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부. 상처, 선택적 공감, 그리고 인간의 경직

EETi

by kamaitsra


나는 EETI를 구성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계속 마주했다.


유형이 설명하는 것은 지금의 모습인데, 지금의 모습은 항상 지금보다 훨씬 오래된 무언가에서 왔다는 것. 44형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처음부터 44형이었던 것이 아니다. 22형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22형이었던 것도 아니다. 공감 엔진은 살아가면서 형성된다. 경험에 의해 방향이 바뀐다. 상처에 의해 특정 축이 과도하게 강화되거나 차단된다.


그렇다면 EETI는 단순히 현재의 성격을 분류하는 도구가 아니다. EETI는 왜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열려 있고, 왜 어떤 사람은 완전히 닫혀 있으며, 왜 어떤 사람은 특정 방식으로만 반응하게 됐는지를 구조적으로 읽을 수 있는 도구다.


상처, 트라우마, 선택적 공감의 굳어짐, 반응의 경직. 이것들은 심리학적 개념이기 이전에 공감 엔진의 재배치 과정이다. EETI의 언어로 읽으면 이것들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47장. 상처는 왜 지나갔는데도 끝나지 않는가


EETI의 4개 축 중에서 4축인 학습과 진화를 생각해보자.


학습은 경험을 흡수하는 능력이고, 진화는 그것을 변화로 연결하는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인간은 긍정적인 경험만 학습하는 것이 아니다. 고통스러운 경험도 학습한다. 위험한 자극도 학습한다. 상처가 된 순간도 학습한다. 그리고 그 학습은 자동화된다.


도널드 헵(Donald Hebb)의 법칙에 따르면, 함께 발화하는 신경세포들은 함께 연결된다. 반복된 경험이 특정 신경 회로를 강화한다. 앤 그레이빌(Ann Graybiel)의 기저핵 연구는 이 회로가 자동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떤 말에 심하게 상처받은 경험이 반복되면, 비슷한 어조나 비슷한 상황에 닿는 순간 그 회로가 먼저 작동한다. 의식이 개입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이것이 상처가 끝나지 않는 이유다. 상처는 기억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반응 방식으로 남는다.


EETI의 1축, 즉 의지와 반응이 이것을 설명한다. 상처를 입은 이후 반응 구조가 바뀐다. 원래 반응이 4였던 사람이 특정 자극 앞에서 반응이 1처럼 굳어버린다. 또는 반대로, 원래 반응이 2였던 사람이 비슷한 자극이 오면 4 이상으로 과반응한다. 이것을 성격이 변했다고 부르는 것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는, 공감 엔진의 반응 구조가 상처를 기준으로 재배치된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직장에서 반복적으로 공개적인 비판을 받아온 사람이 있다. 처음에는 상처받으면서도 버텼다. 그런데 그것이 수년간 반복되면 어떻게 되는가.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만으로도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발표 상황이 오면 목소리가 떨린다. 아무것도 잘못되지 않았는데 몸이 먼저 위험 신호를 보낸다. 이것은 과민함이 아니다. 공감 엔진의 반응 구조가 그 환경에서 특정 방향으로 굳어진 것이다.


2축인 이성OS와 공감OS도 상처에 의해 재배치된다. 공감OS가 강했던 사람이 반복적인 배신을 경험하면 어떻게 되는가. 공감OS를 신뢰하지 않기 시작한다. 느끼는 것보다 따지는 것을 선택한다. 감정보다 분석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겉에서 보면 냉정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성OS를 방패로 삼은 것이다.


3축인 출력과 대응도 마찬가지다. 드러낼수록 다치는 경험이 반복되면 출력이 약해진다. 맞추려 할수록 이용당한다는 경험이 반복되면 대응이 약해진다. 이것들은 성격의 변화가 아니다. 공감 엔진이 상처를 기준으로 조정된 결과다.


상처가 끝나지 않는 이유는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공감 엔진이 그 상처를 기준으로 다시 배열되었기 때문이다. 상처는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현재도 작동 중인 구조다.




48장. 선택적 공감은 어떻게 생존 전략이 되는가


EETI에서 선택적 공감은 공감 이론의 핵심 개념이다.


선택적 공감이란 무엇에 열리고 무엇에 닫을지를 조율하는 능력이다. 모든 것에 동등하게 열려 있으면 존재가 소진된다. 그래서 인간은 중요한 것에 더 열리고, 위험한 것에 경계를 치고, 소모적인 것에는 닫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것이 진화적으로 형성된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로버트 트리버스(Robert Trivers)의 상호적 이타주의 이론(1971)은 인간이 모든 대상에 동등하게 반응하지 않도록 진화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모든 것에 열려 있으면 핵심에 집중할 수 없다. 선택적으로 여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생존의 합리성이다.


그런데 상처가 개입하면 이 선택적 공감이 다른 방향으로 굳어진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감정 변화에 과도하게 민감해야 했던 아이가 있다. 부모의 기분이 갑자기 바뀌면 위험이 오기 때문에, 이 아이는 모든 것에 먼저 열리는 방식을 선택한다. 주변 사람들의 표정, 목소리 톤, 방의 공기. 이 모든 것에 레이더처럼 반응하도록 공감 엔진이 조정된다. 처음에는 생존 전략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도 이 패턴이 유지되면, 모든 관계에서 상대의 반응을 먼저 읽으며 자신을 지운다. 선택적 공감이 과개방 방향으로 굳어진 것이다.


반대 경우도 있다. 열릴 때마다 배신당했던 경험이 반복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열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학습한다. 공감 엔진의 문을 닫는다. 처음에는 자기 보호다. 그런데 이것이 오래 반복되면, 관계 자체를 닫게 된다. 선택적 공감이 과차단 방향으로 굳어진 것이다.


EETI로 보면 이 구조가 명확하게 읽힌다.


22형, 상처 많은 공감러형이 과개방으로 굳어지면 어떻게 되는가. 의지는 약하고 반응이 강한 기본 구조에, 공감OS가 강하다. 상처 이후 반응이 더 강해지고 공감OS가 더 과활성화된다. 모든 사람의 감정이 자기 안으로 들어온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사라진다. 모두를 배려하다가 정작 자신은 없어진다.


33형, 고집 장인형이 과차단으로 굳어지면 어떻게 되는가. 의지가 강하고 이성OS가 강한 기본 구조에, 상처 이후 공감OS를 더 억압한다. 사람보다 원칙을 믿는다. 감정보다 구조를 신뢰한다. 관계보다 일에 몰입한다. 이것은 냉정함이 아니라, 열릴 때마다 다친다는 경험이 쌓여 공감 자체를 차단한 것이다.


14형, 잠잠한 지성형이 내면으로 완전히 후퇴하면 어떻게 되는가. 드러내지 않는 것이 기본 구조인데, 상처를 입으면 더 깊이 숨는다. 생각은 많지만 말하지 않는다. 느끼는 것은 있지만 표현하지 않는다. 조용히 혼자 모든 것을 처리하다가 서서히 고립된다.


선택적 공감은 처음에는 상처를 피하기 위한 방패였지만, 시간이 지나면 존재 방식을 규정하는 구조가 된다. 생존의 기술이 감옥이 되는 방식이다.




49장. 인간은 왜 특정한 방식으로만 반응하게 되는가


EETI의 3축과 4축이 이 문제를 설명한다.


3축은 출력과 대응이다. 자신을 어떻게 드러내고, 상황에 어떻게 맞추는가. 4축은 학습과 진화다. 경험에서 얼마나 배우고, 그 배움을 변화로 연결하는가.


상처는 이 두 축에 특히 강하게 각인된다.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의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 이론은 반복된 통제 불가 경험이 반응 시스템 자체를 닫아버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없이 시도했지만 계속 실패했을 때, 인간은 시도 자체를 멈춘다. 이것은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다. 시도가 소용없다는 것을 너무 잘 배워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이 경직의 핵심이다. 반복되는 반응은 버릇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굳어진 공감 엔진의 습관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말하면 상황이 더 나빠졌던 경험이 반복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갈등 상황에서 말을 멈추는 것이 자동화된다. 설명하지 않고 사라진다. 이것을 회피라고 부르기 쉽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말했을 때 상황이 더 나빠진다는 것을 학습한 결과 출력이 닫힌 것이다. 3축의 출력이 1에 가까워진 상태다.


반대 경우도 있다. 화를 내면 상대가 물러섰던 경험이 반복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갈등 앞에서 공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자동화된다. 출력이 3이나 4로 강화되고, 대응은 약해진다. 상대의 신호를 받아들이기보다 먼저 밀어붙이는 구조가 된다.


인간은 자주 가장 익숙한 고통을 선택한다. 이것이 역설처럼 들리지만 실제다. 새로운 건강함은 예측이 되지 않는다. 잘못되면 어떻게 되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 아는 아픔은 예측 가능하다. 어떻게 아플지를 안다. 어디서 끝날지를 안다. 그 익숙함이 새로운 시도보다 덜 두렵다. 4축이 학습은 강하지만 진화가 약한 3 구조에 가까워지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늘 비슷한 유형의 사람에게 끌리다가 비슷한 방식으로 상처받는 패턴이 있는 사람이 있다. 이미 그 패턴을 알고 있다. 이번 사람도 결국 같은 방식으로 다칠 것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직감한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는다. 왜인가. 그 고통이 이미 아는 고통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관계에서 새롭게 다치는 것보다, 이미 아는 방식으로 다치는 것이 덜 두렵다.


EETI로 보면 이 경직의 방향이 보인다. 출력이 과강화된 사람은 강하게 나오는 것이 굳어진 상태다. 대응이 과민한 사람은 모든 분위기를 읽으며 자신을 지우는 것이 굳어진 상태다. 학습은 강하지만 진화가 없는 사람은 많이 아는데 삶이 그대로인 상태다. 반복 고착형은 같은 패턴을 계속 반복하는 상태다.


사람은 생각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대로 반복한다. 반복은 의지 부족이 아니라 구조의 기억이다.




50장. 너무 많이 열려 있는 사람들, 너무 빨리 닫혀버리는 사람들


EETI의 공감이론에서 선택적 공감은 항상 두 방향으로 무너질 수 있다고 말한다. 과개방과 과차단이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1축을 다시 보자. 의지와 반응의 배치에서, 반응이 극단적으로 강해지거나 극단적으로 약해지는 경우가 있다. 상처는 이 축을 한쪽 방향으로 밀어붙이는 힘으로 작동한다.


과개방형 인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의 감정 변화를 먼저 알아차려야 안전했던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의 반응 회로는 외부 신호에 극도로 민감하게 훈련된다. 자코모 리촐라티(Giacomo Rizzolatti)의 거울 뉴런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타인의 감정 상태를 자동으로 내면화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여기에 상처로 인한 과활성화가 더해지면, 모든 사람의 감정이 자신 안으로 들어오는 구조가 된다. 방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공기를 읽는다. 누군가 기분이 안 좋다는 것을 말 없이 안다. 이것이 멈추지 않으면 공감 과부하가 온다.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 모르게 된다. 타인의 감정이 자신의 감정을 대체한다.


22형이나 24형이 상처 이후 과개방으로 굳어지면 이 구조가 된다. 모든 말에 반응한다. 타인의 감정을 자기 안으로 과도하게 들인다. 누군가의 기분이 안 좋으면 자신이 원인인지 계속 점검한다. 관계에서 자신을 먼저 지워가면서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 결국 모두를 배려하다가 정작 자신이 사라진다.


과차단형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열릴 때마다 다쳤던 경험이 오래 반복된 사람이 있다. 공감을 열면 이용당하거나 배신당했다. 이 사람은 공감의 문을 닫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특정 상황에서만 닫는다. 그것이 반복되면 점점 더 많은 상황에서 닫는다. 결국 거의 모든 것에 닫혀 있는 상태가 된다. 안전하다. 더 이상 크게 상처받지 않는다. 그러나 온기도 없다. 연결도 없다. 고립된다.


33형, 13형, 31형이 상처 이후 과차단으로 굳어지면 이 구조가 된다. 자기 구조만 유지한다. 외부의 의미를 차단한다. 관계보다 일, 원칙, 구조에 몰입한다. 이것은 강함이 아니라, 열리면 위험하다는 학습의 결과다.


왜 두 극단은 모두 존재를 좁히는가.


너무 많이 열리면 내가 사라진다. 타인의 세계가 나를 채우면 나의 세계는 남지 않는다. 너무 닫히면 세계가 사라진다. 나의 세계만 남고 타인의 세계는 들어오지 못한다. 양방향이 모두 존재를 작게 만드는 방식이다.


건강한 선택적 공감은 어디에 있는가. 공감을 줄이는 것도 아니고 무한히 여는 것도 아니다. 무엇에 열리고 무엇에 닫을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상태다. 열림과 닫힘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상향이 아니라 방향이다. 완전히 달성할 필요는 없다. 조금씩 그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 어제보다 조금 더 주도권을 가지는 것. 그것이 선택적 공감의 회복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건강한 존재는 모든 것에 열려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에 닫혀 있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것에 정확히 열릴 수 있는 존재다.




51장. EETI는 상처를 낙인이 아니라 구조로 읽게 한다


EETI를 통해 상처를 보면 달라지는 것이 있다.


예민함을 결함으로 보지 않게 된다. 상처를 입은 이후 1축의 반응이 극도로 강해진 상태로 읽는다. 차가움을 본성으로 보지 않게 된다. 열릴 때마다 다친 이후 2축의 공감OS를 억압하고 이성OS를 방패로 삼은 상태로 읽는다. 무기력을 의지 부족으로 보지 않게 된다. 반복된 실패 경험이 4축의 학습과 진화 회로를 닫아버린 상태로 읽는다.


이것들을 성격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이 된다. 그리고 원래 저런 사람에게는 판단만 있다. 낙인만 있다. 이해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


EETI는 이 공간을 다르게 만든다. 쟤는 원래 저래 대신 저 구조는 왜 저렇게 굳었을까를 묻게 만든다. 이 질문이 생기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진다. 나쁜 것이 아니라 굳어진 것이고, 굳어진 것은 풀릴 수 있다.


안토니오 다마시오(Antonio Damasio)의 연구는 감정 처리와 판단 능력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감 엔진의 재배치는 판단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상처가 이성OS에 영향을 주면 판단 자체가 달라진다. 이것을 고집이나 인지 왜곡으로 보는 것은 겉만 읽는 것이다. 공감 구조가 재배치된 결과로 읽어야 한다.


기본형과 상태형의 구분이 여기서 중요하다. 원래 44형이지만 오랜 소진으로 지금은 11처럼 작동하는 사람이 있다. 원래 22형이지만 회복을 통해 조율 능력이 생긴 사람이 있다. 유형은 고정된 운명이 아니다. 지금 내가 있는 좌표다. 그리고 좌표는 움직인다.


회복의 방향도 유형에 따라 다르다. 과개방으로 굳어진 사람에게는 닫는 법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공감을 내려놓는 훈련이다. 자신이 느끼는 것과 타인의 감정이 다르다는 것을 구별하는 연습이다. 과차단으로 굳어진 사람에게는 여는 법을 다시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작은 연결부터 시작한다. 작게 열어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경험이 쌓여야 한다. 반복 고착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배움이 아니라 먼저 회복이 필요하다. 배움이 변화로 연결되지 않는 것은 회로가 막혀 있기 때문이다. 막힌 것을 뚫으려면 먼저 에너지가 채워져야 한다.


회복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내 공감 엔진을 다시 조율하는 일이다. 선택적 공감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일이다. 열릴 곳과 닫힐 곳을 구조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결정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상처를 구조로 읽을 수 있을 때, 인간은 처음으로 자신을 덜 미워하고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상처를 지나간 기억으로만 보아왔다.


그러나 많은 상처는 아직도 현재형으로 작동한다. 누군가를 더 예민하게 만들고, 누군가를 더 차갑게 만들고, 누군가를 과하게 열리게 만들고, 누군가를 완전히 꺼지게 만든다. 이것들은 성격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공감 엔진이 재배치된 것이다.


EETI는 그 구조를 읽게 한다. 인간을 고장난 존재로 보지 않는다. 특정 구조로 살아남은 존재로 본다. 그 구조가 어디서 왔는지를 보게 한다. 어디가 막혀 있는지를 보게 한다. 그리고 어디서 다시 열릴 수 있는지를 보게 한다.


구조를 읽는 순간, 우리는 처음으로 사람을 함부로 단순화하지 않게 된다. 그것은 타인을 덜 미워하게 하고, 자기 자신을 덜 오해하게 한다.


인간은 고장난 것이 아니라, 특정 구조로 살아남은 것이다. 그 구조는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조율할 수 있다.


당신의 공감 엔진은 지금 어떤 방향으로 굳어져 있는가.