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도 오지 않는 죽음 대신에
새싹처럼 돋아나는 봄처럼
삶을 돋아나게 하고 싶어
할머니라고 불리던 여자는 글을 배웠다
자신의 어린 손녀에게
그거 이제 배워서 머한다꼬
그런 소리를 하면서도
뒤늦게 글을 배우고
노인 대학도 다녔던 그녀는
나의 할머니.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라고,
살기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고
가나다라마바사를 가르쳤다.
부끄러워 하는 할머니에게
손녀는 끝없이 아자차카타파하를 말하면서
또 말했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에요.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거예요.
방학이 끝나갈 무렵, 어쩐지 한글 교실을 열었던 손녀는 점점
가르치는 일에 시들시들해졌지만
할머니의 눈빛만은 계속 빛났다.
땀을 뻘뻘 흘리며
선풍기를 틀어놓고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쓰는 공책에
반듯하게 자신의 이름 석자를 꾹꾹 눌러 쓸 줄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뛸 듯이 기뻐했다.
수학 여행 때 준 용돈으로 겨우 빗이나 부채 따위를 사오는 손녀가 준 선물을
아낀다고 쓰지도 못했던 그녀.
어여쁘고 고운 우리 할머니에게
나는 말하지 못했다.
어쩌면 스스로를 까막눈이라 말하던 당신에게서 내가 더 많이 배웠다고.
나는 당신을 모르는, 까막눈.
당신의 사랑을 어림짐작도 하지 못했던 바보 까막눈이었다고.
언젠가 당신은 내게 말했었다.
그때 한글 가르쳐준 거 고맙다고.
당신은 내게 두고 두고 고마워했다.
나는 말하지 못했다.
입버릇처럼 말했던 당신의 죽음 대신에
나는 당신의 공책 위에 삶이라는 글자를 새겨넣고 싶었다고.
나의 할머니.
한글 교실은 닫혔고
당신의 삶도 닫혔지만
나는 그해 여름 방학 때
빛나던 당신의 눈을 기억한다.
내가 산 귀신이라고, 나를 왜 안 데려가느냐고 입버릇처럼 오래 사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당신이지만
나는 당신이 오래 내 곁에 있어줘서 좋았다고
끝내 말하지 못했다.
나의 할머니, 당신에게
나는 끝까지 까막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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