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5일(수)-28일(토)
3박 4일 동안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를 둘러보았다. 오사카는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었다. 사람은 같은 도시를 다시 찾을 때마다 다른 눈을 갖게 된다고 믿는 나에게 처음의 오사카는 낯선 도시였고, 두 번째 오사카는 반가운 도시였으며, 세 번째 오사카는 아이와 함께 동심을 찾는 도시였다. 그래서 같은 간사이 국제공항에 내려 같은 전철을 타고 난바로 들어가도, 도톤보리 강변의 네온을 보아도, 매번 전혀 다른 기억이 생겨났다. 오사카는 겨울에도 한국만큼 매섭지 않은 편이라 늘 덜 추운 도시로 기억되었다. 숨을 내쉴 때 하얀 김이 길게 뻗어 나오기보다는 차가운 공기가 목을 살짝 스치는 정도로 끝나는 도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첫날부터 비 예보가 걸려 있었다. 여행이라는 것은 햇살만으로 완성되지는 않지만, 햇빛이 있는 날에 걸을 때 도시의 표정이 훨씬 선명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여행의 맛은 햇살에 나온다는 걸 믿는 나는 마음 한쪽이 가늘게 젖어 있었다. 하지만 그 걱정은 출발과 동시에 다른 긴장감으로 바뀌었다. 아이가 이 여행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기대는 종종 날씨를 이겼다. 아이가 하늘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마음의 온도를 바꾸는 데는 고단수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살고 있는 도시에서 인천 국제공항까지 새벽 버스를 탔다. 4시간 가까이 달리는 동안, 창밖은 검은색에서 잿빛으로 천천히 변해 갔다. 이른 새벽의 버스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은 고개를 숙인 채 잠을 잤고, 일부는 휴대폰 화면을 밝게 켜고 저마다 여행의 시작을 준비했다. 인천 국제공항은 언제나 공항 자체가 하나의 도시처럼 보였다. 이른 아침인데도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카트를 밀며 달리는 사람의 발걸음, 아이와 손잡고 가는 엄마, 연인들, 가족들, 출장을 나온 사람 등 출국장 표지판 아래에서 길을 확인하는 눈빛이 뒤섞여 있었다. 우리는 출국 수속을 밟고 게이트 근처에 앉았다. 아이는 일본에 가서 할 일에 대해서 생각해 놓고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여행의 반은 이미 출발 전 공항에서 끝난다는 생각을 했다. 공항에서 사람들은 계획이 아니라 마음을 정리하고, 짐이 아니라 기대를 확인하고, 항공권이 아니라 함께 하는 이의 표정을 챙기기 때문이었다.
두 시간 남짓 날아 간사이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비행기 창문 밖으로 빗줄기가 빠른 손짓으로 때리고 있었다. 착륙하는 순간까지도 하늘은 회색이었다. '아, 정말 비가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실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차피 내리는 걸 알고 있는 비였기에 우리는 그저 우리의 시간을 보내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비는 우리의 일정에 영향을 줄 수 있어도, 우리의 목적을 바꾸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입국 심사는 이전보다 디지털화되어 있었다. 안내 표지판은 더 깔끔해졌고, QR코드를 내밀고 얼굴 인식을 하는 과정이 늘었다. 하지만 자동 심사라는 느낌보다는 디지털 절차가 하나 더 늘었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직원들이 중간중간 계속 확인을 했고, 줄은 생각보다 빨리 줄지 않았다. 세 번째 방문이라 공항이 익숙할 법도 한데, 공항 풍경이 매번 달라지는 이유는 내가 바뀌어서이기도 하고, 시스템이 바뀌어서이기도 했다. 공항은 국가의 현재가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이라 그런지, 변화가 빠르게 축적되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붐비는 인파 속에서 다소 긴장을 하며 전철을 타고 도심으로 이동했다. 바퀴가 레일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소리를 들으면, 어느 나라든 마음이 여행자로 정리되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회색 하늘, 젖은 도로, 일본식 가옥들, 우산을 든 사람들의 속도는 오사카의 첫인상을 촉촉한 일상으로 만들어 주었다.
지하철 역에서 나와 우리는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유학 시절 자주 찾던 덮밥 체인 요시노야(吉野家)로 향했다. 요시노야(吉野家)에 들어서는 순간, 오래된 기억이 기름 냄새처럼 퍼졌다. 유학 당시의 나는 주머니에 들어있는 돈을 세어가며 식당을 찾곤 했다. 그때는 한 푼이 아쉬웠다. 그래서 요시노야(吉野家)보다 조금 더 저렴했던 마츠야(松屋)를 더 자주 갔었다. 그리고 거기서도 규동(牛丼)은 부타동(豚丼)보다 조금 더 비싸서 부타동(豚丼)을 자주 먹었다. 그때의 덮밥은 음식이라기보다 연료에 가까웠다. 시치미와 초생강을 보니 그때의 기억이 더욱 진하게 다가왔다. 이제는 많은 게 바뀌었고, 가게도 바뀌어서 주문도 QR코드로 하고, 결제도 카드로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사람이 성장했다는 것은 더 비싼 메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예전의 나를 떠올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는 일인지도 몰랐다. 카라아게 덮밥을 주문한 아이는 금세 비웠고, 나는 규동을 곱빼기로 시켜서 든든하게 먹었다.
오사카(大阪)는 역사적으로 상업과 금융의 도시로 성장해 왔다. 에도 시대에는 전국의 물자가 오사카로 모였고, 쌀과 식재료 유통의 중심이 되며 '천하의 부엌(天下の台所)'이라 불렸다. 그 기질이 지금도 남아 있어 오사카는 도쿄보다 더 생활에 가깝고, 더 장사에 가깝고, 더 먹는 것에 진심인 도시로 느껴졌다. 웃고 떠들며 계산을 빠르게 끝내는 점원들의 손놀림, 식당가에서 들리는 조리 소리, 간판의 과감한 문구는 이 도시가 돈과 먹거리로 살아 움직이는 곳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이 지역은 문화적으로 만담과 예능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하고, 사람들의 말투가 직설적이며 유머를 섞는 경향이 있다. 경제적으로도 간사이(関西)의 중심이며 제조업과 상업, 관광 산업이 결합된 구조를 가진 도시였다.
호텔에 체크 인을 하고, 객실 문이 닫히는 순간에 우리는 비로소 여행의 쉼터에 들어왔다. 짐을 내려놓고 창문을 열어 보니,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긴 이동 끝에 도시가 우리를 씻어 주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우리는 곧장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USJ)으로 향했다. 1.5일권을 샀기에 첫날은 오후 3시부터 입장이 가능했다. 시간에 맞추려면 전철을 한 번만 갈아타기 위해 중간에 걸어야 했다. 우산을 들고 젖은 길을 지나는데, 아이는 피곤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버스로 공항까지 달리고, 비행기를 타고, 입국 심사를 하고, 전철을 갈아타고, 다시 걷는 이 과정은 어른도 지칠 만한 여정이었다. 그런데 아이의 눈은 목적지로만 고정되어 있었다. 아이는 꿈이 가까워질 때 피곤을 잊는 얼굴을 가졌다.
이윽고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입구가 보였다. 미국 올랜도에서 보았던 그 익숙한 구조가 떠올랐다. 하지만 익숙함은 지루함이 아니라 반가움이었다. '아, 드디어 왔구나.'라는 감각은 여행자에게 묘한 안정감을 줬다. 비 오는 날이라 그런지 사람이 예상보다 적었다. 사람들의 발길을 줄여 주기 때문에 어떤 날은 비가 불행이 아니라 특권이 되었다. 덕분에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어트랙션을 소화할 수 있었다. 아이의 목적은 슈퍼 닌텐도 월드로 분명했다. 정리권을 이용해 우리는 닌텐도 월드에 들어서는 순간, 게임이 현실이 되는 기분을 맛보았다. 초록색 파이프, 벽돌 블록, 코인 소리, 캐릭터들의 움직임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이는 탄성을 내뱉었다. 그 탄성은 단순한 감탄이라기보다 '내가 여기 들어왔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닌텐도 월드는 단지 구역이 아니라, 아이가 오랫동안 품어온 세계가 실제로 접속되는 문이었다. 그 순간 아이의 손을 한 번 더 꽉 잡았고, 이 기억이 아이의 마음속에 오래 남길 바랬다.
그날 우리는 비 오는 유니버셜을 최대한 길게 즐겼다. 비가 내릴수록 조명은 더 선명해 보였고, 사람들의 표정은 더 간절해 보였다. 쥬라기 공원 구역으로 향해 공룡의 울음소리와 물 냄새를 맡았다. 해리포터 구역에서는 성의 실루엣이 빗속에서 더 신비롭게 보였다. 비가 만드는 분위기는 종종 영화의 한 장면처럼 도시를 바꿨다. 아이는 닌텐도 월드에서 여러 지점을 반복해서 바라보았다. 같은 장면을 다시 보는 행위는 그 장면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한 방식처럼 느껴졌다.
마감 시간이 저녁 8시였고 우리는 마감 시간을 꽉 채워서 놀았다. 호텔로 돌아오니 이미 밤 9시가 넘었고,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묘하게 맑았다. 하루를 길게 쓰는 날에는 생각이 선명해졌다. 침대에 누웠을 때, 아이는 "내일은 오픈 런 해야지."라고 말했다. 나는 "그래, 내일은 더 일찍 가야 해."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 대화는 계획이 아니라 희망에 가까웠다.
다음 날 아침, 아이를 깨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사람은 설렘만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특히 아이는 전날의 흥분을 몸으로 다 받아낸 상태였다. 결국 우리는 내가 생각한 마지노선이었던 8시보다 30분 늦게 도착했다.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기다란 보안 검색대 앞에는 이미 인파가 가득했다. 발 디딜 틈이 없다는 표현이 딱 맞는 광경이었다. 오픈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기대가 압력처럼 모이는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입장했지만, 닌텐도 월드로 달려가는 길은 이미 다른 사람들의 속도로 가득했다. 우리는 정리권을 받아야 했다. 더 일찍 오픈에 맞춰 왔다면 정리권 없이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에 아쉬움이 생겼다. 하지만 아쉬움도 여행의 일부였다. 여행은 늘 완벽할 수 없고,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다음 기억을 더 깊게 만들었다.
드디어 1시간을 기다려서 가장 고대하던 마리오 카트를 탔다. 아이의 얼굴이 달라졌다. 아이는 놀이기구를 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세계를 직접 운전하는 듯했다. 게임 속에서만 보던 속도감이 현실로 다가왔고, 눈앞의 화면과 실제 움직임이 결합되자 아이는 진짜 레이스의 주인공이 된 듯했다. 그 옆에서 아이의 웃음을 보았다. 그 웃음은 하루 종일 유지되는 배터리처럼 우리의 기분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쿠파 주니어의 게임을 하기 위해 닌텐도 팔찌를 이용해서 소소한 게임들을 해나갔다.
아침 식사를 거른 우리는 다소 점심 식사를 일찍 하고자 키노피오 카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이는 메뉴 하나하나가 무엇인지 설명했다. 사실 나는 닌텐도 세계관에 대해 깊게 알지는 못하지만, 아이의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었다. 아이가 나를 가르쳐 주는 순간, 아이가 한 뼘 자랐다는 것을 느꼈다. 부모는 자주 아이를 교육한다고 착각하지만,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부모의 세계를 확장시키는 존재였다. 아이의 관심사가 가족의 관심사가 되고, 아이의 기대가 가족의 목표가 되는 것이 함께 여행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오후에는 닌텐도 월드에 새로 생긴 동키콩 구역을 둘러보고, 쿠파 주니어 게임도 했다. 그리고 쥬라기 공원, 미니언즈 구역, 해리포터 구역을 돌아다녔다. 해리포터 구역의 낮 풍경은 밤과 달랐다. 같은 성이지만 빛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그리고 롤러코스터인 할리우드 드림 더 라이드를 탔을 때, 아이는 마지막에 긴장이 풀렸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를 토닥이며 "괜찮아, 무서웠지."라고 말했다. 아이는 울면서도 이 어트랙션을 탔다는 것에 일종의 자부심을 느꼈다.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기 어려워하는 성격상 알고 있었으면 절대 안 탔을 테지만, 아이와 나는 확실한 정보 없이 탔기 때문에 가능했다. 여행은 종종 이런 감정의 복합성을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가르쳤다.
그날 우리는 여러 놀이기구를 쫀쫀하게 타며 시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피곤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출입구 근처의 식당가에서 일본 햄버거 체인점인 모스버거(モスバーガー)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하며 허기진 배를 달랬다. 같이 버거를 먹으며 오늘 진짜 알차게 썼고, 이게 1.5일권의 진짜 의미라며 서로 웃었다. 피곤함이 하나의 성취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나와서 시계를 보니 저녁 8시 30분이었다. 무려 12시간을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보낸 하루였다.
셋째 날은 오사카 시내를 걸었는데, 번화가라 할 수 있는 신사이바시(心斎橋), 우메다(梅田), 난바(難波), 도톤보리(道頓堀)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오사카의 중심을 걷는 느낌은 늘 '사람의 밀도'를 체감하는 것이었다. 거리는 좁고, 간판은 크고, 음식 냄새는 끊이지 않았다. 저마다 목적지를 향해 가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도 포켓몬 센터와 닌텐도 오사카를 둘러보며 아이의 목적지를 제대로 즐겼다.
점심으로 아이가 가고 싶어 했던 회전초밥 식당에 갔다. 뽑기가 있는 시스템이었고, 아이는 그 뽑기를 위해 열심히 접시를 쌓았다. 결국 뽑기에 당첨되었고, 아이는 환호했다. 그 순간을 보니 아이에게 여행의 핵심은 관광 명소가 아니라 본인이 재미있게 참여한 사건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유명한 절이나 미술관보다도 뽑기 한 번이 더 강렬한 기억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가 즐거워하면 그게 곧 성공한 여행이라고 믿게 되었다.
도톤보리로 가서 에비스바시(戎橋) 근처의 글리코상 간판 건너편 앞에 섰다. 그 장면은 오사카의 의무 코스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매번 그 앞에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관광객들이 줄지어 사진을 찍는 광경 속에서, 각자의 여행이 서로 겹치며 하나의 파노라마가 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사진을 찍고, 아이에게 뛰는 포즈를 주문하며 글리코처럼 팔을 벌리게 했다. 그 작은 포즈 하나가 오사카의 네온보다 더 반짝였다.
그날의 동선은 포켓몬 센터와 가챠샵이 중심이었다. 일반적인 여행 코스와는 조금 달랐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그것이 맞았다. 여행은 남들이 간 길을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아이에게 이 시절의 일본은 멋들어진 역사 유적보다 캐릭터와 게임으로 기억될 나라였다. 나는 그것을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의 기억이 무엇으로 채워지든, 그 기억 속에는 우리가 함께 걸었다는 감각이 남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저녁에는 오사카의 명물인 오코노미야키(お好み焼き)와 야키소바(焼きそば)를 먹었다. 철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는 소리와 소스의 진한 향이 식당의 공기를 가득 채웠다. 오코노미야키는 '오사카의 음식'이라고들 말하지만, 내게는 '오사카의 성격'처럼 느껴졌다. 단맛과 짠맛과 기름진 맛이 한 번에 몰려오고, 그 혼합이 이상하게 조화로웠다. 마치 오사카라는 도시가 상업과 문화와 서민의 삶을 뒤섞어 활기를 만드는 방식과 닮았다. 아이는 오코노미야키를 먹으며 "이거 우리나라 부침개 같아."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지, 근데 일본식으로 더 두툼하고, 진하게 만든 느낌이야."라고 답했다. 아이의 비교는 정확했다. 여행은 낯선 것을 낯익은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호텔까지 가는 길은 일본 도시의 전형적인 시내인 아케이드를 지나가며 산책을 즐겼다. 일본인들과 외국인들 사이에서 우리도 우리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마지막 날은 오전에 천주교 오사카대교구 주교좌성당인 타마츠쿠리성당(玉造聖堂)에 들러 기도했다. 성전에 들어오니 오르간 피아노 소리가 웅장하게 울려 퍼져서 귀를 황홀하게 했고, 눈앞에 제단 성화는 일본풍이 진하게 느껴져 이곳이 일본임을 실감케 했다. 여행 중에 성당을 찾는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어떤 때는 단지 익숙한 공간이 주는 안정감 때문이고, 어떤 때는 여행의 무사함에 감사하기 위해서이고, 어떤 때는 우리 가족이 어디에 있든 같은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이번 여행의 남은 시간도 무사하기를, 아이의 기대가 기쁨으로만 남기를, 여행의 피로가 감사로 바뀌기를 조용히 청했다. 기도는 현실을 바꾸지 못할 때도 많지만, 마음의 방향을 바꿔 줬다.
그 뒤 우리는 오사카성(大阪城)으로 향했다. 토요일이어서 단체 관광객과 현지인이 정말 많았다. 성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성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은 매번 달랐다. 어떤 사람은 사진만 찍고 지나갔고, 어떤 사람은 성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어떤 사람은 역사 이야기를 했고, 어떤 사람은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나는 그중 아이 손을 잡은 사람 쪽에 가까웠다. 오사카성은 일본 전국시대의 상징 중 하나로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권력과 야망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역사보다도 우리가 이곳까지 왔다는 사실이 더 크게 남았다. 여기까지 왔으니 한 바퀴는 돌자라는 마음으로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거대한 돌들이 단단하게 여전히 서있지만, 그 시절 사람들은 이미 먼지가 되어 사라진 오묘한 감정이 유적을 볼 때면 일어났다.
점심으로는 조개 쇼유라멘(醤油ラーメン)과 시오라멘(塩ラーメン)을 먹었다. 따뜻한 국물이 겨울의 여행을 마무리해 주는 느낌이었다. 아이는 다소 느끼하다고 해서 입맛에 조금 맞지 않다고 했다. 도쿄에서 돈코츠라멘을 먹었을 때보다는 나았지만, 그래도 느끼해했다. 먹고 나서 다시 지하철과 전철을 타고 우리를 한국으로 데려다줄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아이는 창밖을 오래 바라보았다. 여행의 끝에서 아이가 조용해질 때가 있다. 그 조용함은 피곤함이기도 하고, 아쉬움이기도 하고, 기억을 정리하는 시간일 수도 있었다. 아이는 자기 속도로 여행을 접고 있었다.
여행에는 그 시기가 있다. 이번 코스는 아이가 이 시절이기에 가능한 코스였다. 아이가 더 어릴 때는 이런 곳을 가도 즐기기 어려웠고, 더 커지면 이런 테마파크 중심의 일정이 시시해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지금만 가능한 여행이었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가느냐에 따라서 색이 달라졌다. 그리고 누구와 가느냐는 결국 어떤 시간을 함께 통과하느냐의 문제였다. 오사카는 세 번째 방문이었지만, 이런 오사카는 처음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아이의 눈으로 오사카를 본 여행이었기 때문이었다. 비가 예보되어 있었고 실제로 비가 내렸다. 하지만 비는 여행의 맛을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비는 우리의 하루를 더 가까이 붙여 놓았다. 우산 아래에서 우리는 더 촘촘히 걸었고, 비를 피하려고 들어간 가게에서 우리는 더 오래 머물렀고, 젖은 신발을 말리며 우리는 더 많이 웃었다. 비는 도시의 색을 흐리게 만들지만, 때로는 사람의 기억을 더 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오사카는 내게 '세월의 간격'을 보여준 도시였다. 요시노야(吉野家)에서 덮밥을 먹으며 떠올린 유학 시절의 내가 있었고, 닌텐도 월드에서 탄성을 내뱉는 아이가 있었고, 그 둘을 연결하는 현재의 우리가 있었다. 나는 예전처럼 돈이 없어 부타동(豚丼)을 고르지 않아도 되었고, 예전처럼 혼자 밥을 먹지 않아도 되었고, 예전처럼 막연한 미래만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지금의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걸으며, 이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갈지 알기에 더 자주 마음속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었다.
오사카에서 우리는 잘 먹었고, 많이 걸었고, 크게 웃었고, 조금 울었고, 다시 웃었다. 그 모든 감정이 여행의 진짜 구성 요소였다. 지도에 찍힌 장소들은 그 감정들을 담기 위한 그릇일 뿐이었다. 유니버셜 스튜디오도 신사이바시(心斎橋)도, 난바(難波)도, 도톤보리(道頓堀)도, 오사카성(大阪城)도 결국 우리의 하루를 담아 준 그릇이었다. 그 그릇이 크고 화려할수록 기억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릇을 함께 들고 걸었던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기억이 달라졌다.
여행이 끝나면 사진이 남는다. 하지만 사진보다 오래 남는 것은 사진 속 표정이 아니라, 그 표정이 생겨난 이유였다. 아이가 닌텐도 월드에서 설레며 웃던 이유, 뽑기에 당첨되어 환호하던 이유, 롤러코스터 끝에서 울던 이유, 전철 안에서 창밖을 조용히 보던 이유가 모두 우리의 서사로 남았다. 여행의 글은 결국 장소 소개가 아니라 기억 보존에 가깝기 때문에 그 이유들을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글을 썼다. 오사카는 여전히 빠르고 번잡했다. 간판은 여전히 크고, 음식은 여전히 진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게 움직였다. 하지만 이번 오사카는 내게 이방인의 낯선 도시가 아니라 함께 걷는 도시로 남았다. 유학 시절의 나는 일본에서 꿈을 배웠고, 지금의 나는 오사카에서 동행을 배웠다. 그래서 세 번째 방문이 가장 따뜻했다. 도시가 따뜻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따뜻해졌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