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고, 미덥고, 치사하며 쓸쓸한

돈, 에세이를 만나다 #7 김애란 작가

by 카카오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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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알려준 사람의 이름이라고 하나? 그런 건 사물에 영원히 달라붙어 버리는 것 같아요”


언젠가 한 단편에 위 문장을 쓴 적이 있다. 주인공이 옛 연인이 알려준 노래 , 길 이름, 저자명 등을 떠올리며 한 말이다. 내게도 그런 게 있는데, 그중 하나가 러시아 화폐 단위 ‘코페이카(копейка)’다. 고등학생 때 『죄와 벌』을 읽으며 ‘코페이카'를 처음 알았다. 그래서 몇 해 전 방문한 러시아에서 지갑을 열 때마다 도스토옙스키가 생각났다. 강바닥에 물그림자 아른거리듯 내게 처음 ‘코페이카’라는 ‘이름을 알려준 사람의 이름’이.


‘즈워티(Zlotych)’란 말을 처음 알려준 이는 폴란드의 과학자 마리 퀴리다. 초등학생 때 『마리 퀴리』 전기를 읽다 ‘즈워티’란 말을 처음 익혔다. 노벨화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그녀가 훗날 폴란드 화폐의 모델이 되었다는 문장을 통해서였다. ‘사람들은 왜 차가운 화폐에 사람 얼굴을 새길까? 그것도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갸웃거리다 지폐 속 마리 퀴리의 깊은 눈을 빤히 바라본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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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한국 화폐 ‘원’을 처음 알려준 사람은 어머니다. 나는 그 말을 활자가 아닌 소리와 감촉으로 먼저 익혔다. 시골 소읍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한 엄마가 입에 달고 산 말이 바로 저 ‘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은 카드를 잘 쓰지 않았고, 특히 우리 소읍에서는 모든 ‘계산’을 현금으로 했다. 우리 가게 찬장에는 플라스틱 소재의 둥근 동전 바구니가 있었고, 어머니는 거기서 잔돈을 꺼내 손님들에게 거슬러주곤 했다. “천오백 원입니다”, “삼천 원입니다”, “이만 원입니다.”, “혹시 천 원짜리 한 장 없으세요?”라는 식의 말을 반복하면서. 네 살 때부터 나는 그 활발한 매매 활동 가운데서 자랐고, 어른들에게 식대며 담뱃값을 받고 잔돈 계산하는 법을 배웠다. 국수 가게 한쪽에 쌓인 국산 담배 이름과 가격을 한글도 떼기 전에 줄줄 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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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매가 유치원생이 됐을 무렵, 엄마는 새 모이 주듯 우리에게 매일 백 원씩 주곤 했다. 우리는 그 돈을 받자마자 구멍가게로 달려가 군것질거리를 샀다. 집밥과 달리 혀를 녹이는 공산품의 맛도 유혹적이었지만, 우리가 화폐라 약속한 어떤 물체를 내밀면 저쪽에서 그에 상응하는 물건을 주는 행위 자체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러다 백 원이 삼천 원이 되고, 만 원, 삼만 원으로 올랐을 때 나는 이미 갖고 싶은 것과 사고 싶은 게 많아 잠을 설치는 사춘기 소녀가 되어 있었다.


과거를 생각하면 그런 번뇌의 밤보다 차갑고 반짝이는 백 원의 감촉과 화폐의 무게, 교환의 실감이 먼저 떠오른다. 요즘처럼 자식에게 ‘금융교육’이라 할까, 지식을 전하는 문화도, 자원도 없는 시대에 그래도 내게 뭔가 가르치려 한 엄마의 작은 결단과 행위도.


그 뒤 대학에 들어가서 생애 첫 통장을 만들었다. 학교 앞 은행에서 대학 등록금을 부치며, 생전 처음 만져보는 큰돈에 가슴이 쿵쾅거린 기억이 난다. 만에 하나 실수로 그 돈을 날리면 ‘인생이 끝날 것 같아’ 주위를 끊임없이 두리번거린 내 숫된 얼굴도. 아마 내겐 그게 다른 어떤 돈도 아닌 엄마가 “삼천오백 원입니다”, “칠천 원입니다”, “또 오세요”라는 말을 반복하며 차곡차곡 정직하게 모은 돈이라 그랬을 거다.


물론 한참 뒤 스스로 돈을 벌고, 홀로 전세금을 치를 때에도 ‘내일 전쟁이 나면 어쩌지?’, ‘은행가는 길에 소매치기라도 당하면?’ 따위의 망상에 똑같이 시달렸지만. 오래전 내 작은 손바닥에 놓인 동전 한 닢이 어엿한 아라비아 숫자가 되고, 몸을 불려 갈수록 어릴 땐 보지 못했던 엄마의 노동과 수치, 보람과 환멸을 가늠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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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집에서 10년 넘은 통장 꾸러미를 발견하고 그 내역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있다. 낡은 40여 개의 종이통장 안에는 사회초년생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느낀 초조와 불안, 희망, 효심, 우정, 미래를 향한 기대 같은 게 한글과 아라비아숫자로 빼곡 박혀 있었다. 내가 엄마에게 받은 돈과 부친 돈, 조의와 축의, 대출과 이자, 고료, 월급, 막 쓴 돈과 값지게 쓴 돈, 우울, 사치, 기쁨 등이 모두 새 발자국처럼 찍혀 있었다. 실로 돈은 내 앞에 늘 여러 얼굴로 나타났다. 나를 돕고, 나를 등 떠밀고, 나를 버티게 하고, 나를 못 견디게 하며, 나를 위로하는 식으로 다가왔다 사라졌다.


‘그래, 돈은 지금도 그렇지. 고맙고, 미덥고, 치사하며, 쓸쓸하고… 그래, 그렇지’ 그래서인지 지금도 나는 다 쓴 종이통장을 잘 버리지 못한다. 왠지 그 통장이 러시아 소설처럼 ‘원’으로 쓰인 전기 같아서다. 첫 장을 열면 지은이가 나오고, 본문 안에는 수치와 비밀이 새겨진, 저자와 독자가 동일한 어떤 책으로 느껴져서다.


앞으로 이 안에 또 어떤 이야기가 쓰일까? 아마 좋은 이야기와 그렇지 않은 이야기가 모두 있겠지. 우리의 삶이 대체로 그런 것처럼. 내 미래가 궁금해 먼 곳을 보다가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진 ‘돈’과 눈을 마주치고는 괜히 깜짝 놀라 딴청을 피운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좋은 일만 생기란 듯이. 부디 그래 달라는 듯이. 혹 나쁜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견딜 만한 크기로 다가와 주길 빌면서.


글 김애란

<바깥은 여름>, <비행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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