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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 Apr 25. 2022

육아는 곧 걱정

아이가 태어나고 알았다. 내가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드라마 속 환상처럼 잘 웃고 잘 자고 잘 먹는 아이가 태어나기를 바란 것도 아니다. 그저 아무 생각이 없었을 뿐이다. 그러나 아이를 품고 키운다는 것은 우주를 만드는 일과 맞먹는다. 

3kg의 작디작은 몸으로 태어난 아이는 부모와 정성과 사랑을 먹고 자라난다. 신생아 시기에는 밥이 곧 생명이기에 제때 주지 못한다면 생명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다. 

그 말은 곧 아이의 생명이 내 손에 달려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자체로의 중압감은 엄청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정말 많은 고민을 해야 하고 부부간의 많은 대화도 필요하다. 그 끝에 소중하고 귀중한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다. 아이가 8살이 된 지금까지 아이 이마에 손을 올려본 것은 아마 만 번은 될 것이며, 철 바뀌면 온도 습도에 항상 신경 쓰고 비염을 달고 사는 아이의 코 건강을 위해 코에 좋다는 작두콩차는 늘 준비되어있다. 물론 신생아를 훌쩍 벗어난 지금은 아이의 생명이 나에 의해 좌지우지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걱정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8살쯤 되면 열이나도 대수롭지 않게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여전히 아이가 아프면 늘 멘붕이 된다.  내가 소홀했기 때문이야 라는 모성애 가득한 엄마는 아니기에 그저 아이가 태어나서 내가 아이에게 하는 걱정은 숙명과도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아이는 제법 컸지만 학교라는 기관에 보내기 전에 다시 걱정이 발동했다. 밥은 잘 먹을지, 친구들은 잘 사귈지, 화장실은 잘 갈 수 있을지. 물론 아이는 잘 해낼 것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 부모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스스로 계단을 올라가는 법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아이가 스무 살이 되면 걱정이 사라질까? 그럴 일 없을 것이다. 그저 걱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줄이는 방법을 배우고, 쿵 하고 떨어지던 심장을 살포시 떨어지게 바꾸는 연습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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