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로봇 수술은 되고 혈액 검진은 아직 안 되는 이유
안녕하세요, 카카오벤처스 김치원 부대표입니다.
투자팀은 늘 창업 초기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들과 함께 하며 시장 동향을 살피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면 궁금증과 고민이 생겨서 팀 안팎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아마 시장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누구나 저희와 비슷한 상황에 있으실 듯합니다. 생각은 다양할수록, 대화는 깊을수록 좋기 때문에 저희가 가졌던 생각의 일부를 앞으로 하나씩 공유해 드리고자 합니다. 창업자, 투자자, 혹은 시장에 흥미를 가지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디지털 혹은 하드웨어 기반의 의료기기 스타트업에게 한국 시장은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한국은 건강보험 수가 자체가 낮고 시장 규모도 작기 때문에, 국내 시장만으로는 의미 있는 매출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인데요.
이러한 이유로 많은 스타트업들이 중동, 유럽, 동남아 등 다양한 지역을 거점 삼아 해외 진출을 시도하고 있지만, 결국 세계 최대 단일 시장인 미국을 외면하기 어렵습니다.
그동안 저는 의료보험이 어떤 기준으로 수가를 부여하는지 설명하면서 미국 의료 시스템의 특성도 여러 차례 다뤄왔는데요. 이런 내용을 통해 ‘이런 기술은 미국에서 수가 받기 어렵겠구나’하는 감이 자연스럽게 전달되리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이러한 내용을 낯설게 느끼는 분들이 많다는 걸 종종 실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미국 의료보험, 그중에서도 메디케어(Medicare, 65세 이상 노인을 위한 국가 의료 보험)를 중심으로, 새로운 의료기술이 어떤 경우에 보험 수가를 받기 어려운지 짚어보려 합니다.
의료보험의 본래 취지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발생하는 고액의 의료비에 대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1965년 메디케어가 처음 도입될 당시에는 증상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건강검진에 보험을 적용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건강검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메디케어도 일부 항목에 한해 보험 적용을 허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법을 개정하지 않고는 새로운 항목을 추가할 수 없기 때문에, 예외 조항을 신설하는 방식으로만 적용 범위가 확대되어 왔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Medicare Coverage of Clinical Preventive Services 보고서에서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건강검진이 메디케어로부터 보험 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기준 중 하나를 충족해야 합니다. 각각 어떤 의미인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해당 법 조항은 건강검진 방법으로서 특정 질병에 대한 특정한 검사를 명시적으로 규정합니다. 예를 들어, 자궁경부암에 대해서는 자궁경부 세포검사(Pap Smear)가, 유방암에 대해서는 유방촬영술이 제시됩니다.
녹내장의 경우에는 ‘녹내장 검진(Glaucoma screening)’이라는 다소 모호한 표현으로만 언급되어 헷갈릴 수 있는데요. 실제 법 조문에는 다음과 같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The term “screening for glaucoma” means a dilated eye examination with an intraocular pressure measurement, and a direct ophthalmoscopy or a slit–lamp biomicroscopic examination for the early detection of glaucoma which is furnished by or under the direct supervision of an optometrist or ophthalmologist who is legally authorized to furnish such services under State law
다른 질병과 달리, 대장암과 전립선암의 검진 항목은 조금 다릅니다. 보험이 적용되는 검사 방법을 법령에 구체적으로 명시할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문구를 덧붙이는데요.
대장암:
Such other tests or procedures, and modifications to tests and procedures under this subsection, with such frequency and payment limits, as the Secretary determines appropriate, in consultation with appropriate organizations
전립선암:
Such other procedures as the Secretary finds appropriate for the purpose of early detection of prostate cancer, taking into account changes in technology and standards of medical practice, availability, effectiveness, costs, and such other factors as the Secretary considers appropriate.
구체적인 표현에는 차이가 있지만, 결국 HHS(Department of Health & Human Services,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이 추가로 지정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다른 질병에 대한 검진은 검사 방법이 구체적으로 법령에 고정되어 있는 반면, 대장암과 전립선암은 법 개정 없이 장관의 결정에 따라 새로운 검진 검사 방법을 추가할 수 있는 겁니다.
이후에 등장한 ACA(Affordable Care Act, 오바마케어)에서는 USPSTF(US Preventive Services Task Force, 미국 예방의료서비스위원회)로부터 A 또는 B 등급의 추천을 받은 검사에 대해, 민간 의료 보험이 반드시 보험 적용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메디케어의 경우, USPSTF에서 추천한 검사에 대해 보건복지부(HHS)가 NCD(National Coverage Determination)를 발행하면, 반드시 보험 적용을 해야 합니다. 일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USPSTF A 혹은 B 등급을 받은 검사의 대부분이 NCD가 발행되어 메디케어 보험 수가 적용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듯 대장암과 전립선암처럼 장관의 결정으로 추가할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사실상 신규 건강검진 기술이 메디케어 수가 체계에 진입할 수 있는 유일한 경로는 USPSTF A/B 등급 획득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새로운 건강검진 방법이 보험 적용을 받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한데요. 제도적 진입 장벽도 높지만, 현재에 와서는 비용 대비 가치를 명확히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관련 내용은 제 블로그 포스팅이나 책, 강의 등에서 종종 다루어왔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셔도 좋겠습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아래와 같은 질문을 중심으로 내용을 더 풀어봤습니다.
• 질병 발생 가능성 예측 검사는 왜 보험 수가 적용이 더더욱 어려운 걸까?
• Coronary Calcium Score 검사와 Liquid Biopsy 암 검진, 미국에서 왜 수가 적용을 못 받고 있을까?
•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빈치 로봇은 미국에서 팔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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