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가 있는 날이어서 알람 맞춰놓은 오전 6시 30분에 벌떡 일어났다. 새벽에 한 번 깨서 쉽게 잠들지 못하고 설쳤다가 자서 피곤했지만 집합 시간에 시간 맞춰가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아내와 아이를 깨워서 준비하고, 불교 사원을 돌아다니기에 반팔 남방과 긴 냉장고 바지를 입고 7시 30분에 호텔을 나섰다. 다행히 어제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짙푸른 하늘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한 10여 분 걸어가니 집합 장소에는 우리처럼 당일 투어를 신청한 많은 사람이 있었고, 확인을 한 다음 8시가 되자 대형 버스에 탑승했다. 에어컨을 시원하게 켜고 못 잔 잠을 청하니 어느새 1시간 넘게 달려서 버마와 치열하게 싸웠던 고대 왕국 아유타야에 도착했다.
아유타야(Ayutthaya)는 태국 역사에서 수코타이 왕조에 이어 두 번째로 번성했던 아유타야 왕조의 수도였으며, 1350년에 건립되어 1767년 버마군의 침략으로 멸망하기까지 약 400년 동안 번영을 누렸던 유서 깊은 곳이었다. 이곳은 짜오프라야강을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 국가로서 수많은 사원과 궁궐이 들어서 화려한 모습을 자랑했다. 도시 자체가 불교 사원으로 뒤덮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도시는 크메르 왕국의 건축 양식과 스리랑카의 불교문화가 어우러진 독특한 건축 양식을 보여주었으며, 이 시기를 칭할 때두세 번의 왕위 찬탈이 있어서 대개는 왕조라고 하지 않고 아유타야 왕국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유명한 유적지가 많이 남아 있어서 과거의 영광을 보여줬는데 아유타야에서 가장 큰 사원으로서 세 개의 대형 체디가 인상적인 왓 프라 시 산펫 (Wat Phra Si Sanphet), 부처의 머리가 나무뿌리에 갇힌 독특한 모습으로 유명한 왓 마하탓 (Wat Mahathat), 거대한 와불상이 있는 사원으로서 아유타야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건축물인 왓 야이 차이몽콘 (Wat Yai Chaimongkol) 등이 있었다.
원래 일정상 첫 번째로 여름별궁을 가려고 했는데 현 국왕의 아들인 티빵껀 왕자가 불공을 드리러 방문한다고 해서 입장불가가 되었다. 그래서 고즈넉하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락 나 아유타야(Rak Na Ayutthaya)라는 카페에 가서 잠시 쉼표를 찍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이스 차이 티 라테, 땡모반을 주문해서 교외의 한적함을 두 눈에 담아 보았다. 한 30분 정도 쉰 다음에 버스에 탑승해서 진짜 첫 번째라고 할 수 있는 왓 차이와타나람이라는 불교 사원으로 갔다. 처음 보는 동남아 불교 사원의 유적이어서 느낌이 남달랐다.
오늘 당 충전
왓 차이와타나람(Wat Chaiwatthanaram)은 태국 아유타야 역사공원 내에 위치한 불교 사원으로 아유타야 왕국의 번영을 상징하는 건축물 중 하나였다. 17세기 초, 프라삿 통 왕이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건축했으며, 앙코르 와트를 모티브로 하여 건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아유타야 왕국의 몰락과 함께 방치되었지만, 1992년 복원 작업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사원은 거대한 중앙 프라앙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작은 프라앙과 회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웅장한 규모와 정교한 조각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아내도 앙코르 와트와의 유사성을 느꼈는지 캄보디아에 안 가도 되겠다며 연신 집중하면서 봤다. 하지만 앙코르 와트를 다녀온 사람의 표현에 비하면 이건 새발의 피였다. 사원은 코끼리와 사자를 형상화한 석조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불교와 힌두교의 신화를 담은 벽화도 볼 수 있었다.
왓 차이와타나람
다시 버스에 탑승해서 얼마 안 가서 두 번째 사원에 도착했다. 가는 길 곳곳에도 사원이 많아서 수백 개는 넘는 듯했다. 그다음에 보았던 왓 로카야수타(Wat Lokayasutha)는 아유타야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지 중 하나로서 거대한 와불상으로 유명하며, 아유타야에서 가장 큰 와불상 중 하나로 손꼽혔다. 이곳은 아유타야 왕조 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고 했다. 사원 내에는 거대한 와불상 외에도 여러 건축물과 조각상들이 남아 있어 당시의 불교문화를 엿볼 수 있다. 와불상은 길이 42m, 높이 8m의 웅장한 크기로, 아유타야 시대의 불교 예술을 대표하는 작품이었다. 와불상 주변에는 여러 개의 작은 불탑과 조각상들이 자리하고 있어, 당시 사람들의 불교에 대한 신심을 엿볼 수 있었다.
왓 로카야수타
그리 크지 않아서 곧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했는데 세 번째 사원인 왓 프라 시 산펫(Wat Phra Sri Sanphet)은 아유타야 역사공원의 중심에 위치한 불교 사원으로, 아유타야 왕조의 왕궁과 가까이 위치해 왕실 사원으로 사용되었으며, 아유타야 왕국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지였다. 이곳은 14세기 후반에 건립되어 아유타야 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왕실 사원으로 사용되었다. 사원은 세 개의 거대한 프라앙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작은 프라앙과 회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웅장한 규모와 정교한 조각으로 유명했다. 가장 큰 특징은 세 개의 거대한 프라앙으로서 이 프라앙들은 각각 불상을 모시는 곳으로 사용되었으며, 아유타야 왕조의 부와 권력을 상징했다. 프라앙 주변에는 여러 개의 작은 불탑과 조각상들이 자리하고 있어서 당시 사람들의 불교 신앙을 느낄 수 있다. 불행하게 1767년 버마, 현재 미얀마의 침략으로 아유타야가 함락되면서 왓 프라 시 산펫의 불상들은 파괴되었고 현재는 빈 프라앙만 남아 있다.
왓 프라 시 산펫
바로 옆에 또 하나의 사원이 있었는데 왓 프라람(Wat Phra Ram)이라는 사원으로 아유타야 왕조의 첫 번째 왕인 라마티보디 1세의 부모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유타야 초기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으로서시간이 남아서 혼자 가서 보고 왔다. 여기까지 살펴보고 우리는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근처 식당으로 갔다. 투어에 딸린 식당이어서 가격은 비싸고, 맛은 없다고 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우리는 똠얌꿍, 닭튀김, 닭고기 볶음, 쏨땀과 밥 3개를 주문했는데 똠얌꿍은 멀건 국물에 이질적인 맛이었고, 닭튀김은 쩐내가 살짝 나는 튀김이었으며, 닭고기 볶음은 채소가 흐물거리고, 쏨땀은 만든 지 한참 된 맛인 거 같아서 매우 실망스러운 식사를 했다. 그래도 미리 알고 있어서 어느 정도 각오는 했기에 생각보다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왓 프라람
입맛 단속시킨 요리
점심 식사 이후 메인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네 번째 사원인 왓 마하탓으로 갔다. 14세기에 세워진 왓 마하탓(Wat Mahathat)은 아유타야 왕조 시대 동안 번영했으며, 수많은 승려들이 수행하던 곳이었다. 특히 프라 바통 체디는 아유타야의 부처님의 머리뼈를 모시고 있어 매우 신성시되었다. 넓은 부지에 다양한 건축물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특히 나열된 부서진 불상이 인상적이며 나무뿌리에 감싸인 불상은 왓 마하탓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유명했다. 나무뿌리에 감싸인 불상은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조형물이어서 인기가 높았다. 이렇게 머리 잘린 불상이 많은 이유는 버마의 침공 시 가져가지 못하고 파괴된 것이 그대로 있기 때문이었다.
시간과 자연의 불상
왓 마하탓
여전히 이글거리는 햇빛이 가득한 푸른 하늘 속에서 마지막 사원으로 갔다. 다섯 번째 사원인 왓 야이 차이 몽콜(Wat Yai Chai Mongkhol)은 아유타야 시대 초대 왕인 라마티보디 1세가 스리랑카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승려들의 수행을 위해 세웠으며, 이후 왕실의 후원을 받아 확장되었다. 넓은 부지에 다양한 건축물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특히 거대한 불상과 웅장한 체디가 인상적인데 와불은 아유타야에서 가장 큰 불상 중 하나이며, 평화로운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현재는 아유타야 역사공원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고, 현지인들이 불공을 드리러 많이 방문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들어가는 입구에 방콕과는 다른 아유타야의 툭툭이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아유타야 툭툭
왓 야이 차이 몽콜
이렇게 불교 사원으로 가득한 고대 왕국 아유타야 투어를 마치고 버스에 탑승하기 전 아이가 너무 더워해서 아이스티와 아이 얼굴만 한 얼음컵을 샀다. 얼음컵이 10바트밖에 안 해서 저렴한 가격에 더위를 날릴 수 있었다. 근처 전통 과자를 파는 가게가 있길래 가서 간식으로 그 유명한 로띠 싸이 마이(Roti Sai Mai)와 물어봐서 추천받은 꿀과자를 하나씩 샀다. 로띠 싸이 마이는 아유타야의 솜사탕으로 불리는 간식으로 사탕수수를 실처럼 가늘게 뽑아서 그 실타래를 로띠에 싸 먹는 간식이었다.사탕수수의 맛이 달콤하면서 고소해서 자극적이거나 마냥 단맛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설탕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도 맛있게 먹었다.
로띠 싸이 마이
투어를 잘 마무리하고 냉방 시설이 너무나 잘 된 버스를 타고 다시 태국의 수도이자 유일한 대도시 방콕으로 오후 4시를 넘겨 도착했다. 땀이 뻘뻘 날 정도로 무더웠지만, 티 없이 맑은 화사한 날씨라서 오히려 좋았던 하루였다. 아이가 많이 더워했지만 버스를 타고 이동하니 무리 없이 잘 다닌 듯했고, 태국에 와서 처음으로 여행다운 여행을 한 느낌을 받았다.방콕에서 내린 도착지가 대형 쇼핑몰이어서 한참 둘러보며 구경하다가 간식으로 바나나를 찹쌀에 뭉쳐서 잎으로 찐 것과 새우 돼지고기 만두 등을 사 먹고, 저녁 식사로 태국 이싼 지역 요리를 파는 식당에 가서 닭날개 튀김, 소시지 구이, 옥수수 쏨땀을 주문해서 먹었다. 가격은 점심 식사 가격과 같았지만 맛은 비할 수 없이 훌륭해서 마무리가 좋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