또다시 자기애적인 이미지를 재생산하고 소비하기를 원한다.



(책=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4567789)


『아름다움의 구원』의 저자 한병철은 바로 이 긍정성 안에 가두어진 아름다움을 비판한다. 건강과 매끄러움을 절대적인 아름다움으로 숭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안락함과 만족감을 느낀다. 화이트톤과 리본, 실크의 질감으로 가득한 이미지를 떠올려 보자. (그들이 선망하는 발레코어 말이다.) 


 동시에 어떤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타락한 듯 보이는 섹슈얼한 이미지가 포함된다. 어두움 사이에 창백하고 매끄러운 신체가 공존한다. 몸과 외피를 부각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모든 소품과 배경은 영화적 이미지에 흡수된다.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는 신체의 아름다움조차 소비가능한 깨끗한 포르노그래피로 만든다. 울퉁불퉁하고, 거대하며, 배설하는 추하고 역겨운 모습을 배제한 채. 


 소비와 자본주의에 잠식된 미는 이미지나 몸뿐만 아니라 시간과 기억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 공연 보실 때 휴대폰은 좀 내려놓고 저희를 보세요.” 그러나 쉽게 카메라를 내려놓을 수 없다. ‘내가 거기에 있었다’는 즉각적인 확언, 축제의 순간을 영원히 잡아두고 싶은 욕망 탓에. 이 행복은 데이터로 축적된 채 온갖 정보에 밀려 기억의 뒤안으로 사라진다. 다른 시간성에서 뒤엉킴으로 재현되는 기억이 디지털 영상으로 대체되는 셈이다. 


 피상적이고 매끄러운 아름다움이 반복되고, 모나지 않고 깔끔하고 청결한 아름다움을 바라는 데서 나는 이미 저자가 말하는 현대의 이상적인 소비자**인지 모른다. 그의 말처럼 예술이 시장에 종속되고, 인간이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은 구원될 수 있을까? 



 * p.69 <재앙의 미학>
 ** p.75 <미의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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