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부터 먹는 것에 큰 흥미가 없었다. 한 끼 그저 배부르게 먹으면 그만이었고, 어떤 걸로 배를 채우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언니와 자취를 하는 동안 언니가 외박이라도 한다고 하면 하루를 꼬박 굶고 다음날 돌아온 언니와 첫끼를 먹을 만큼 먹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남들은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인터넷에서 최신 유행하는 레시피를 찾아 요리하며 맛있는 음식을 통한 삶의 기쁨을 얻곤 한다는데, 어찌 보면 기쁨의 종류 한 가지를 잃고 사는 것과 같다.
그게 이렇게 큰 고민이 될 줄은 몰랐다. 아이가 태어나고 분유와 이유식의 일 년을 지나 성인처럼 밥을 먹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내 고민은 시작되었다. 아이를 위해서 요리를 해야 하는 건 엄마의 숙명과도 같은 일인데 편협한 메뉴의 음식만 먹고살았기에 아이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요리도 무척이나 한정적이었다. 한 시간 공들여 요리를 했는데 아이가 먹는 둥 마는 둥 했을 때의 좌절감이란 무어라 표현하기도 어렵다. 아이가 밥을 먹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엄마의 요리가 맛이 없어서라는 유명한 의사 선생님 말에 정곡을 찔린 듯 마음이 아팠고 블로그를 뒤적거리며 아이에게 해 줄 맛있는 요리 레시피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요리를 못한다. 똑같은 레시피를 보고 누구는 맛깔난 음식을 만들어내지만 나는 아니었다. 애초에 맛에 무딘 사람이기에 요리를 하면서 간을 보는 게 굉장히 어려웠고 하여 결과적으로 내가 만든 요리는 맛이 없었다.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더 이상 요리에 공들이지 않기로 했다. 포기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관심이 없는 분야 적성에 맞지 않는 분야에 시간을 쏟지 않기로 했다. 엄마라면 응당 아이를 위해 요리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이를 키워보니 중요한 건 맛있는 요리보다 함께하는 즐거운 식사시간이다. 요리를 하며 감정이 상하는 내가 식사시간에 즐거울 리 없었다. 덜 공들이는 음식으로 간편하게 식사를 준비하고 식사시간에 아이와 더 많은 대화를 하기로 했다. 물론 아이가 커서 엄마가 해준 음식이 그립고 집밥이 생각나지 않을 테니 살짝 미안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요리에 관심 없고 요리를 못하는 엄마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